2017/3/5 사순절 첫번째 주일
2017/ 3/ 5 사순절 첫번째 주일
본문 - 마태복음 4:1 ~ 11
https://youtu.be/9HlBDlra-S0 = '클릭' 하시면 설교 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일상, 광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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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꼭 한번 가보고 싶으신 여행지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답할 만한 곳이 있으신가요 ?저는 언젠가 부터 꼭 한번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곳이 생겼습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한 곳은 많았지만 진리를 담지하며 걷는 신앙의 길에 선 이후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남겨진 곳이 생겼습니다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800킬로미터의 순례길입니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12제자중 하나인 야고보를 칭하는 스페인식 이름이며, 순례길의 목적지는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1987년 파올로 코엘류의 ‘순례자’가 발간된 이후 유명해지기 시작한 이곳은 해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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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길은 그닥 낭만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거칠고 투박하고 기나긴 순례의 길은 섣부른 치기만 가지고 덤볐다가는 낭패라고 합니다 먼 이방 땅의 800키로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순례길을 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을까요 ? 산티아고를 찾는 이들중 많은 이들이 낭만적인 여행이 아닌, 무언가 진중한 생의 문제의 결정을 위하여, 혼자서 거쳐내야하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해서 길을 나섰다고 합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그 고독의 시간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일까요 ? 그리고 사람들은 그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또한 어떤 해답을 찾아내고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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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늘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 과연 잘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 탐욕을 좇으며, 타협하면서도 자신을 정당화시키며 살아오지는 않았나요 ? 그리고 이러한 삶을,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조차 모른채 사는 삶을 과연 잘 걸어가고 있는 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이 질문을 통해 한번 뿐인 생에 대한 책임있고 의미있는 삶으로의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 사순절의 순례속에서 이 질문을 붙잡아야만 합니다 더 방향이 틀어지고, 본질을 놓친 채, 더 의미 없이 낭비되는 삶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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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라는 말이 본래 종교의 발생지, 본산, 성인의 무덤등 종교적 의미가 있는 곳을 찾는 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종교의 발생지등을 찾는 이유는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다시금 새기기 위함이니, ‘순례’는 본래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순례를 떠나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를 찾는 이유는 그들의 삶의 걸음의 본 목적을 다시금 찾기 위함이었을 터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이전,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걸어가신 죽음의 길을 묵상하고, 그 길의 의미를 다시 기억하여 내 삶으로 살아내기로 결단하고 새기는 기간입니다
지난 3월 1일 ‘재의 수요일’을 지나 이제 우리는 6주간의 사순절의 순례를 걷게 됩니다
사순절의 기간앞에 서 있는 우리 역시, 이 순례의 기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서 있는지, 또한 걸어가야하는 길을 걷고는 있는지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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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이루어가는 성육신하신 주님의 삶은 우리들의 삶과 다른 차원의 것이었을까요 ?’인류’라고 하는 구원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있으니 그분의 삶은 우리들의 삶과는 무언가 다를 수 밖에는 없는 것이었을까요 ? 대체 예수님께 일상은 무엇이었을까 ?
그분의 사역의 자리는 어디였나 ? 주님의 삶과 구원 사역의 바운더리는 언제나 ‘삶, 일상’의 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 즉 그분의 삶은 언제난 ‘유혹’과 ‘말씀’과의 사이에서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대표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명과, 그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죄’의 인력 사이에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이겨내신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할 순례의 출발지는 오늘 우리들의 살아가는 ‘일상’ 밖일 수 없고, 또한 우리 순례의 목적지 역시 ‘일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는 곳도 일상이며, 또한 그 일상속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돌아가야할 자리는 역시 우리의 일상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로서 우리가 돌아가야할 자리는 순례자들이 찾아 나서는 산티아고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살아내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예루살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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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치열한 자리일까요 ?
성서일과 구약본문으로 주어진 창세기 2장과 3장은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죄는 인간의 운명을 죽음의 지배, 그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만든 ‘죄’의 정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 죄의 유혹이 실재하는 곳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며, 오늘 본문은 그곳을 ‘광야’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인류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이전에 주어진 사건으로 우리를 데리고 갑니다 그곳은 광야입니다 마태는 그 광야로 이끈이는 성령이시며, 광야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시험하는 자, 마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주어진 시험은 무엇입니까 ? 그러고 보니 돌을 떡이 되게 하는 것,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기적을 보이라는 것, 왕국을 얻기 위해 마귀에게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수께서 시험받고 계시는 광야는 다름 아닌 우리들의 일상의 삶의 자리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마귀에게 받으신 시험이, 오늘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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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속에는 예수께서 광야에서 경험하신 유혹이 숱하게 찾아옵니다
어떻게 내일을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내일의 떡 한덩어리 때문에 정의를 정직을 바름을 선택하기 두렵습니다
내일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신앙의 자리는 늘 그 두려움과의 싸움의 자리입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또 그런 인생을 살고 싶은 유혹도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받고 싶어하는 유혹이 우리들의 삶을 몰아세우곤 합니다
세상을 얻고자 하는 욕망의 유혹이 성공을 향해 내 달리게 만듭니다 자존심도, 자존감도, 그리고 내 가족의 행복도, 양심도 포기하며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유혹을 경험하신 광야는 저 먼 신화속에 등장하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에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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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은 예수의 사람으로서의 본질을 찾아가는 순례의 길, 산티아고인 셈입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순례의 길은 고즈넉한 기도원도, 산사도, 산티아고의 길도 아닙니다
먹을 것에 대한, 내일에 대한, 성공에 대한 유혹과 마주치는 선택의 자리, 바로 우리 모두가 버성기며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본질을 찾아가는 순례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배의 자리 뿐 아니라, 아니 이 자리를 벗어난 각자의 일상에서 비로서 예수의 길을 따르는 본질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유혹을 경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 본문속에서 예수께서 보이신 답은 바로 ‘하나님 말씀’ 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투적인 말이 아닙니다 유혹이 우리 삶속의 실재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우리를 살리는 것도 실재입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반응에 따라서는 시험이 될 수도 있고 유혹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예수께서 유혹을 물리치신 광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께서 기적적인 능력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사용하셨더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드셨거나,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죽지않고 군중들에게 자신을 드러냈거나
왕국을 얻기 위해 사탄에게 절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주님은 영광을 위해 지름길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일상은 성령과 사탄이 공존하고 있는 땅입니다 유혹은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키며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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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주의 성찬에 참여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외롭고 무섭고 고독한 광야에서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시고 진리의 길을 살아내셨던 주님처럼 살 수 있고, 살아야만 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 사순절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자비로우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