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창조절 12주
본문 - 사사기 4:1 ~ 7
끊어내어야 변화합니다
* 비디오 카메라 메모리에 error 가 생겨... 설교 요약문만 올립니다 ....
1
사사기를 읽을 때면 만나게 되는 의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터무니 없이 반복되어지는 이스라엘의 패턴, 두번째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을 세워 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은 가혹한 폭력이라 해야하지 않을까 ? 라는 생각입니다 과연 우리들의 이런 의문은 정당한 것일까요 ?
2
첫번째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과연 심술궃고 폭력적일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봅시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하솔왕 야빈에게 ‘파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팔다’라고 하는 ‘와이므케렘’이라는 단어는 ‘마카르’라는 동사앞에 ‘와우’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인데, 여기서 ‘와우’는 계속적인, 혹은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야빈의 손에 팔려진 것은 계속적인 이스라엘의 악 때문이었다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들의 운명을 나락으로 내몰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됩니다 이스라엘의 고통과 절망은 이스라엘 스스로 선택한 결국일 뿐입니다
3
오늘 본문은 ‘에훗이 죽으니’ 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사사 에훗에 때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 4장의 첫문장은 모압으로부터 구원받은 80년 세월이 있었고 이제 이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고통의 시간이라는 새로운 국면앞에 서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모압의 침략앞에 있던 그 때처럼 다시금 이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함의 고발을 받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패턴은 이스라엘 민족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고통의 시간이 아닌, 안전과 안락, 평안을 말하던 때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평안하다면 내 걸음이 하나님 앞에 무너져있지 않은지를 돌아보아야하며, 도리어 내 삶에 위기와 불안과 고통이 임하여 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소망으로 기억해내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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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범죄함 !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오늘은 반복되어지는 그들의 일상이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이후로도 계속되는 사사기의 전 역사는 이 페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경험하게 되는 악순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계속되고 있는 악순환의 원인은 사사기 2장 10절과 사사기의 마지막인 21장 25절에서 드러납니다
2장 10절은 여호수아와 그 세대의 사람들이 다 조상들에게로 돌아간 후 일어난 다음 세대라는 것을 말합니다 또 뒤이은 11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이들에 대한 성경적 평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 삶에 함께 하신다 ! 하나님이 내 삶을 구원하신다 ! 는 믿음의 성취를 경험해 보지 못할 때, 우리는 바알과 같은 세상의 구원, 세상의 유혹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내 삶에 실재하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니, 세상이 나의 구원자가 되고, 결국은 사사기 21장 25절처럼,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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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던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솔와 야빈의 철병거를 바라보는 순간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인생임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만만해 보이면 오만해지지만,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 사람은 겸손해질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시련과 좌절은 내가 하나님앞에 겸손해져야만 하는 존재임을 일깨우시려는 은총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혹시 범죄함에서 멈추어 하나님께 구원을 갈망하며 매달리는 이스라엘이 뻔뻔하게 보이십니까? 물론 이스라엘은 분명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본래 자신의 삶의 자리, 한계와 절망을 인식했을 때에야 비로서 하나님을 찾게 되는 연약한 존재임도 사실입니다
애당초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다라는 말이, 우리가 불가능 자리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인 셈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하나님은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불가능에 직면하고, 좌절에 만나야하는 분은 하나님 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내미는 것은 결코 뻔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바로 악을 멈추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배가 고프면, 정말 아프고 힘들면, 정말 죽게 생기면 구원을 향해 내미는 것에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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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엇일까요 ? 언제나 한계 가운데 있는 것이 우리이고, 연약함이 우리들의 운명임이 분명하지만, 이 다음은 조금은 더 나아져야하는데 그것이 않되고, 여전히 같은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사사기에서 만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늘상 정확히 같은 자리로 돌아가고 있을까요 ?
이들은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에 옳은 대로 살아가려는 틀에서 벗어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두는 믿음의 페러다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전 세대가 다 지나가고 난 이후’에라고 하는 사사기 2장의 표현은, 이 세대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 즉 말과 기병들과 칼과 창보다 하나님이 강하시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인 그들의 사고의 페턴은 늘 동일할 수 밖에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 어찌할 수 없다 ! 는 식의 불가능이 그들의 언어였습니다 내게 유익한 것, 내게 옳은 것, 내가 타당하다 여기고,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살아감에 익숙했습니다 여전히 내가 해결하려는, 내 소견에 옳은 선택으로 나아가보려는 페러다임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반복으로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 오늘은 지나가는지 모르지만, 내일은 다시금 원점입니다 삶의 무게와 고통, 현실과 문제에서 벗어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답답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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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하여‘사사’들은 무엇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까 ?
그들은 영웅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와 딱 하나 ! 페러다임이 다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현실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보다 확실한 구원이었습니다 !
내 방법, 내 기대를 빨리 포기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보고,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헤아리며, 우리가 믿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의 전능에 기대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터무니 없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고, 계산이 다 끝난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방식대로라는 ‘눈’을 포기하지 못해서, 그 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이 패러다임이 무섭습니다 ! 사람은 보통 생각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방식대로 다시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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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드보라와 바락의 이야기에서 드보라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가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메시지는 너무나 낯설기만 하다 어리숙하고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성경의 언어는 오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늘 낯설기만 합니다
하솔왕 야빈의 병력이 철병거만 구백승이었다고 합니다 철기 문명에 이르지 못했던 사사시대에 철병거 구백승이 쳐들어 온다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 만큼이나 분명한 패배의 조건일 뿐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상식적이며, 그것이 그 동안 우리의 경험, 능력에 비추어 익숙한 말들, 우리들의 생각, 살아감의 패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과 인도하심의 페턴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현실로 찾아오고 나니 이스라엘은 다시금 평상시 자신의 패턴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만명으로 철병거 구백승을 이끌고 오는 하솔왕과 어찌 싸워 이긴단 말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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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을 읽어봅시다
드보라가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빈의 철 병거들을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잠시 그려보십시오
구백승의 철병거가 내 앞에 코 밑까지 이르게 되면, 이제 소문으로 듣던 적군이 실재로 목전가지 이르게 된다면 제일 먼저드는 생각은 이제 망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 이제 또 끝이 나고 말았다고 생각되지 않을까요 ? 역시 난 어쩔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죽음과 공포가 내게 이르렀을 때 불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였는데,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이 이끌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답니다
낡은 패배의 눈을 버리고, 여호와의 렌즈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이런 페턴과 프레임을 가지는 것이 신앙의 길이며, 믿음의 삶입니다
내 방식대로 살면 내 방식의 결국과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방식에 기대면,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와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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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시대 이스라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주시는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스스로를 가까이 두지 않고 점점 박탈과 패망과 고통으로 자신의 걸음을 내몰아가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늘 구원하십니다 인간의 악함과 끊임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 속에서 사사기는 우리에게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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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는 되돌릴 수 없는 악행으로 치닿고 마는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이민족을 통해 다루시는 하나님이 아닌 포기하지 않고 사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그러니 사사기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기다리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소망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과 포기하지 않으시는 은총이, 패배와 절망과, 포기의 페러다임에 휩쌓여 있는 우리의 믿음없음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승리로 이끌어가시는 구원앞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