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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8 성령강림후 7주성서의 거울 앞에 2019. 7. 28. 08:13
성서일과
제1독서 호세아 1:2 ~ 10 ( * 본문 )
제2독서 골로새서 2:6 ~ 15 ( 16 ~ 19 ) /
제3독서 누가복음 11:1 ~ 13 /
응송 시편 85편
# 음성파일 1 - https://drive.google.com/open?id=1gKyOIVlXU7_oPGTXBblsNUKHux3keZZg
2 - https://drive.google.com/open?id=1_q97Peq84vZ6fO_NMvEtWQWlarRURqDd
#고용량 1 - https://youtu.be/D-Lh9pjCdYw
2 - https://youtu.be/AqSrHGqNdD4 '클릭' 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 저용량 https://youtu.be/BRhM7Ds0arA '클릭' 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나의 이름은 '로암미' 입니다"
#01
오늘 제1독서 구약본문인 호세아서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메시지의 내용이 독특합니다 하나님은 으레 선지자의 말을 통해서 말씀하시지만, 호세아에게는 독특하게도 고멜이라는 여인과의 결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메신저인 호세아의 삶 자체가 메시지가 된 셈입니다 메시지가 된 메신저 자신의 삶은 너무나 무겁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정말 우리 마음을 무너트리는 것은 실상은 메시지 자체의 무게입니다
그리고 고멜과의 파탄난 결혼생활과 자녀들의 이름을 통한 메시지를 접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 ? 과연 징계가 목적이었을까 ?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예견되는 확신에 찬 (이루어질)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을 보니, 정말 하나님께서 대단히 진노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02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하고 낳은 세 자녀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심판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라고 징계하시기로 확정하신 것일까요 ?
당신 백성을 버리고, 용서하지 않고 이제는 버리시기로 말입니다
물론 그 동안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배신과 악행만 보면 충분히 심정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하루 이틀이지요 아무리 해도 똑같고 변화되지 않고 양심이 굳은 그들인데요 사랑으로, 은혜로, 부르시고, 끌어안으셔도 듣지 않는 그들인데요 말씀을 모욕하던 그들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일까 ? 아무래도 계속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호적에서 빼버릴테야 ! 나가버려! 라고 하는 부모의 말은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예고된 이 징계의 내용들은 모두 다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왕조를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그 왕조에서 손을 떼신다는 것이고,
불쌍히 여기지도, 용서하시지도 않으신다는 것은, 이제 그런 불쌍히 여길 만한, 용서할 만한 대상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두렵고 무서운 처벌은 체벌이나 야단이 아니라, ‘이제는 모른다 니 마음대로 하라~ ‘ 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댓말은 ‘무관심’이라지요 사랑을 배신한 이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입니다
마지막 ‘로암미’ 도 ‘하나님 백성이 아니다 !’ 라고 하는 선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니 애비가 아니다 !’ 라는 말씀입니다 모두다 ‘이제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 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돈을 먹으며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분의 생명과 은혜가 공급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모르고 살 때는 모르지만, 주님 아니시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고 난 이후에 이제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제 나는 너희와 모든 과계를 끊고 말겠다’라고 하시니 이것은 얼마나 처참한 상황입니까 ? 여러분은 과연 이런 상황을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저는 못삽니다 다른 것은 다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괜찮고, 밥이 없어 굶어도 괜찮습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세상이 다 내게서 의미 없어져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주님 없이는 않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의 고백인줄로 믿습니다 참된 생명을, 참된 하늘의 기쁨을 발견한 자의 고백입니다
#03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깨어짐, 우리의 믿음없음 때문에 견디실 수 없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 과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가 지탱될 수 는 있을까요 ? 대체 우리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것인데 말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10절을 이렇게 주어를 구분하여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져서,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되어 보거나 세어 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너희를 로암미라 부른 땅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두 끊어져버린 사람들.. 하나님과 관계 없이 사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일리가 없다는 그 이야기, 우리를 향한 그 평가와 조소와 조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우리들 입에서 신음처럼 쏟아져나오던 이야기였고, 채이며 살아가는 우리를 보며 세상이 쏟아놓던 말들이었습니다
#04
하나님과의 이 관계의 깨어짐은 이미 이스라엘이 자초한 삶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왕조가 망하는 길을 선택하였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버린 것이 그들이었으며,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지 않습니까 ? !!!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복’은 하늘에서부터 부어지고 내려오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이 ‘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는 이 ‘복’을 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 받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살아갑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복’을 피해가려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땅이 말하는 거짓된 복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갑니다
복의 근원이신 주님은 저 만치 떨어트려 놓고 살아가니, 월요일부터, 아침부터 주님은 저 만치 잊어버리려 애쓰듯 살아가고 있으니, 내 마음 내가 지킬 수 없는 것인데 기도하지 않으면서, 내 인생 내가 걸어갈 수 없으니 주님께 붙들리려 하지 않으면서, 내 인생 채울 것이 내게 없으니 하늘의 은혜를 갈망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절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셨다 !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 라고 주억거립니다
실상은 지난 한 주간 우리가 ‘로암미’가 아니었습니까 ?
