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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7 창조절 셋째주성서의 거울 앞에 2017. 9. 17. 13:28
본문 - 출애굽기 14:15 ~ 31
https://youtu.be/Z2yo8AWGK6A = '클릭'하시면 설교 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경외함이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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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우주 밖을 처음 접한 한명의 우주인은 온 우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은 생명체와도 같은 별이 지구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수 많은 생명이 그 안에서 함께 어우러져있기 때문일 것이며, 무엇보다 그 정점에는 인간이 자리하고 있음도 분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인류의 역사를 낭만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 가히 인류의 발전과 삶은 전쟁과 폭력의 역사라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 전 지구적으로 폭력과 전쟁은 끊이지 않은 현실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은 온통 죽음과 조우하는 두려움과 절망에 휩쌓여 있습니다
그러니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투쟁과 몸부림의 이야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생명’을 한자로 풀이하면 ‘살라고 명령을 받았다’라는 뜻이 됩니다 죽으라고 태어나거나 존재하는 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살다’와 ‘생명’의 핵심인 ‘생’자는 존재하지 못하도록, 죽으라고 억누르는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살라고 명령한 힘에 기대어 오롯이 뚫고 솟아 오르는 힘이기도 합니다 마치 겨우네 얼어붙은 땅을 뚫고 봄의 싹이 틔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오늘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죽음의 힘을 떨쳐낼 수 있어야만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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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틔워내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모든 힘과 권력과 위세를 거부하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며, 생명을 가로막는 것을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실제의 힘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뚫고 솟아 올라야 하기에, 억누름과 지배와 폭압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반대로 억누름에 거부하지 않고 무반응하는 것은 모두 죽음과 동의어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 인간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기에, 하나님 외에 어떤 억압과 지배라도 그 힘을 거부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그런 힘이 있었지만, 죄로 인해 파괴되어진 인간은 그런 자유로의 힘을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류의 역사는 생명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빼앗으려는 이들과, 그것을 거부하는 자유를 누리려는 이들의 갈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그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한 이들일까요 ? 몇 차례의 설교를 통해 이미 우리의 본성과 우리의 실존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자유하지 못한 존재임을 이야기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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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우리는 모두 자유하지 못합니다 두려움의 힘이 오늘의 평안과 기쁨과 안락을 향한 우리의 솟아 오름을 가로막습니다 돈이 요구하는 길을 거부하지 못하고, 굴복해야만 합니다 사회 시스템이 제어하고 명령하는 것을 순응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존재였던 인간이, 이제는 돈 몇푼에도, 내일에 대한 염려나 걱정 때문에, 건강 때문에 억눌리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와 모양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자유를 잃어버린 곤고한 존재들입니다
매일의 수고와 몸부림, 남들보다 더 많이 땀흘리고, 젊음과 시간과 선택과 행복 마져도 저당잡은채 매일을 불안과 초조, 갈등과 원망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오직 내 삶을 억압할 수 있는 모든 힘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내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운 좋게 눈 앞에 보이는 억압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을 누리면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는 ‘죽음’이 지배하는 매일에 속절없이 방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단지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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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정작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음하며 사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소극적인 박탈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박탈과 억압이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실재력으로 작동하는 순간 우리 개인의 삶은 모두 ‘지옥’의 한 날이 되고 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모든 것을 억압하는 실재적인 힘이 나를 누르고 있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을 때 그 절망감과 패배감은 얼마나 클까요 ?
오늘 성경에서 만나게 되는 ‘히브리’인들이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의 히브리인들은 대부분 당대의 초일류 국가인 이집트의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자유의 박탈에도 괴로워하는 우리인데, 매일 매일이 채찍과 짐승처럼 여겨지며 살아야 하는, 나의 내일도, 그리고 나의 자손들의 운명도 전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거웠을까요 ?
이집트라고 하는 거대한 국가, 그리고 그의 통치자 바로의 압도적인 힘과 권력앞에서 히브리인들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매일 매일이 통곡이었고, 그들의 음식과 밥은 눈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삶이 사백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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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를 기록한 기자는 바로에 맞서고, 대 제국 이집트의 권력을 거부하고 항거할 수 있는 ‘자유’의 힘이 전무한 히브리 노예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 별 볼일 없던 노예들이 하루 아침에 영웅이라도 된 것일까요 ? 특별한 능력들이 생겨난 것일까요 ?
