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3 주현후 마지막 변화주일
성서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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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출애굽기 24:12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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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독서 베드로후서 1:16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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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독서 마태복음 17:1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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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송 시편 2, 또는 99
설교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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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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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영광'의 '비밀'
1 절망하는 세상
봄을 맞으러 나가는 느슨한 마음을 화들짝 놀라게 할 만큼 매서운 추위가 있던 한주였습니다. 이제는 잘 정리해서 옷장속에 넣어두었던 두꺼운 옷들을 다시금 꺼내는 마음이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와 함께 반갑지 않은 소식도 더하고 있습니다. 잠잠해지는가 싶던 바이러스가 다시 고개를 들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맹위를 떨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네 인생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조금은 나아진 듯 싶고, 이제는 한고비를 넘어 조금 살만해졌다 싶었는데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진 것처럼 암담한 것이 그러합니다. 이런 일이 자꾸만 반복되다보면 ‘봄’이 온다는 기쁨에 심드렁해지는 것처럼, 무거운 쇳덩이를 매고 걷는 것만 같은 삶에서 격려나 위로도 흐려지기만 할 뿐입니다.
2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
아주대학교 외상센터장이었던 이국종 교수가 지난 1월 한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떠돕니다. ‘이었던’ 이라 말한 것은, 그가 센터장의 자리를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서 들었던 목소리는 국민 모두의 영웅으로 존경받던 그의 모습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초라했습니다. 초췌하고, 지치고, 상처입고, 배신당하고, 절망하고,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짙은 허무함만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대중앞에 보여졌던 모습과 달리, 병원도, 정치인들도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와 그의 팀을 이용만하고, 돌아온 것은 비난과 욕설과 분노 뿐이었다고 합니다. 계속되던 인터뷰 도중, 뜻하지 않게 뱉어진 그의 한 마디는 이것입니다
‘이번 생은 망했어요 완전히 망했어요 아무것도 않 할거에요…’
그가 겪어야 했던 일들도, 옳고 그의 문제도 다 헤아려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의 말이 담고 있는 그 허무의 깊이가 빛을 모땅 잃어버린 어둠으로 읽혀지지 먹먹했습니다. 생명을 살리려, 열정을 다해, 그것만을 위해 달려가던 그 걸음이 멈추어진 것은 어찌할 수 없다는 패망감, 소망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3 그러나 ! 빛은 어둠속에서 드러나는 법입니다
빛을 잃어버린 세상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인간은 조그마한 빛만 있어도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것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강인함입니다. 하지만 일단 어둠에 삼키워지는 순간에는 그런 강인함도 속수무책입니다. 한번 드리워진 어둠은 쉽게 걷어지지 않듯, 절망은 망령처럼 우리 삶에 들러붙어 버립니다. 어둠의 틀은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둠이, 절망이 빛을 보지 못하게 가리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밤이 아무리 짙어도 새벽이 오는 것처럼, 폭풍이 몰아쳐도 먹구름 너머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처럼, 빛은 늘 있어 왔습니다.
‘빛’은 그 자체로서는 우리 눈에 보이질 않습니다. 오히려 빛은 어둠속에서 드러나는 법입니다. 어둠이 존재하는 곳에서야 ‘빛’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어둠이 드리워졌을 때 우리는 ‘빛’을 찾아야 합니다. 제 아무리 짙은 어둠이 드리워진 밤길을 거닐게 되어도, ‘빛’을 찾으면 어둠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고, 가야할 길을 잃지도 않게됩니다. 아무리 살기가 퍽퍽하고, 힘이 들고 지쳐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도, 빛만 발견하면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어둠을 밝히는 ‘빛’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습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의 추적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고 인도하던 ‘불기둥’의 빛을 보았고, 시내산에 올랐던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만났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은 다멕섹에서 기이한 빛 가운데 예수를 만났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는 산위에 오르셨던 예수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빛’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빛과 만났던 이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빛을 발견하셨습니까 ? 그 빛은 어디에 있습니까 ?
4 빛을 엿보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바다를 건넜으니 이제는 제 힘으로는 다시 되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곧장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허락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백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야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백성 다운 것인지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주시기 위해 그들의 걸음을 시내산으로 이끄셨고, 모세를 산위로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 24:16 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산위에 가득했고, 17절은 그 영광이 맹렬한 불처럼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이 아닌데 ‘불’처럼 보였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이 사건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와 같은 지도자들의 전하는 이야기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이 백성과 만나주시고 함께 하시는 분임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모세를 통해 주어졌던 말씀의 권위를 높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심이 분명하니, 그의 말씀은 생명처럼 지켜야할 무게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임재앞에 있던 모세는 어떠했을까요 ? 어쩌면 그때 모세는 이제 막 열린 광야길앞에서 막연했을 겁니다. 과연 가나안까지 갈 수 있을지, 이 백성을 잘 인도해낼 수 있을지 자신없어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이후부터 모세의 말에는 힘이 서려있게 되었을 겁니다. 바라보는 곳이 분명해지면 확신은 사람을 당당하게 만들어줍니다. 예측할 수 없는 광야길의 시작앞에서 지도자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을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한 힘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5 예수 안에서 발견했던 영광의 빛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늙은 노사도 베드로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 다시 오신다던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다 지쳐 떠나간 이들도 있습니다. 바보처럼 살지 않겠노라며 믿음의 길을 등지고 세상을 따라 길을 나선 이들도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교회에 머물고 있지만 과연 이 믿음의 길을 지켜가는 것이 옳은지 회의에 지쳐가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믿음의 길을 지켜갈 수 있도록, 다시금 부르심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할 부담이 큽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격려해주어야 할까요 ? 어떤 말을 전해주고,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주님을 따르며 사는 믿음의 길에 든든히 세워져갈 수 있을까요 ?
