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거울 앞에

2017/03/12 사순절 둘째주

ViaNegaTiva 2017. 3. 12. 14:00

2017-3-12 사순절 2주


본문 - 요한복음 3:1 ~ 17


https://youtu.be/uHkcujV3lYs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믿음에서 예수를 만나다"




1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생의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성경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 인도 선교사였던 스텐리존스 목사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사족을 모두 제하고 예수가 신앙의 정체성과 목적이 되므로 그를 좇고 그의 걸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예수의 길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를 주로 믿으며 좇고 있을까요 ? 오늘 이 시간전까지 나의 삶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였습니까 ? (내가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되는 질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내게 있는 것, 내게 필요한 것 중에서, 마지막 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 그것이 바로 나의 주인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좇고 있지는 않습니까 ? 성경이 말하는 복있는 사람의 삶보다는 세상이 가르쳐주는 성공을 좇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과연 우리는 어떤 길을 좇으며 살고 있었을까요 ?


3 길을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셈입니다 

길이라는 것이 익숙한 것도 길이요 낯설은 것도 길이요 평탄한 것도 길이요 울퉁불퉁한 것도 역시 동일하게 길입니다 

길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길 앞에 서있는 이들을 자신의 안으로 초대합니다 길 위에 서라고 부릅니다 길을 걸으라고 이끕니다  그러니 길은 멈추어 있지 않습니다 길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 새로운 걸음을 요청합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걸음이 얼마이든지 관계없이, 길이 계속되는 한 새로운 걸음을 내디딜 것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걸음을 걷는 것, 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은 ‘기대감’이나 ‘설레임’과 더불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이 길의 끝이 과연 어디일까에 대한 무지로 인한 두려움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의 내일이 어디인지, 어떻게 끝을 맺을것인지 모르기에 지금의 내 걸음에 자신이 없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4 새로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

오늘 성서일과 제1독서 구약본문으로 주어진 창세기 12:1 ~ 4 은 생의 새로운 길위에 선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 ! 성경이 증언하는 그가 믿음의 아비임을 알기에 그의 걸음의 끝이 어디에서 멈추는지 알기에 하나님께 이끌리어 떠나는 그의 길 떠남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복’의 약속이 담보된 그 길이, 유쾌하고 꽤 멋져보입니다 의당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여기질 만큼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길 떠남도 그러했을까요 ? 적어도 그가 길을 떠날 당시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고 길의 시작만 보입니다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떠나야 합니다 이 길을 떠나지 않아도 걸어가지 않고 여기에 안주하고 머물러도 꽤 살 만합니다 걱정거리도 그닥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안전을 버리고 불확실에 기대어 걸어가야만 하니 두렵지 않았을까요 ?


오늘 성서일과 복음서 본문에 등장한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 오늘 본문은 그가 바리새인이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라고 하는 이름뜻 자체가 ‘승리한 백성’ ‘백성의 정복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대단하다고 하고, 부럽다고 그 역시 사람들 앞에서는 있는 체하고 다 아는 척, 거드름 피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니고데모 자신은 늘 허전하고 무언가 빈 가슴을 채울 길이 없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찾아옵니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위험인물 예수를 말입니다


5 새로운 길을 떠난다는 것은 ‘오늘’의 삶으로부터 ‘구원’을 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니고데모는 왜 예수를 찾았을까요 ? 갈리리 나사렛 출신의 무지렁이 같은 청년을, 사회 기득권층에게 눈엣가시였던 청년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찾는다는 것이 그로서는 대단한 결단인 셈입니다 그를 지지하거나 따를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말이지요 자칫 소문이라도 나면 여간 곤란하지 않습니다 종북이라고 핀잔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모험적인 길입니다 하지만 그는 떠나야만 했습니다 지금 까지 그의 걸음이 진리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에 대한 불만과 오늘에 대한 제한적 한계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던 방식대로는 내 영혼의 이 공허함을 채울 길이 없음을 경험한 사람, 이런 삶의 걸음으로는 내 자신을 구원해 낼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벽에 부딪힌 사람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무리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건강을 잃을 처지에 처해서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과 걸음을 멈추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것 ! 이것이 과연 쉬운 것일까요 ? 이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일까요 ?