성경은 그들이 바로에 맞설 수 있었던 자유의 힘의 이름을 ‘하나님 야웨’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제국에 노예로 통곡하며 절규하는 그들의 신음과 고통을 들으신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여 바로와 싸우시고, 바로의 제국의 권세와 힘을 거부해 버리신 사건이 바로 ‘출애굽’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서 기자는 하나님 야웨가 대 제국 이집트의 바로와 바로의 신들의 권세로부터 히브리인들을 구출해 내신 하나의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해석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당대의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의 대 제국 이집트, 그리고 이집트의 통치자 바로의 권력을 단번에 무너트리고 거부할 수 있으신 절대의 ‘자유’이신 하나님 야웨께서, 아무런 힘도 없고 그저 이리 저리 채이다가 비참하게 스러져야하는 운명인 히브리 노예들의 신이 되어주시겠다고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대제국 이집트의 권력을 뒷받침해주는 태양신 ‘라’를 비롯한 수 많은 이방신과 맞서는 힘이 되어주시려고 전능하신 하나님 야웨가 노예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사건이 출애굽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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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능을 통해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와 그를 따르던 히브리 자유민들이 바로의 손을 피해 다다른 곳은 홍해라고 하는 바다 앞이었습니다 야웨에게 눌렸던 바로가 다시금 칼과 창을 들고 히브리인들을 잡으러 좇아오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본 이스라엘 자손들의 반응을 본문 10절은 ‘두려움’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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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이스라엘과 달리 하나님은 너무나 덤덤하게도 모세에게 13절 ‘두려워하지 마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없음으로부터 ‘살라’고 명령하셨듯 말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지만, 한번 찾아온 두려움의 대상이 사라지기 이전까지 이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서 모세가 한 것은 지팡이를 들고 선 것이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차브’ 가만히 서 있었을 뿐입니다 실상 아무것도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21절은 그 날, 동풍이 불어와 밤이 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여 바다에 길을 틔였는데, 물이 벽처럼 둘러싸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길을 통해 죽음의 권세를 등에 지고 좇는 바로를 피해 홍해를 건너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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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제국 이집트의 권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야웨의 역사가 홍해앞에서 다시금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경험한 바로와 이집트의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반응을 출애굽 기자는 ‘영광’과 ‘경외’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7 ~ 18절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마지막 31절에서는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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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보드’, 헬라어로는 ‘독사’라고 읽습니다 뜻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으신 일’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이집트의 말과 기병을 무찌를 수 있는 것은 히브리 노예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불가능의 일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오직 ‘하나님 야웨’께서만이 하실 수 있으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였고, 경이로운 광경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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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 홍해가 갈라지기 직전까지 좇아오는 ‘바로’는 이스라엘의 부인할 수 없는 실재적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극적으로 이집트에서 탈출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바로’와 이집트 제국의 권력은 두려움의 근원입니다 먼 발치에서 그들의 말 발굽 소리와 먼지 바람이 일어나는 것만을 보고도 간담이 서늘해진 이스라엘은 이제 죽겠되었다고 자포자기 하고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찾아오는 ‘두려움’의 문제들이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 야웨께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고 계시는 도중인데도 이스라엘에게는 여전히 ‘바로’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극복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 하나님의 은혜안에 머물 때에는,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세하지만, 어느새 우리 삶의 한 구석에서 발견되어지는 ‘두려움’의 힘은 모든 삶의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끝장난 인생 같아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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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스라엘이,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고,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경이로우신 권능을 목격하고 나서입니다
이집트의 바로가 태양처럼 보이고, 이집트의 권세가 하늘을 덮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나님 야웨의 권능의 크고 놀라우심이 이 모든 인간의 권세와 힘을 단박에 덮어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믿게 되었다고 31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폭압과 권력과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비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 그 모든 두려움의 근원을 압도적으로 무찌르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 경이로우신 하나님의 압도적인 높으심과 넓으심을 직면하는 것이야 말로 근본적인 해결의 자리입니다 그것이 경험되지 않고는 늘 되풀이되는 홍해의 진전의 자리일 뿐입니다
다시금 두렵고, 다시금 좌절하고, 다시금 쓰러집니다 모든 문제보다 크고, 모든 권세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큰 산에 올라 장대하고 웅장한 자연의 감동에 머물때 땅 아래에서 헤매이던 문제들이 작아보이기 시작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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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직면할 수 있을까요 ? 어떻게 해야 모든 두려움과 절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
13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모세의 선언입니다 ‘…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당장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뒤 이은 ‘가만히 서서’라는 말, 히브리어로 ‘야차브’라고 하는 말을 눈여겨 보십시오 이 말뜻은 ‘놓아 두다, 확고히 서다, 당당하게 자리를 고수하다’라는 뜻입니다
답은 분명합니다 문제를 보지 마십시오 두려움을 묵상하지 마십시오 ‘바로’를 돌아보지 마시고, 홍해의 깊이에 주눅들지 마십시오 두려움을 보는 순간 ‘자유’의 힘이 없는 우리는 늘상 무너질 수 밖에는 없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있도록 놓아두십시오 한 걸음을 더 나아가려거나, 몸부림 치려거나 회피하려거나 하지 마시고, 경이로우신 하나님의 행하실 역사의 앞에 자리를 지키며 서 계십시오 영혼의 복판에 홍해를 가르시는 경이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여러분의 문제를 뚫고 세상의 권세와 폭압을 거부하시는, 사람들이 허우적 대는 팔자나 운명조차 한 호흡에 거부해버리시는,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대 제국 이집트의 막강한 말과 마병의 힘을 거부해 버리시는 하나님을 그려보십시오
이 세상이 아무리 폭풍처럼 몰아치며 우리를 덮으려도 사납게 달려와도,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경이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 높고 위대하신 일을 행하실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 속에 틈타고 들어온, 우리의 삶 가운데 스며 들어온 모든 두려움이 떠나갈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평강이 우리 삶과 영혼을 지키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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