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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12/ 11 대림절 3주
    성서의 거울 앞에 2016. 12. 11. 14:06

    2016/ 12/ 11     대림절 3주


    본문 - 이사야 35 : 1 ~ 10                                   https://youtu.be/mRzpFGw5LXM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 소망의 나라 '






    1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마음이 아파옵니다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면 한없이 눈물이 나옵니다 

    감동이 됩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사람이 더 힘들고, 더 어렵고, 더 비참한 삶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더  눈물이 나지만, 그에 비례하여 더 감동을 받게 됩니다

    왜 ?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감동을 받게 될까요 ? 그의 삶의 자리가 내 삶의 자리와 겹쳐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저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었다면 ? 나보다 더 힘든 상황속에서도 저 사람이 웃을 수 있다면, 나도 비록 오늘은 아프고 눈물이 나지만, 내일은 웃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듣거나 본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거나 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돌아본 삶은 분명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는 절망으로 보였던 답이 없던 환경이지만, 누군가가 이보다 더한 환경을 뚫고 일어섰음을 보았기에 절망은 넘어서야할 희망의 언덕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셈이지요


    2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절망을 뚫고 나아가는 걸음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걸음이 무너져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현실이라는 실재가 더욱 강력하게 삶을 짓누르고 있음을 인정하며 무력하게 무너져야만 합니다 아니 몸부림이 몸부림으로 끝나버리는 일들은 너무나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희망은, 소망은 바로 그렇게 두텁게만 보이는 현실속에 서 있을 때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현실로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먼저 지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소망’을 바라보며 일어서는 것입니다


    오늘 대림절 3주 제1독서인 이사야 35장은 북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위협앞에 놓여있는 유다백성들의 삶의 자리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풍전등화와 같다고 할까요 ? 바람앞에 등불 같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삶의 자리를 좀더 치열하게 인식하고 공유해야만 합니다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아이가 대학에 떨어지고, 살림 살이가 나아지지 않고, 취업이 잘 않되는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진 그 삶의 자리의 절망은 늘 발견되어지는 ‘죽음’ 자체입니다

    이미 거대제국 앗수르에 의하여 북왕국이 속절없이 산산조각 난 것을 경험한 이후 예루살렘을 향해 거침없이 침노하는 그들의 말발굽 소리는 사형선고를 받은 인간의 절망과 동일합니다


    3

    감동적인 이들의 간증이나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데, 금방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우리들의 삶의 자리는 어느새 같은 곳에서 발견되어집니다 왜일까요 ? 이제 나도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왜 내 삶은 여전히 그 자리일까요 ?


    고난과 환난과 같은 일들에 직면했을 때, 우리들의 반응은 보통 고난과 환란을 나쁜 것, 악한 것, 그래서 반드시 내 삶에서 사라지고 없애야만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찾아오는 순간부터 우리는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내가 과연 무엇을 잘못했을까 ? 내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그러나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그런 차원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로부터 비롯합니다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고, 겪는 일이 다를 뿐 저마다 어려움과 아픔을, 눈물과 상처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아니 그럴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은 절망과 죽음의 땅이 생명이 일어나는 소망의 땅으로 회복돌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절망과 죽음을 상징하는 첫 머리가 1절에서 보는 ‘광야와 메마른 땅’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유다 백성들의 처해있는 삶의 자리야말로 광야와 메마른 땅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직 유다는 망하지 않았고, 아직 사람들은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궁극적으로 지금의 유다는 생명을 상실한 광야, 메마른 땅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발앞에 도달해있고, 그 죽음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어떠한 가능성도 없는 불쌍한 상태가 바로 광야이고, 메마른 땅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나무 종자도 그 땅에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날 수 없는 죽음에 지배당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이며,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이 땅의 현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현실속에 살고 있습니다 앗수르는 그들의 삶의 자리에 침노한 죽음의 현실입니다


    이 현실 때문에 고통스럽고, 이 현실이 두렵고, 이 현실이 절망과 아픔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 땅의 현실입니다 생명이 없어 죽음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런 고통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황홀한 기쁨이 바라보는 현실은 박탈과 빈곤이 지배하는 땅입니다 


