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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9 사순절 세번째 주일성서의 거울 앞에 2017. 3. 19. 14:04
2017/03/19 사순절 세번째 주일
본문 - 출애굽기 17:1 ~ 7
https://youtu.be/jkV0Zlc6wYM - '클릭' 하시면 설교 영상을 나누실 수 있습니다
'채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1
내일은 ‘춘분’입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분기점이 되는 날입니다 춘분을 기준으로, 이제부터 매서운 추위로 상징되는 어둠이 힘을 잃고 따스한 빛의 온기가 더 길어지게 됩니다
매서운 겨울 끝날 것 같지 않던 혹한과, 새벽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두터운 어둠 너머를 볼 수 없는 우리였는데, 우리들의 둔한 시각과 관계 없이, 봄 볕은 겨울을 그렇게 균열내고 있었음을 체감하게 되는 춘분은 기특한 위로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력상 가장 어두운 터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둠 역시 수난의 시간이 지나고 곧 부활을 향해 치달아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막상 춘분을 지나 봄이 오고나면 쉽게 잊혀지지만, 겨울의 시간은 언제나 매섭고 채워지지 않는 헛헛한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새벽이 오기 이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던가요 ? 타는 목마름의 끝에서야 갈증을 해소시키는 청량감을 경험하고, 가난의 끝자락을 통과한 사람만이 누림의 기쁨을 알 수 있고, 건강을 잃어본 사람이 건강의 가치를 깨닫고, 사람을 잃어본 이 만이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그리고 겨울이 길어야 봄이 간절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영적인 겨울 속에서 채움의 목마름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2
매일의 시간속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비어 있는 공허함의 존재인지를 인식도 하지 못한채, 그저 주어지는 대로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무엇을 좇아 살고 있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가질 여유가 없이 말입니다
그런대로 집있고, 차 있고, 직장있고, 건강하면 잘 사는 것으로, 아쉬울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는 있지만, "화려하지만 헛헛하고, 다 가졌으나 한없이 부족하던 삶을 하나님이 주신 가족들이 바꿔놓았다’ 라고 말하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사람들의 갑작스런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려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전보다 꽤 살만해 졌음에도 더 걱정거리가 많고, 더 배고프고, 더 상실감이 큽니다
국민중 20%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그 중에 70%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울증의 자각 증상은 공허함과 고독이라고 하는데, 대체 우리에게 무엇이 비어 있기에 늘상 부족함속에 허덕이게 되는 것일까요 ?
무엇을 가져보아도, 무엇을 채워보아도 결국은 늘 부족함앞에 서게 되는 것을 보면, 인간은 누구나 깨어진 그릇과 같은 존재라는 말은 정확한 인간 정의가 아닐까요 ?
문제는 깨어진 그릇이기에 대체 무엇을 채워야 깨어진 부분을 막고, 이 허무와 공허의 빈 공간이 채워질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어 방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고 쉽게 살아내려고 묻어두려고 합니다 아침을 시작하고, 세상이 요구하며 제공하는 동일한 시간표에 내몰려 살다보면, 그것만 채우면 된다는 몰아 부침속에서 내 비어있는 곳은 점점 커져만 가게 됩니다
마치 마약에 중독되어 건강이 파괴되고 있는지도 모른채 몸을 망가트리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도착했습니다 르비딤의 이름 뜻은 ‘휴식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름과 걸맞지 않게 그들의 앞은 광야만 펼쳐져있습니다 애굽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뒤 하나님은 그들을 곧장 젖과 꼴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광야앞으로 몰아세우셨습니다
광야… 부족함 투성이의 투박한 땅입니다 이곳을 보아도, 저곳을 보아도 부족함만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쉴만한 곳도, 정착할 곳도 없습니다 어디 한구석 만족할 건덕지가 보이질 않습니다
더욱이 그 땅의 이름은 ‘르비딤’ 휴식처, 원기 회복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기만 합니다
대체 왜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을까요 ?
