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속의 예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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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안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합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내 성도들의 신앙의 자리에서 늘 지워지지 않는 약점이기도 한 문제가 있다 예언자들의 삶의 자리에 대한 몰이해와 그릇된 신앙 해석이겠지요
아마도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예언자들의 모습은
바알의 사제들과의 전투에서 하늘에서 불이 임하도록? 했던 엘리야의 압도적인 카리스마틱한 모습이 아닐런지 ...
혹은, 대학입학시즌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예수 점쟁이?들의 'fortune-telling' 을 예언이라고 생각하는 영적 무지함도 더하여,
여전히 예언자라고 하면 특별한 영적, 신적, 비범한 능력자들을 떠올리고, 또 주변에 혹세무민하는 점쟁이들을 하나님의 예언자로 우러르려는 샤먼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십일조' 장으로 불리우며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말라기도 그러하고,
거룩한? 신앙의 회복과 세속적 삶을 양단하려는 문자적 강화의 도구로 예언서를 사용하고 있는 강단의 전횡도 여전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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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약에 등장하던, 아니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어떤 능력자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동일한 범부들 ( * 예언자들의 출신은 제사장, 왕족, 농부등 다양한 삶으 스펙트럼이 녹아있습니다) 이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영적인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영적인 감각이란, 영적 능력이 아니라 삶의 자리 모든 영역을 하나님과의 관계성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면서, 매일 아침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선선한 바람속에서, 푸르렀던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이나, 돌담 사이에 자라고 있는 들풀 속에서도 생명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감각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런 영적 감각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감각은 개인의 삶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너머 세상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들이 과연 하나님의 뜻과 함께 하모니를 이루며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예민함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동물적 탐욕에 탐닉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둔감해지기 마련입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매몰되어 버린 시대를 살고 있으니, 영적인 예민함은 이미 신화처럼 낯설기만 합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말처럼,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처럼 껍데기는 존재하지만 그 안에 가득해야할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은 비어 있는 공허한 존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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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감각이 예민하여 하나님께 순수했던 그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받았고, 그것에 삶을 맡길 수 있었을까요 ? 대체 하나님 말씀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요 ?
예언자들처럼 영적으로 예민해지기를 원한다면, 예언자들이 받았던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떠한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들고 일어섰던 것인지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예언자들의 출현은 이스라엘의 국가화부터 비롯합니다 야훼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 공동체였던 이스라엘이, '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신앙공동체의 점정인 '하나님'과 국가의 정점인 '왕' 사이의 긴장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나비'라 불리우던 예언자들입니다
국가는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지탱되는 공동체입니다 물론 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선출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란, 권력을 지배하지 못하고 권력에 지배되는 존재임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선한 의지와 목적은 어느새 권력이 가져다 주는 쾌락과 지배욕으로 대체되고, 타자로서의 백성들이 아닌 왕이나 그에 빌붙는 권력자들로서 '우리'의 탐욕에 타락하고 맙니다
예언자들의 자리는 바로 이곳입니다 예언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우뢰처럼 호통치는 하나님 말씀의 맞은편은 언제나 신정 통치의 지배자들, 그러니까 왕, 제사장, 재판관의 타락한 권력의 앞입니다 지주와 부유층들의 타락이 이스라엘 자유농민들의 생존 기반을 붕괴시킨 주범임을, 그들의 죄를 탄핵하고 고발하는 것이 예언자들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발의 근거는, 그들의 탄핵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예언자들에 의한 세속적 권력에 대한 비난과 탄핵이 인간의 타락과 집단적 죄악성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단죄함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 성서속에서 만나는 예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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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성경적 예언은 명백합니다 사람의 길흉화복을 내다보고 점을 보는 점쟁이들의 자리는 예언이 아닙니다
신비적 체험이나 집단 최면의 자리도 또한 예언이 아닙니다
성경적 예언은,
왕이나 제사장, 재판관 지주들과 같은 하나님의 통치권력을 위임받은 책임자들 ( * 오늘날로 하면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권력이나 재벌, 기업가, 사회적 책임있는 모든 이들 )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통치속에 지탱되는 세상이 과연 하나님의 정의에 부합한지, 그런 세상속에 함께 아우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하나님의 뜻에 따르며 살고 있는 것인지를 고발하는 목소리입니다
권력이나 부와 명예의 유혹이나 억압 앞에서도 오롯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무릎을 꿇는 것이 바른 예언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참된 예언자는 늘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나라와 지금의 살아감의 자리 사이의 괴리와 차이에 예민한 사람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강처럼 하수처럼 흘러가는 하나님의 나라와 벌어진 세상에 숨이 막히는 사람, 노예들의 자유와 생명에도 예민하신 하나님과 달리 연약한 자들의 삶을 짓밟는 땅이 참담해 가슴을 찢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예언자입니다
자연스레 예언자들의 삶은 고독합니다 세상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묻혀갈 수 없는, 반드시 각을 세워야만 하는, 그래서 하나님께는 합당하지만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을 수 없는 고독함이 예언자들의 몫입니다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의 앞에 선다, 믿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오늘의 세련된 종교인으로서의 자리가 아닙니다
내게 하나님이 한분 이시듯,
하나님 앞에서만 존재되는 '나'를 발견하는 고독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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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는 이러한 예언자의 자리를 확장시킵니다
구약의 요엘 선지자의 예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나 영적인 예민함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나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라고 핑계될 수 없습니다 !!!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하나님께 향한 영적인 예민함으로 깨어 내가 숨쉬며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외쳐야만 합니다
그것이 예언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복음 전파이며, 선교입니다
예언자들의 삶의 자리는,
'이스라엘과 야웨 하나님 사이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죄가 끊을 수 없다' 고 믿는 신앙의 자리였으며,
예언자들의 신앙의 자리가 옳았음이 입증된 것이 바로 '나사렛 예수와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음을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