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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4 대림절 넷째주성서의 거울 앞에 2017. 12. 24. 16:15
본문 - 누가복음 1:46 ~ 56
https://youtu.be/KRFJe3Urts8 = '클릭' 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일과 제3독서 누가복음 본문은 ‘마리아의 찬가’라고 불리우는 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가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찬미하는 찬양입니다
찬가란 무엇입니까? 찬미와 찬양을 말합니다 사람이나, 공동체가 신께 올리는 찬미는 어떤 때에 부를까요 ? 다양한 경우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기쁨과 환희를 경험하게 하신 전능자께 감사하는 때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찬가를 부를 수 없는 시대입니다 기쁨과 환희를 경험하고, 감사해야할 일들 보다는 절망과 슬픔이 일상에서 반복되어지고, 돈에 정신을 놓고 영혼을 팔아 결국에는 나의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잔인한 세상에 살고 있기에 그러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충북 제천에서 발생한 화재로 무고한 우리의 이웃을 잃고 말았습니다 참혹한 사건 앞에 설 때마다 절치부심하지 못하고 기쁨과 소망의 찬가가 흘러나와야할 때에 통곡과 비가를 부를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삶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경쟁의 땅에서, 희생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착하게 살라기 보다는 지혜롭고, 빠르게 행동해서 손해보지 말고 살라 가르치는 세상, 이웃의 아픔과 절망을 제 몸에 난 생채기 만도 못하게 여기는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나를, 내 가족을 돌보시고 은혜를 부어 주셨다면서, 과연 내 바람과 옅은 꿈 따위 이루어졌다는 찬가를 부르는 것이 허락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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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서일과 대림절 사주 제3독서 복음서 본문인 누가복음 1장은 마리아의 찬가라는 별칭이 붙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의 잉태를 예고 받은 이후 하나님을 찬미하며 부르는 찬가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찬가는 분명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거나 생각하는 찬가들과는 그 처한 상황이 다른 것 같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는 나 자신의 탐욕에 기대는 사치스러운 소원 성취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다는, 오늘의 아픔을 극복해내야만하는 신앙의 역설에 기대고 있는 노래이니, ‘한’이나 ‘억울함’이 근저에 베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접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이야말로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상 누가복음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신비스러운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 아닙니다 누가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은 예수의 삶과, 그의 죽음과 부활에 주목하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출신인지, 대단한 능력이 있는지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기에는 차별 많은 오늘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아득하기만 하니, 우리 역시 그 일에 그닥 눈을 기울일 수도 없습니다
마리아의 찬가가 예수의 탄생, 즉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닿아 있음을 알기에 한 많은 여인의 찬가속에 담긴 눈물은 보지 못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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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이천년전 팔레스타인 땅, 특별히 로마의 속국으로 오랜 전쟁과 참화속에서 살고 있던 시대적,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그리고 남녀의 차별이 극심했던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온 몸으로 살아낸 여인이었습니다 게다가 동정녀의 탄생이라니요 ? 유대교 문화의 땅에서 이 사건 자체는 부정한 여인으로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절체 절명의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 여인이 지금 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곧 명예 살인을 당해도 한 마디 저항 할 수 없는 처지인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신앙으로 극복하려고 달려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힘에 부쳐 치열한 삶의 경계속에 처해 있기는 매한가지 입니다 돌아보고 나니 찬가를 불러야할 인생이지만, 살아가고 있는 길 위에서의 찬가란 여간 낯설은 이야기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때로는 도리어 찬가보다는 비가를 불러야 마땅한 것이 인생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눈을 뜨고 보니 가난이 찌들어 있는 가정에서, 내일의 꿈을 저당잡힌 채 절망에 익숙한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이나, 한 평생 열심히 살아낸 결국 맞이하게 되는 암담한 현실들, 너무나 평범한 일상속에 예고 없이 찾아온 제천에서 일어난 화재사고와 같은 일들 속에서 우리는 사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만만할 수 없는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삶 속에서 가질 수 있는 기쁨이나 만족이란 눈에 보이지만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오늘이 아닌, 내일에 유보되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입에서는 한숨과 자조, 삶과 세상을 향한 원망의 노래가 매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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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리아는 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찬가 속에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이유가 6가지 소개되고 있습니다
찬양의 본질적인 이유는 48절 상반절인 하나님께서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이며, 이후로 하나님이 그를 돌보신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 48절 후반, 만세에 복있다 일컬음을 얻을 것,
둘째 49절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신 것
셋째 50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긍휼이 있을 것
넷째 51절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셔서 생각이 교만한 이들을 흩으시는 것
다섯째 52절 권세 있는 이를 낮추고 비천한 자를 높이실 것
여섯째 53절 주린 자를 배불리 먹이시고,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신 것
이렇게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긍휼을 베푸신 것을 찬미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입으로 찬미하고 있는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이야 말로 하늘의 정의와 공의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속에서 고백되고 있는 그의 찬양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한 기쁨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미의 고백은 모두 자신의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천사 가브리엘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 들려준 한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입니다
게다가 찬미의 이유들은 모두 마리아 개인적인 것들이 아닌, 당시 이스라엘의 무너진 삶의 회복에 관한 것들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현실은 외세에 의해 피폐해진 땅, 그속에서 아첨하며 얍삭빠르게 살아가는 이들이 호위호식하는 때였습니다 정직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박탈과 소외속에 아파해야하는 땅이었고, 곳곳마다 가난과 질병, 세기말적인 두려움과 좌절에 물들어 있던 땅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은 될대로 되라고 자포자기 하는 이들이나, 이런 세상 한탕하며 살자고 내달리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바름과 정직함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경멸히 여깁니다 교만하고 부유하고 힘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권세가, 가난한 이들은 자신들의 아픔이 영원할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찬가는, 하나님께서 이런 현실을 뒤집어 버리실 것이라는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아니기에 눈물은 흐르지만,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역사를 가로질러 찾아오셨으니 세상은 바뀔 것이라는 소망에 벅찬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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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은 늘 그렇듯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한 것임을 알고, 그리 되기를 바라고 있음에도 그렇게 변화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루어질 것을 향한 기쁨에 겨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 마리아는 어떻게 이런 내일을 노래할 수 있었을까요 ?
누가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통해 이 땅에 찾아오실 것이라고 전해준 사건을 밝혀줍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현실의 어떤 갈라진 틈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다 제 욕심에 취해 살고 있는 땅인 줄 알았는데 자신을 희생하며 바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아픈 이들의 곁을 지켜주는 의인들, 불의함을 저항하는 사람들이 이 암담한 현실에 하나님의 역사를 전하는 천사들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세상은 망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불의함을 무너트리고, 거드름 피우는 교만한 이들의 자리를 흩으시며 정의와 공의, 생명이 싹트는 땅으로 고치실 것을 믿으며 일어설 수 있지 않습니까 ? 그들이 있기에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자조섞인 말로 올곧음의 길을, 소망의 길을 포기하려는 우리가 다시금 일어서게 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수 많은 천사들의 소망의 언어가 마리아에게 전해졌습니다 마리아는 차별없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 불의함에 온몸으로 항거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예수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는 천사들의 고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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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대림절 마지막주를 맞이했습니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우리의 소망과 갈망이 주의 성탄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날은 바로 49절 마리아가 외쳤던 것처럼, ‘능하신 이’가 큰 일을 행하시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큰 일, 그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약속이 되어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주의 큰 소망의 날을 고난과 소외와 조롱속에 버림 받은 마리아들에게 전하여주고,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이유가 되어주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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