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거울 앞에

2016/ 08/ 28 성령강림절 15주 창조절

ViaNegaTiva 2016. 8. 28. 14:30

2016/08/28  


본문 - 예레미야 2:4 ~ 13         https://youtu.be/V7imhTun3h0  = '클릭'하시면 예배 영상을 나누실 수 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또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의 영이신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구원’을 얻기 위함이며, 지금도 믿고 있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함인 줄로 믿습니다

많은 경우에 교회에서 어떤 자리에서, 사역을, 봉사를, 섬김을, 교육을 얼마나, 또 점점 더 잘 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받으면 주저함없이 ‘예’라고 답하지만, 정작 그 하나님의 성품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가 ? 라는 질문에는 쉽사리 답을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께도 질문해 볼까요 ?

여러분은 예수님을 처음 믿기로 작정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 매일 매일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고 계시다고 답하실 수 있으십니까 ?

대체 그렇게 많이 예수와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듣고, 교육까지 받는 우리가 왜 그리 주님의 성품에 참여하라는 말씀이 어려운 것일까요 ? 저는 그 원인을 두가지로 생각합니다 *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망각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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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더위가 몰려가고 계절이 바뀌었음에 대한 낭만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던 때, 이웃 나라들에서는 재난으로 인한 고통이 휩쓸고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차를 두고 미얀마와 이탈리아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큰 지진이었음에도 미얀마에서는 희생자가 적었던 반면에 이탈리아에서는 오늘 아침 공식집계로 281명이 숨진 참담한 피해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인터넷은 또 한번 시끄럽기만 합니다 불교 유적들이 많은 미얀마를 하나님이 지진으로 벌하셨다는 몇몇 기독교인들의 반응에 네티즌들이 벌떼 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정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일까요 ? 정말 그렇다면, 기독교국가인 이탈리아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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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예레미야서에도 비슷한 잣대와 비판의 시각이 발견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패망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헛된 것들, 우상들을 쫓았기 때문이라고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고발은 단순히 종교성이 부진하거나 타락했기 때문에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이라는 고발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비판, 비난, 저주의 분위기와는 사뭇다르다고 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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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이 고발의 주된 내용은  예레미야의 이 고발이 하나님의 최종적 판결이라는 측면보다는 퍠망하게 된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선지자의 해석이라는 점입니다 성서를 읽을 때, 특히 구약의 성서를 읽을 때 반드시 기억해야할 기준이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이 세상을 향한 글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신앙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삶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성안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이 북왕국이 망하고, 유다가 패망하기에 이른 원인이야 말로 하나님과의 관계 즉, 신앙의 이유에서 찾고 해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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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기독교가 아니니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식의 섣부른 종교의 언어를 쏟아내는 것은 참으로 미숙하기 짝이 없는 반응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원인을 돌리려는 습관은 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 것도 아니며,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삶에 닥쳐오는 희노애락의 세상살이 모두를 하나님을 제1원인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반대로 인간은 결과를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도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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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의로우시고 선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처럼, 정복하고, 억압하고, 폭력의 방식으로 이 땅을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지만, 죄와 인간의 자유의지와 탐욕이 초래한 결과에 좌절되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연약함이나 나약함이 아닙니다

사랑에 바탕을 둔 하나님의 인내와 하나님의 참으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패배처럼 보이는 참으심은 반드시 하나님의 승리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죄의 지배력에 굴복당하실 수 없으신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죄와 폭력과 사망에 방치하실 만큼 무능하거나 부족한 사랑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승리의 날을 우리는 ‘종말’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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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지진이 발생하였을까요 ? 왜 이곳 저곳을 가리지 않고 지진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 기독교국가나 불교국가나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기독교국가는 비켜가고 불교국가에만 지진이 발생했다면, 우리는 옹졸하고 차별하는 신이라 비난할 것입니다 반대로 불교국가는 비켜가고 기독교국가만 재난을 겪는다면, 하나님을 무능한 신이라 비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땅을 가리지 않고 내려주시는 공평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당신의 품으로 품으시는 크신 품입니다 재난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우리는 정확히 이유를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지각판의 뒤틀림으로 인해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하필 지금, 왜 이렇게, 왜 그곳에서 발생하게 되었을까 ? 라는 질문에는 우리의 답은 과학에 바탕을 둔 것이든, 신학적인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든 너무나 왜소하고 빈약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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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이러한 재난과 고통과 절망이 발생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죄’가 지배하는 왜곡된 세상의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하나님의 선하신 사랑의 법이 억눌림을 받고, 거부당하는 세상이 경험하는 현실, 아니 하나님의 통치를 상실한 세계의 실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땅에, 바로 이러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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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처럼 처연하고 절망적인 세상앞에 직면한 우리가 해야할 것은 이제 무엇입니까 ? 그 절망의 자리에서 희생자들의 가족들, 구조대들과 함께 우리가 해야할 것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바로 6절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느냐?’는 질문안에 있습니다 도움을 어떻게 주고, 어떻게 대책을 세우고, 어떻게 위로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닙니다 죄가 현실인 세상속에서 이 문제를 벗어나도 우리는 또 같은 무게의 고통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죄의 지배력이 가져다준 고통과 절망과 참담한 현실속에서 나를 구원해줄 전능자를 찾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근원적 질문입니다 답변 자체가 너무 허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질문입니다


