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해석의 기준 과 목적
- 성서 해석의 기준 과 목적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성경이야말로 모든 신앙의 표준이요 근거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경전종교이기 때문이지요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든 교회와 신앙의 판단 기준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고려해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성경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 일상의 모든 삶의 영역을 다 규정하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축자영감이나 문자주의를 주장하는 경우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안에 규정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우리의 삶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성경의 이쪽과 저쪽이 상반되는 듯한 해석을 내놓는 경우와 만나게 될 때는 어찌해야할까요 ? 그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종적 해석의 기준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인간을 찾고 만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성경에 게시되고 있는 그의 성품에 대한 물음이 해석의 기준으로 작동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탐구하는 것은 결국은 성경 전반에 드러나있는 목적을 읽어내는데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을 ‘구속사’라고 부르지요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고 구원해 내시려고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읽게되는 정의와 심판도 하나님의 구원의 측면에서 읽혀져야만 합니다 요한계시록이나 복음서에 나타나는 묵시적 기록들을 겁박과 협박의 차원에서 읽어내려는 시도는 그 글씀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와 불의, 죽음과 절망에 좌절하며 살아가는 당신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보복이며, 이 보복의 성취로 인하여 고통속에 내어던져있는 인간 삶에 소망이 맺혀질 수 있습니다 악과의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보복의 동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 자신의 전능성을 과시하거나 세기말적 장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과장된 몸짓일리 만무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정죄와 심판에 무게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해내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담겨 있음을 읽어내야만 합니다
바른 뜻을 읽어내지 못하고 읽는 성경의 텍스트는 마치 이단사설들이 몇줄의 성구를 짜집기 하여 혹세무민하듯 사람들의 삶을 좌절과 강박, 두려움으로 몰아세우고 맙니다 그런 성경 읽기안에서는 생명 살림은 경험할 수 없습니다 문자주의적 종교언어에 사람들을 가두고 정죄와 비난, 타자를 향한 폭력과 혐오만을 기형적으로 잉태해낼 뿐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속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있습니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고 불을 가져다 준 댓가로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잔혹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던 불행한 신입니다 인간을 향한 연민으로 자신을 내어던진 신의 이야기를 오늘 성서속에서 만날 수 없다면 우리의 성서읽기는 목숨을 걸고 인간을 사랑해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기형적 하나님 상을 초래할 뿐입니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는 이유는 말씀 그 자체가 담고 있는 권위 뿐 아니라, 말씀을 말씀으로 읽어낼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함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요 ?
성경읽기와 해석은 언제나 인간 살림, 생명 살림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야 하며, 그 때에 성경은 비로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드러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