그 간절함 뒤에 주님을 따르던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사도의 그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요한, 야고보 사도와 함께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랐을 때, 이들은 매우 낯설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해같은 빛으로 변화되었고, 그때 하늘에서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이다’ 라는 놀라운 음성이 들렸던 것입니다.
산에 올랐던 그 날 베드로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목격했던 하나님 경험을 예수님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을 휘감았던 그 빛은 여전히 베드로의 삶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보았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낯설은 경험,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분명한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면 이 빛을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따르며 다녔던 그 3년간 경험했던 온갖 이적들과 사람들의 열광, 그리고 주님을 바라볼 때마다 품었던 꿈들도 다 사라지고 기억마져 희미해졌습니다. 오히려 닭이 세번 울때까지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던 그 실패의 기억만 날카롭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기억은 더 이상 아픔도, 상처도, 좌절도 아닙니다. 그 날 주님안에서 발견했던 그 ‘빛’의 기억이 아픔의 기억을 회복시켜주었고,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을 수 있는 이유가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있을 때, 과연 이 길이 옳은 것일까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맞으신가? 라는 질문이 올라오는 그때 마다, 예수님을 휘감았던 그 빛이 마음을 비추고, 주님을 향한 신뢰를 회복시켜주었습니다. 그날 그를 비추었던 주님의 빛은, 놀랍게도 더욱 생생하고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지금도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심을 믿을 수 있도록 그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6 기쁨의 경험, ‘비밀’
산위에서 내려오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미스테리아’라고 하는 이 ‘비밀’은 아직 폭로되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이해될 수 없는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바로 이 말입니다. 문제는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지 못할 때 낙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쉽게 이해될 수 없으니 하나님의 뜻을 구함을 포기하고, 덮어두어야 할까요 ? 그 비밀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니 기대는 더 커지고 소망은 깊어지는 겁니다.
우리의 기도가 간절해 지는 것은, 내가 할 수 없고,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고백이 터져나오는 그때입니다. 그때가 우리의 한계 너머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비밀에 절실해지는 때입니다. 절실함의 크기만큼 기대감도 커지게 되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던가, 주님의 빛이라는 것은, 지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특별한 ‘임마누엘’ 경험입니다. 이 경험은 어둠속에서도 삶을 지탱해낼 만큼 강렬하고, 또한 실재적입니다.
연인들의 사랑을 불같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 사랑의 열정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만들고, 또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의 기쁨이 되니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옅어지고 식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경험은 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입니다. 일단 주님께서 허탄한 신화속에서 아닌, 우리 삶에 함께 하고 계신다는 ‘비밀’을 경험하게 되면, 더 이상 현실에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깊은 목마름, 주님을 향한 더 깊은 갈망이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이 소망이야 말로 삶을 뒤덮는 모든 아픔과, 절망과,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믿음의 능력이 됩니다.
7 말씀이 빛입니다
이 경험으로 맡겨진 사명의 길을 오롯이 걸어왔던 베드로 사도는 외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보다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_베드로후서 1:19a
우리에게 전해주신 주님의 말씀이야 말로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내는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 이 말씀이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이 비밀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비밀’은 누구나 알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설명해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특별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이 놀라운 경험은 말씀을 통해서만 폭로되어진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사도 베드로가 권면한 것외에는 다른 설명을 더 해낼 재간은 없습니다. 애당초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헛되어 보이십니까 ?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사는 것이 무슨 능력이 될 수 있는지 회의가 되십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을 향해 걸음을 디딜수록,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더 깊은 능력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두려움이 밀려들 때, 두려움을 몰아내는 길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 뿐입니다. 절망이 드리워져 소망을 모두 잃어버리는 어둠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도, 나아갈 길을 밝히는 빛은 주님의 말씀 뿐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말할 수 밖에는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습니까 ?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벽앞에 좌절하고 있습니까 ? 반복되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채 갇혀 버렸습니까 ?
우리는 주님이 전해주신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능력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이 분명해지면 질수록 다른 것에 마음을 돌리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수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모든 소망을 주님께만 두게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이 비밀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걸어 가십시오.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만 같을지라도, 아직은 어둠같지만 말씀을 따라 다시금 또 다시금 걷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 마음속에서 모든 절망의 어둠을 걷어내고 밝은 빛을 채워내는 샛별을 발견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오히려 오늘 만큼은 다시금 또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알 수 없는 내일의 두려움앞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해 내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