고통의 순간, 절망과 결정적인 위급한 상황이되면 저절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상황이 악화될 수록 우리는 근원적 질문, 즉 하나님을 찾지 않기가 쉽습니다 상황에 모든 것을 빼앗겨 그 속에서 당황하고 번민하고 허우적 대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구조대의 구조 튜브나 손길을 바로 붙잡지 못하고 생명의 위협속에 당황해서 마구 허우적 거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위급한 순간일 수록 침착하여야 하고, 위태한 순간일 수록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고 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는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는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실제와 똑같은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지진, 해일, 화산폭발등 천재지변에 의한 사고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대 사망자수 비율로 따지면 우리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저히 희생자수가 적은 이유는 바로 평상시에 실제와 동일한 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체 절명의 순간에, 또 그러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자를 찾는 이 질문은 일상의 삶, 살아감의 자리에서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않됩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삶속에서 피상적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현혹되거나 만족해서 주저앉지 않고 그 너머 생명을 담는 근원적 질문과 그 질문의 답이 되시는 하나님을 찾는 영적인 안목과 깊이를 얻어가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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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을 고발하고 있는데, 7절이나 8절은 단순히 그들의 종교성 그러니까 이방신을 따랐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7절의 가나안에 들어와 우상을 따름으로 땅을 더럽혔다는 말씀은 가나안의 풍요를 따라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디계신가를 쫓지 아니하고 온통 풍성하고 풍요로운 것, 안락하고, 안정된 것을 쫓는 그들의 삶이 땅을 더럽힌 것과 같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교회는 나오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쫓지 않고, 다만 가나안과 같은 세상이 제시하는 풍요와 안락함과 성공만을 쫓는 삶, 그렇게 세상이 제시하는 방식과방법을 쫓는 삶이야 말로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고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8절은 어떻습니까 ?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으신 것처럼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제사장, 율법을 다루는 사람, 관리들, 선지자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본래 직임이 하나님을 쫓는 이들이며, 하나님을 아는 이들이었고, 하나님을 전해야하는 사명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대로 살 수 있도록 세상을 가르치고 비추어야할 사람들이, 도무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산다는 말은, 다른 신을 쫓고, 우상을 섬기고, 종교를 바꾸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 삶에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않고, 내 삶을 구속하거나, 내 삶을 인도하지 못하는 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사는 것’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거나, 하나님을 애써 무시하면서 내 옳은 대로, 내 좋은대로 사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늘 그런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고통과 참담한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은 내 맘대로 편히 살아가는 것에 거추장스러운 짐입니다 막상 고통이 발생한 때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단 고통이 발생하면 하나님없이 어떻게든 해보려는 몸부림에 정신을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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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를 찾지 않았기에 이 백성이 패망했다는 말을 뒤집어 살펴보십시오 예레미야를 통한 이 말씀은 반대로 어디에 있든지, 그곳이 절망의 자리이든지, 참담함의 자리이든지, 세상안에 겪게 되는 슬픔의 자리이든지와 관계 없이 하나님을 찾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언제든지 구원의 손을 내미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공동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며, 예레미야의 고발의 본 목적입니다 지금이라도 손을 내밀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입니다 그길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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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 우리의 삶의 정체성과 삶의 존패는 여러분이 인정하시든, 인정하시지 않으시든과 관계 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안에 놓여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며 사는 삶의 방식을 따를 것인지, 하나님이 없으신 것처럼 내 뜻을 주인삼아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물론 선택은 자유이지만, 선택의 결과는 극명하게 나뉩니다 하나님을 믿는자와 믿지 않는자로 말입니다


하나님 편의 답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있습니다

이사야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당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자를 찾기 위한 우리 주님의 성실하심을 경험하십시오 구원은 주님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