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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6/ 18 성령강림절 2주
    성서의 거울 앞에 2017. 6. 18. 16:20

    2017/ 6/ 18 성령강림절 2


    본문 - 고린도전서 12:4 ~ 11


    https://youtu.be/NF64nnp33kE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누실 수 있습니다



    '성령안에서의 삶, 교회'



    1 - 교회는 성령의 능력안에 세워집니다

    신약성경안에서 등장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사동행전을 보아도 그러하며, 바울이 기록하는 편지를 통해 보게 되는 교회들의 모습도 그러합니다

    초대교회는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통해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를 한 몸처럼 여기며 함께 살아갑니다 게다가 서로의 것을 통용하고 내것 네것으로 구분하지 아니하며 돕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삶 속에서도 늘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아도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무언가 힘이 넘치고 기대가, 소망이 가득해 보이기만 합니다 기뻐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는 형편속에서도, 그들은 함께 모이고, 함께 공유되어진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믿음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그들의 삶은 당시의 신앙 밖의 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었습니다


    누가에 의하면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 그들의 삶과 전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구원받았음을, 또한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워지는 것들, 더욱이 사도행전 2:47을 보면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가치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여전히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속에서 이들은 사람들에게 기대와 소망을 전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기대와 호감,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역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전적으로 ‘성령’의 감화와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잠시 힘을 내볼 수는 있었고, 힘이 넘치는 척, 기대감이 있는 척 살아낼 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삶이 타인을 향해 향기를 내 뿜고 그들에게 희망과 소망의 길을 열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령,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경험

    우리는 저마다의 개성과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삽니다 보여지는 삶의 모습, 기호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사상도 다릅니다 추구하는 이상도 또한 다르고, 신앙의 표상도 사뭇 다르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닙니다 세상은 모두 다름의 경계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념과 사상이 다르고, 삶의 수준도 다릅니다 문화나 생활 수준, 모두가 다릅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다른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끼리 끼리’라고 하는 유대감은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 다르다 보니 나와 같은 사람과의 일체감만이 강화되어진다고 해야할까요?

    나와 같거나 비슷한 경계안에 있는 사람에게와 달리, 그 경계밖에 있는 이들을 우리는 철저히 낯설어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관심으로, 때로는 거부와 저항으로 경계를 더 강화시키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마다 경계 밖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이방인이어야 하고, 늘 고독과 소외속에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끼리’의 유대가 강해질 수록 그 유대감이 주는 안정감은 다른 누군가의 아픔이 될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삶을 거부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의 삶은 그렇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므로 우리는 그 주님의 길과 삶을 따르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예수는 사회적 장벽과 경계에 막히거나 닫혀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경계가 그어지는 곳을 가로지르며 사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을 만나는 일, 과부와 병자, 죄인들을 만나는 일에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그런 경계를 허무는 교회, 성경에서 만나게 되는 교회의 표상으로서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속에 8절부터 10절까지는 성령이 베푸시는 다양한 은사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성령의 신비로운 은사에 마음을 빼앗겨 본문을 읽어 내려 가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8~10절까지 본문속에서 은사의 내용보다 더 중요하게 표현된 단어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다른 사람에게는’,’각 사람에게’ 라는 표현들입니다


    성령은 차별이라는 경계를 허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찾아와 예수처럼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름의 은사가 베풀어지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성령은 은사를 베풀고 있습니다 

    본문은 “어떤 사람에게도, 어떤 사람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래서 각각의 사람들(*모든 사람들)에게…. “라고 읽혀집니다 성령은 어떤 특별한 이들만을 세우고, 그들과만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구약과 달리, 예수를 통해 신약시대의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될 수 있도록 차별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모양은 다 다릅니다 이 사람은 이런 모습으로, 저 사람은 저런 모습으로 세워져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이들입니다