르비딤은 물이 없는 땅, 광야입니다 광야 길에 물이 없음은 치명적입니다 자연스레 백성들의 원망이 들려옵니다 염려, 걱정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릇된 길로 인도한 지도자 모세를 향한 그들의 반응은 일견 타당하고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모세가 말씀에 따라 반석을 치자 물이 솟아 오라 맛사(시험) 므리바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고 스스로 채울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은 불모의 그 땅에서, 내일이 두려워, 이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없다고, 아니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 ‘맛사’라고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비어 있음, 채울 수 없는 깨어짐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의 원망을 뚫고, 하나님은 반석을 쳐서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주셨습니다
4
따지고 보니 광야로 내 몰으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풍요가, 가나안의 채움으로 이스라엘이 풍성함을 누릴 수 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방신이 보여주는 그 번드르르한 물질로는 영혼의 안식을 채울 수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불모의 광야에서라도 하나님은 목마름을 씻어주실 수 있음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살만하다고 하지만, 내 수고함과 내 몸부림으로 채우려고 하는 삶은 늘상 피곤합니다 쉬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 몸부림이 아닌, 하나님의 채우심이 있는 땅이었으니 그 광야야 말로 ‘휴식처’입니다
그러고 보니 광야는 이스라엘의 산 가르침의 학교였고 훈련장인 셈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부유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은, 채움의 기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일의 배고픔, 부족함, 가난, 아픈 시간은 사실은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이스라엘이 서 있는 르비딤, 광야의 길 위에 서 있는 시간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바위를 쳐서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하실 기적의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
5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목마른 존재임을 깨달은 이후에도 여전히 내 스스로 목마름을 씻어 보려 몸부림을 칩니다
내 힘으로 갈함을 채우려는 시도들, 과연 내 빈 공간을 채우고 만족하는 일이 가능할 까요 ?
조금만 정직하게 돌아보면 우리들이 스스로의 빈 곳을 채우려고 몸부림치는 것들은 대부분 근본적을 필요한 것이 아닌, 대체용일 뿐입니다 돈이나 물질로는 육체의 곤함을 채울 수 있을지언정, 상한 심령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더 큰 자극을 원하고 결국 쾌락으로 치닿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쾌락은 순간적이며 영적인 만족이 아닌 더 큰 상실과 상처만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온전해 보여도 실상은 깨어진 그릇이기에 아무리 부어도 채움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너무나 쉽게, 너무나 빨리 사라지고 마는 빈 곳을 채우기 위해서는, 깨어진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압도적인 채움, 마르지 않는 기쁨,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수준이 아닌 멈추지 않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때만 우리 영은 안식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대체 누구라도, 언제라도, 목마르지 않을 샘, 므리바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
에스겔서에서는 므리바가 있던 르비딤을 카데스라고도 불리웁니다 광야 그 목마름과 배고픔의 땅이 ‘거룩한 땅’이었다는 말입니다
광야, 우리의 필요를 채울만한 무엇도 할 수 없는 비어있는 그 땅이 바로 거룩한 땅이라고 합니다 나의 연약함 가운데 주님의 강하심을 경험한 바울의 이야기가 납득이 갑니다 채울 것이 없는 절대의 비어있는 곳에서야 비로서 그 빈 공간을 채우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 하나님이 임하시는 그 땅이, 그 공간이 바로 거룩한 땅입니다 그러니 므리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채우신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우리들의 삶의 자리는 여전히 광야일 뿐입니다 그안에서 우리의 영적인 갈증은 해소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요 4:10,14 )에서 예수님은 영적인 갈함속에 살고 있는 수가성의 여인에게 주님 자신이야 말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샘이시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6
그렇다면 정말 예수는 우리에게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샘일까요 ?
정말 우리는 목마르지 않을수 있을까요 ?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우리의 광야같은 삶 가운데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수 있을까요 ? 물질이, 세상의 쾌락이 가져다 주는 저급한 기쁨이 아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기쁨이 되실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를 믿고, 그의 삶을 좇아 그의 길을 걷는 것이야 말로 삶의 의미를 찾는 길이며, 그 삶이야말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오늘 말씀의 감동을 좇아 예수를 따라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여전한 광야이지만, 여전한 불모의 땅이지만, 여전한 알 수 없는 내일앞에 서 있지만, 깨어진 그릇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그 깨어진 그릇을 넉넉히 채우실 수 있는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진 것 없으나, 넉넉하지 않으나, 탐욕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더 부족한 사람을, 더 가난한 사람을 아파하며 내것을 나누어주는 풍요를 누리게 해줍니다 내 배를 움켜쥐고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헛헛하게 살아가는 급한 삶을 멈추고, 타인의 아픔을 돌아보며 그들과 동참하며 살아가는 여유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예수를 좇는 길은 언제나 풍성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해줍니다
7
하지만 여전히 광야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찰라라도 놓치면 돌부리 밖에는 보이지 않는 땅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광야입니다 힘이 듭니다 때로는 멀리 걸어야합니다
마지막 절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반석이 터져 물이 넘치는 므리바는 우리의 기대하는 대로 늘상 경험되지 않습니다 므리바는 ‘과연 내 삶 가운데 채우실 주님이 계시는가 ?’ 라고 되묻고만 싶어지는 연단의 때에 반석을 터트리는 주님의 손이 존재함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 연단을 이겨낼 때 로마서 5:3,4 연단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주님이 일하시는 맛사 므리바의 땅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움의 땅 광야는 이제 곧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채움’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삶의 방향을 그리스도로 향하십시오 그 때만이 우리 영혼은 참된 안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참회록을 지은 성 어거스틴의 고백으로 설교를 맺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우리는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으며, 당신의 안에서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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