    4

    광야… 그렇습니다 이 땅은 물이 없고, 이 땅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 생명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마주하며 경험해야하는 이 땅, 이 아픔이 생명이 없으므로, 그 결핍으로 인한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말은 이 땅의 삶은 바로 하나님의 부재로 인한 ‘죄’라고 하는 영역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쉽게 설명해볼까요 ? 예쁜 꼿이 있습니다 그 꼿이 아름답게 피어있을 수 있는 것은, 물과 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만일 햇볕을 쪼이려 옥상에 올려놓고 문을 닫은 채 잊어버리고 만다면, 비록 며칠 동안은 꽃이 달려있을수 있지만, 곧 죽고 말 것입니다 물과 양분이 공급되어질 곳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꽃이 방치된 옥상은 ‘죄’ = ‘현실’이며, 물과 양분이 있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 = ‘생명’입니다


    우리들 현실의 고통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이 상실되어 있는 세상이기에, ‘죽음’이 지배하고 있는 땅에는 ‘죽음’의 증상인 고통, 아픔, 질병, 상처, 다툼과 같은 절망의 현실이 뒤 덮여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땅에서 경험하는 절망의 현실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뿐입니다 


    5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절망’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요 ? 불행히도 우리 안에는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안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사야가 직면하고 있는 유다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이 모습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유다의 백성들이 앗수르의 위협앞에서 두려움에 휩쌓여 허둥대며 구원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이사야에게 있어서 허둥댈 이유가 없습니다 애당초 우리안에는 구원이 없으며, 이 현실은 하나님 부재의 땅이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담담할 수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 똑같은 현실을 살고 있고, 똑같은 현실의 절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이 현실의 근원적인 원인을 보고 있습니다 이 근원적인 원인이 생명의 부재에 있다면, 그 해답도 분명합니다 ‘생명’이 죽음에 덮인 땅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지자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로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6

    2절부터 10절까지는 희망의 이야기들이 선지자의 입을 통해 노래되어집니다

    약한 손이 강해지고,

    겁내는 자들이 두려움을 몰아내어 굳세어지고,

    맹인의 눈이 밝아지며,

    못듣는 사람이 듣게 되고,

    저는 사람이 사슴처럼 뛰어 놀고,

    말 못하는 자가 노래하고,

    광야는 물이 솟고, 사막은 시내가 흐르고

    승냥이가 눞던 죽음의 땅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나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생명의 회복입니다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벅차오는 장엄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시대에, 약한 자의 손이 강해지고 겁내는 이들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까요 ? 과연 맹인의 눈은 밝아지고 귀는 열려질 수 있을까요 ? 다리저는 사람이 사슴처럼 뛸 수 있을까요 ? 과학이 진보하고, 더 부유한 나라가 되면, 복지가 늘어나면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요 ? 그런 것들은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을 흉내낼 수 있을 뿐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닮은 사람들, 생명이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길과 진리와 생명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와 마음을 함께 하는 이들이,

    약한 이의 손을 잡아주고,

    겁먹고 두려워하는 이의 곁에 함께 서주고,

    앞을 볼 수 없는 자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못듣는 이를 위해 귀가 되어주며,

    저는 사람을 업고 뛰어가주고,

    말 못하는 이의 입이 되어주고,

    광야에 물을 대어주고, 사막에 나무를 심고, 죽음이 지배하는 땅을 푸르게 만들면 됩니다


    9절 하반절에서 10절까지 읽어봅시다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아멘 !


    구속함을 받은 자,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는 그 땅에 노래가 넘치며, 시온이 아닌, 그들의 머리 위에 희락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고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만 소망이 달려있습니다


    7

    오늘 우리가 아픔과 상처를 두고 기도한다면 주께서 우리의 외침을 듣고 고난의 삶으로부터 기쁨의 잔을 마시도록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매일에 경험하는 아픔과 슬픔은 또한 그로부터의 벗어남은 근본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해야할 근본적인 구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그가 보내시는 이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실, ‘죽음’이라는 절대 폭력을 무너트리실 ‘평화’의 왕이 오셔야만 이루어질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이, 그 평화가 구속함을 받은 사람, 속량을 받은 우리를 통하여 시온에 머무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모든 입술에 기쁨과 즐거움의 노래가 넘쳐나도록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대림의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우리들의 영에, 우리들의 처한 환경에, 우리들의 치열한 삶의 영역안에 생명의 주께서 임하셔서 더불어,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땅이 되어지는 소망의 땅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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