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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7 성령강림후 20 - 세계성찬주일성서의 거울 앞에 2018. 10. 6. 23:01
본문 - 마태복음 5:1 ~ 13
https://youtu.be/5k7zpm3UiwE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산 아래 있는 사람들, 산 위에 계신 예수'
1
팔 복의 말씀 두번째 시간입니다
‘복’을 추구하고 갈망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그 만큼 박복하고 황폐함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운명은 ‘부족함’ 즉 ‘결핍’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적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이,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가,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생명’의 결핍이라고 하는 존재적 문제가 주어져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하는 팔복의 첫번째 선언은 그래서 자꾸만 귀에 맴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만 할까요 ?
2
누가복음이 주목하는 ‘가난한 사람’과 마태가 주목하고 있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차이가 있을까요 ?
누가와 마태는 사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가난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의 안정감을 파괴합니다 늘 불안하고, 늘 초조합니다 자신의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의 명령앞에 초라해집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또한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누가와 마태는 모두 ‘가난’의 주 근저를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찾아냅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가난에만 시선을 고정시키는 사람은 늘상 염려, 근심, 걱정을 달고 살게 됩니다
하지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달라지게 됩니다
3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
자신의 삶과 인생앞에서 무력감과 절망앞에 놓여있는 사람, 결국은 자기 스스로의 구원의 불가함에 직면한 사람, 스스로를 구원할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뼈져리게 고백하는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키를 자라게 할 수도 없으며, 우리의 오늘을 지켜낼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세워놓은 바벨탑은 한 줌의 먼지처럼 스러질 것들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탑을 쌓으려 달려갑니다
정말 우리가 힘들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정말 가난해서 힘들고, 건강이 나빠서 힘들고, 상황이 좋지 못해 힘들고, 힘이 없고, 능력이 없으니 힘이 드는 것일까요 ?
아닙니다 실상은 ( 그런 상황속에서 )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에 힘이 든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에 대한 답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안의 것을 박박 긁어내어 무엇인가를 이루어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그저 ‘가난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4
심령이 가난하게 된다는 것은 가치관이 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더 잘해내고, 더 많이 해내야만 하는 삶에서, 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경험하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지면, 결국 자신의 삶을 구원할 이를 향하여 눈을 들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구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해 질 수록 내 구원이 돈이 아니었음을 알고, 내 구원이 상황의 변화에 있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힘이고, 그들의 자원이고, 그들의 가능성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에 대한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 자기 스스로의 구원의 무능함을 인정한 이들의 구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나 자신이 가난하므로 늘 풍성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5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삶과 영혼의 가난앞에 무너져있지 않습니다 그의 가난은 하나님을 향한 적극적인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재촉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셔야만 살아갈 수 있기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셔야만 먹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열어가셔야만 열리는 인생이기에 기도합니다
6
오늘 본문의 1절을 다시 봅시다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4장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의 걸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귀신을 내어좇고 병자를 일으키시며 복음을 전하시는 모습뒤에, 사람들이 예수에게 몰려듭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던 곳은 산 아래입니다
그런데 5장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예수를 따라 자신의 인생을 건 제자들이 주님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주님의 팔복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결론적으로 ‘하늘의 복’인 오늘 팔복의 말씀은 불특정의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6
4장에 몰려든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5장은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
당시에 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고, 병든 사람들도 있었으며, 아픈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관심은 여전히 내 배고픔이, 내 .... 해결되는 한 끼의 식사에만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적을 베푸실 때 마다 사람들은 예수를 왕으로 그를 세우려고만 마음을 씁니다
오늘 예수를 통해 배고픔이 해결되고, 아픔이 사라지고, 고통이 치유되어도, 여전히 내일은 다시 아프고, 다시 배고플 것입니다 여전히 나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산 아래에 머무는 이들은 산 위로 오르시는 예수의 뒷 모습만 바라보며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이 반복되는 산 아래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들이 정말 가난한 이들일까요 ?
여러분, 정말 배고픈 사람은 체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 * 부끄러움의 이야기, 군대 이야기 )
그래서 이런 사람은 산 아래에 머무르지 않는다 !
7
하지만 문제와 상황과 여건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들은 산 아래에 머물고 맙니다
여전히 문제와 씨름하고, 여전히 ....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곱씹으며 살아가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산 위에 예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
이들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내 안에 구원이 없음을 알기에, 궁극적으로 구원이신 주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빈다 늘상 하나님의 구원에 눈을 마추는 이들입니다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의 것임이로다’
8
‘천국’은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역사가 실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이들의 것이라는 말씀은 ,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 가난의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시면 부유함의 자리가 되고, 내 아픔의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시면 회복과 강건함의 역사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천국은 무엇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까 ? 다시 말해 우리 삶의 궁극적인 구원은 어떻게 경험될 수 있습니까 ?
우리의 가난, 우리 심령의 가난이 고백되는 자리, 즉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신 삶의 영역안에서 이루어지고 경험되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절망과 아픔의 시간, 즉 ‘하나님 부재’의 시간은 믿음의 페러다임안에서는 바로 그 순간이야 말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점임을 알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해 질 때 우리는 바로 그 시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 것을 보지 못하면 살 수 없기에, 용기를 내어 그것에 운명을 걸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다른 가능성이 없기에 ...
9
따지고 보면, 3절의 심령이 가난한 것이나 4절의 애통하는 것 모두 내 것의 상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가 움켜쥐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다고 붙들고 몸부림 치는 것들이 무너지는 현실의 자리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내 구원이 상실되었음을 깨닫는 자리, 나의 무능의 자리, 내가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애통하는 것은, 귀한 것을 잃어버리는 자리입니다 고통스럽고 상실감이 아려오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가난의 자리에서야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팔복이 가르쳐주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바로 이런 이들에게 일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기쁨의 이유가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내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내 소유를 놓고, 내 스스로의 구원을 상실한 이들의 삶에 구원의 이름이 되어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가난’을 기회로 ‘돈’과 ‘재물’을 무기 삼아 우리의 자유와 신앙을 빼앗아가려는 세상을 거슬려,
주님은 ‘천국’을 우리의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소중한 것을 잃고 아파하는 이들 앞에 냉담하고, 조롱하고, 조소하는 세상과 달리,
넓은 품으로 안아주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10
우리에게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산 아래에 머무는 순간 우리는 그저 가난한 사람일 뿐, 여전히 문제와 아픔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일 뿐입니다 ( 쓰레기들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놓으면, 버리면 되는데 .... )
주님을 바라만 보시며 그렇게 여전히 산 아래에 머물겠습니까 ?
아니면,
‘가난’의 이유가 되는 재물, 건강,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주님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시겠습니까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용기를 내어, 믿음을 가지고 산 위로 오르는 그 순간, 가난하여 죽을 것 같고, 애통하여 고통스러울 것 같은 그 삶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평강으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존_웨슬리 #동녘교회 #팔복 #가난한_자 #심령이_가난한_자 #산_위에_머무시는_예수를_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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