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인 나의 벗, 나의 이웃 ...
* 들라크루아의 '선한 사마리아인'과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인'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눅 10:36 ~ 37
1
본오동 땅에 '동녘교회'를 개척을 한지 이제 다음주면 벌써 2주년이 됩니다 첫해 버스정류장 전도를 하면서 만난 할머니 권사님, 꽤 먼 거리를 달려와주시는 집사님 권사님 부부와 함께 해준 청년들 덕분에 희망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둘째 해가 시작되면서부터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상가건물 3층 까지 올라오는 사람이 점점 희미해지고, 허전함과 무기력함이 함께 밀려올 때가 참 많았습니다
2
그때 마다 애당초 교회를 부탁하신 주님의 뜻, 처음 주신 마음 붙잡으려고 홀로 단앞에서 무던히 기도했었습니다
교회 주변 마음 아프고, 헐벗은 마음 달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웃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솔직한 내심의 야망이나 욕망을 꺾어야만 하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드리기 힘든 기도였습니다
개척교회 목사의 소박하지만 숨겨진 시커먼 속내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었기 때문이지요...
3
그런데... 이 기도가 먼저 응답되고 말았습니다 진짜 이웃이 생겼네요
34살 먹은 'J'라는 방문자(*노숙인이라 부르는.. )친구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개척이후 적어도 교회문을 열고 들어오신 분은 비록 거짓말을 하는 이라 하더라도 내민 손을 빈손으로 돌아가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방문자들이 자주 찾아오셨고, 'J'역시 그러다 만난 친구입니다
보통 방문자들은 스스로 땀흘리려는 의지를 상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새 자존감은 상실되고 굶주리더라도 땀흘리지 않고 기대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탓입니다
그런데 'J'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아로 커온 이 친구를 만난 것은 추운 겨울이었지요
4
찾아온 친구에게 주머니에 있던 만원짜리 한장 봉투에 넣어 손에 쥐어주고 교회 식구들과 함께 먹던 밥 한그릇 해준 것이 다였습니다
돌아서는 친구에게 더 많이 도와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안하다고, 교회의 연약함이 미안하다 말하면서, 한가지 부탁을 했지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사회복지센터에 방문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땀흘려야 당당할 수 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서도 않되는 것은 사회책임이라고, 그 이후에는 당당하게 요청하라고 ! 말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정말 복지센터를 찾아갔습니다 해보자고 하는 것들 해보려고 애쓰고 2주 후에 다시 찾아온 녀석이 왜 그리 이뻐보이던지요
고마웠습니다 때로는 꼬질 꼬질한 녀석을 보란 듯이 데리고 식당에 가서 식사도 같이 하고, 교회 찾아오면 차도 함께 마시고, 어느새 저는 형님이 되었습니다
5
매서웠던 올해 겨울을 무척이나 힘들게 버텨낸 녀석이 드디어 3월부터 공공근로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공근로 나간 첫날 목사님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는 녀석이 참 고맙더군요
이제 동녘교회 성도들은 녀석을 한 눈에 알아봅니다
권사님 한분은 목사님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맞습니다.. 친구이지요
나야 말로 강도 만난 자를 돌봐주었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예수님 말씀따라 사는 사람된 기분입니다
6
누가복음 10장에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자를 발견하면서 가엾게 여겼다고 합니다 누가는 '가엽게 여긴다'는 헬라어로 '스프랑크니죠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뜻은 '창자가 뒤틀리고 끊어져 아플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난 받는 이웃을 보면서 내장이 뒤틀리고, 쓰릴 정도로, 아픔이 공유되어지는 상태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 보면서 으레적으로 '불쌍하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전현 다른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강도만난 자였고, 'J'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여전히 나는 도울 수 있는 사람이었고, 'J'와 같은 방문자들은 도움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불쌍한 이들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랑의 대상, 나와 함께 주님의 이웃되는 사람이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었던 탓입니다
내 이웃이 'J'가 아니라, 'J'가 있었기에 비로서 나는 이웃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J'가 없었다면 누가복음안에 등장하는 레위인, 제사장 보다 못한 사람일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7
여전히 저는 사마리아인이 되지 못한 강도만난 자입니다 내가 도와주면서 으스대고자 하는 수단으로서 '이웃'을 찾는 이가 아니라, '이웃'이 되어줄 수 있는 사마리아인 말입니다
그나저나 .. 오늘은 예배 끝나고 밥 먹으러 오겠다던 'J'가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밥은 먹었는지 오늘 밤이 'J'에게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