구약성서 아모스 8:11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없는 기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에 말씀이 없다니요 ? 하나님 말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인데 말입니다 누구나 듣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하나님 말씀은 아니었다는 것이겠지요 누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생명을 살리고 이끄는 말씀이지만, 누구에게는 소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실상은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 처럼 자신이 기갈 가운데 있음을 알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다고 괜찮게 살고 있다고 여깁니다 교회에 다니고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안전하다고 여기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 걸어다니고 있으니,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으니 모두가 살만한 것입니까 ? 겉이 멀쩡하다고 속이 건강한 것은 아니듯, 내 자신을, 내 속을, 내 정체를 뜯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입니다 마치 멀쩡한 상태로 병원을 찾았는데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다는 선고를 받는 사람의 운명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건강에 대하여 이야기해도 듣지 않던 사람도, 막상 의사의 선고를 듣고 나면 시키지 않아도 간절하게 건강에 매달립니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깨닫고 난 이후의 몸부림입니다 기름진 음식, 몸에 좋지 않은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몸에 좋은 것을 찾습니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도 이와 동일한 상황에서만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좌절과 한계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6 그래서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않된다는 것, 그래서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고, 이전과 같은 길을 갈 수 없다는, 그렇게 해서는 않된다는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 그리고 그 한계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하는 상태가 실상 ‘거듭남’의 영적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과 자각은 어느날 한 순간 나에게 닥쳐오게 됩니다 아~ ! 내가 사는 삶이 이것이 아니구나 ! 라고 말이지요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용하신 ‘거듭남’이라는 단어는 ( 헬라어 ‘아노센’으로 ‘위로부터’ , ‘다시’) 라고 하는 말입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태어난다로 이해했지만, 주님의 말씀은 ‘위로부터’ 인하여 태어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거듭남은 전적으로 ‘위’ 즉 ‘하늘’로부터 허락되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발적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열리고, 그 하늘을 향해 우리가 열려질 때 가능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려져도 하늘이 닫혀있다면 하늘과 맞댈 수 없는 것처럼 거듭남은 전적으로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8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설 때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늘을 향해 열려야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이 역사해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결코 이 길의 가치를 깨달을 수 없으며, 깨닫지 못하니 선택할 수도, 떠날 수도 없게 됩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따를 수 있는 것은, 깨달으면 당연하게 되는 것이지, 무모한 용기가 있는 사람, 얍삭빠른 사람만이 가능한 것일 수 없습니다 


9 서신서인 로마서는 아브라함의 길 떠남이나,, 이삭을 재물로 바치려고 하였던 근간인 ‘믿음’이 의라고 보고합니다 

이전까지의 길에서 돌이켜 새로운 길을 향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에도 길을 떠날 수 있고, 그럼에도 이전의 삶으로부터 돌이킬 수 있으려면, 이 길 끝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길의 끝이 보이지는 않고, 구비 구비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는지 정확히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목적지로 향하고 있음에 대한 믿음 말입니다

성서일과 서신서인 로마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들 이삭을 재물로 바치려했던 아브라함의 모리아산으로 향하던 걸음을 믿음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걸음, 두려움의 길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길 끝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어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를 좇으며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우리가 걸어야할 길을 걸어가셨고, 스스로 그 길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그의 생이, 그의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받고 부활하셨는지, 어떻게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처럼, 예수의 삶을, 예수의 걸음을, 예수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길 앞에 서서 이 것이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길이 맞기에 길 위에 올라 걸어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야고보서의 반응은 나를 변화시킬 수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길이 좋다고, 이 길을 떠나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그러나 그 출발은 그 길위에 서서 떠날 때만 의미를 가집니다


10 그리고 이 믿음의 근간, 우리가 행함으로 믿음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은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당신의 손에 붙들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비록 구비구비 굽어져 있고, 지금은 비록 실패하는 것 같고, 지금은 비록 망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시지도, 좌절당하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는 분이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고, 패하신 것 같은 삶의 끝에 주님의 승리가, 최후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 것이 바로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11 사순절 두번째 주일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예수께서 걸으신 길은 죽음, 그러나 예수는 이 끝에 반드시 악을 꺾으시고 일어서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으셨고, 그 믿음의 내용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그가 그의 아들을 살려내심으로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12 우리는, 그리고 세상 누구나 길앞에 서 있습니다

이번 주간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탄핵이라고 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판결문을 읽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의 목소리에서 법의 엄정함과 정의의 무게를 실감하였습니다

문득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서슬퍼런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비리와 부패를 일삼고, 권력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는 세상의 권력도 덧없이 무너지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그러니 역사를 주관하시고 써내려가시는 분은 하나님 뿐이심을 어떻게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오늘의 현실을, 오늘의 세상을, 오늘의 가치관을 따르지 마시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두려워도 마시고, 불안해하지도 마시고 주관자 되시는 주님께 맡기며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이 길을 걷게 된다면, 

그 길 위에서 같은 걸음을 걷는 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길위에 우리가 서게 된다면, 

우리는 또한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