    3 - 서로를 성숙하게 세워가는 성령 공동체

    끼리 끼리 모여 경계를 만들고 강화시켜가는 세상과 달리, 교회 공동체는 모두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주신 분은 한 성령이십니다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경계를 거스를 수 있게 됩니다 은사를 주신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통해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한 몸이신 그리스도안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은사들을 잘 살펴보세요 은사란 경계안에 갇힌 개인이 자신의 신앙적 만족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각 사람 ( = 모든 사람 )에게 주시는 은사는 결국은 타인을 위해 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은 연약한 이를 가르치고 세우기 위함이며,

    병 고치는 은사는 병든 이들을 위해 사용해야하고, 능력, 예언, 분별 등도 모두 교회로 모인 공동체를 위해 사용해야하는 것들입니다 예수를 머리로 하는 신앙공동체 속에서 성령은 서로를 위해 나누고 베풀고 섬기므로 하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능력없고, 힘 없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겠지요 


    성령은 교회를 확장되어져가는 가족 공동체로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의 능력으로, 그의 은사를 통하여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서로를 지체라 말하고, 그이 때문에, 그 사람의 연약함과 슬픔, 아픔 때만에 함께 마음을 쏟으며 아파하는 공동체 말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목적을 가지고 모이는 공동체는 발견되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남들이 모여 자신의 것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의 영적인 성숙을 위해, 그것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으로 아낌없이, 그리고 더욱 풍성히 나누고 베풀며 그것을 기쁨으로 삼을 수 있는 공동체 말입니다 


    일반적인 공동체나 모임과 가족이 다른 것은 많습니다

    다른 공동체는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내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그것으로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고 깨져버립니다

    하지만 가족 공동체는 다릅니다  가족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헤어질 수 없습니다

    화가 나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실망스러워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의 아픔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누군가 잘 되는 것에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안에서 확장된 가족공동체가 가지는 모습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혈연이나 육체적 가족은 아닙니다 아무리 부인하여도 이것은 사실이빈다 이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하지만 다양한 성도들이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는 공동체이기에 여전히 갈등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공동체인 교회, 즉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하는 이 공동체가 다른 것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라는 것과, 사랑의 터위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성령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은사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갈등을 가져다 주는 그 사람도 이 공동체 안에서는 나를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이로서 끌어 안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


    4 맺음

    지금 자신의 삶이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에 많은 이들이 대답을 못합니다 오히려 최근에 있던 힘들고 어렵고 좌절 스러운 일들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어렵지 않게 답을 꺼냅니다 이 시대는 상실과 고독, 아픔과 상처가 참 많습니다 실재로 아무리 저주 받은 것만 같은 삶이라도 그저 힘겹기만 하지는 않을 터인데, 우리는 모두 힘들고 어려운 기억만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우리들 안에 여유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습니다 모두가 우리라는 경계밖에 있는 이방인들일 뿐입니다 타인의 고통은, 나 또는 우리와는 전현 관련이 없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중 누구도 타인없이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들과 사건속에서도 행복을, 감사를 걸러낼 수 있음에도, 그 작은 행복을 간직하며 살 수도 있음에도, 우리는 기쁨을, 행복을, 감사를 경험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힘이 들어 ‘감사’나 ‘행복’을 기억해내거나 간직할 힘도 사라져버렸을 때,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함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내 곁을 지켜주고, 내 시간을 함께 해주며,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나와 같은 경험의 삶을 공유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경계를 벗어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내 맘에 드는지,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끌어안고 함께 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것,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비로서 가능한 사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덕분에, 누군가의 수고와 헌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이 일하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만난 우리는 모두, 서로를 섬기고 영적으로 성숙하여질 수 있도록 도우라고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능력으로, 어떤 방식으로 섬기고 도울 수 있는지는 각각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예수의 사람들로 세워져가기 위해 우리는 모두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오늘도 우리 안에서 경계를 너머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의 위로와 소망을 회복하도록,  또한 그렇게 세상의 고립과 갈등의 공동체를 거부하고 예수의 모습을 닮아, 세상의 길이 되고, 소망이 되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 안에서 ‘각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시고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성령의 은사를 서로의 자리를 바라보며 사용하고 섬기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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