세상에서,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과 가까이 있는 이들이,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야 ~ 너는, 저 사람은, 나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맞어’ 이런 경험안에 살아내셨습니까 ?
그러니 하나님은 지금 억울하십니다대체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길은 대체 뭡니까 ?
#05
‘로암미’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하나님 자녀답지 않게 살아가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먹고 사는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베푸시는 일용할 양식이 아닌 땅이 약속하는 쌓아둘 것을 구하며 살아왔습니다
(*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하나님 자녀가 아니니, 하나님이 답이 아니니, 하나님이 공급자가 아니시니, 세상의 것을 먹으려고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가까이, 타락을 주저하지 않고, 쾌락을 좇으며 살게 됩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세상도 그렇게 손가락질 하며 외칩니다 ‘너는 하나님 자녀일리 없다 !’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가, 우리의 신앙이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요 ?
우리는 참으로 내 이름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먹고 사는 사람인지 모른 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06
하나님은 그런 이들에게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서, 그의 말, 그의 삶을 통해 찾아가신 것입니다
언제나 이렇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고, 상하게 하고, 놓아버리고, 망가트리고, 버리는데, 늘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십니다 말씀으로 깨어진 우리 삶을 찾아오십니다
성경은 모든 곳에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건, 상황, 사람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도 결국 성경을 통해서 ‘주님’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수님을 발견하게, 볼 수 있도록 채근하는 것일까요 ?
하나님께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다거나, 질투심이 많으셔서 ? 그럴까요 ? 그것은 착각입니다
사람 끼리도 진실되이 사랑할 줄 모르고, 정직할 줄 모르며, 배반하고, 변질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사랑에 그렇게 목말라 하시는 하나님이실까요 ?
이 질문은, 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셨는가?라는 질문과도 동일합니다
’로암미’로 살아가는 참혹한 인생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하심이 답입니다 그래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예슈아의 또 다른 발음입니다
주님은, 천덕구러기처럼 이런 땅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언제 내 삶이 변화될 것인지, 아니 이런 삶에 끝은 올 것인지를 눈물로 꾹꾹 삼키우며 살아가야만 하는 당신 백성들 구원하시려고 찾아오신 ‘예수’(구원)이십니다
#07
과연 언제 우리는 ‘로암미’라고 하는 이름을 언제나 떼어버릴 수 있을까요 ? 말씀안에서 은혜받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지만, 다시금 도망치는 고멜처럼, 하나님 없이, 은혜 없이 깨어지고 마는 버려진 우리의 이름 말입니다
10절의 말씀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어지는 그때는 언제쯤 우리 삶에 찾아올 까요 ? 언제쯤 이 약속의 말씀을 삶의 능력으로 실감하며 살 수 있을까요 ?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1장에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의 이런 땅에, 이런 우리 삶에 ‘그의 나라가 임하는 그 날’은 언제’일까요 ? 우리는 언제쯤이면 주님과 늘 동행하는 것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은혜안에서 살게 될까요 ?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이 않 계신 것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살았습니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
‘로암미’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입니다
우리를 결코 버릴 수 없어, 포기하시지 않고 찾아오시는 주님을 주목하십시오
시편 94: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기자는 85편 8절에서 주님의 성도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망령된 곳으로 돌아가지만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정의와 평화가 열매맺게 하신답니다
대체 망령된 곳이 어디입니까 ? 하나님을 등지는 곳, 하나님 없이 사는 곳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믿음 없음’의 삶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믿음 없음’은 죄입니다 여기 계시며, 구원하시는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염려, 근심, 낙담 하는 것도 죄입니다 악을 좇고, 불의를 추구하고, 욕심에 사로잡혀 범죄하며 사는 것도, 불평과 원망도 죄입니다 모두 여기서 일하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8
바울은 골로새서 2장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2장 12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인하여 다시 사는 사람이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19절 b ‘주님께 연결되어 있으면 마디와 힘줄을 통해 양분을 공급받고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척박한 땅에서도 우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오늘 삶의 자리에서 분투해야할 싸움은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신지, 아니신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09
그 싸움을 이기고 승리하도록,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눅 11:1 ~ 13)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해 마침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기도함 가운데 있을때, 적어도 그때 만큼은 ‘로암미’가 아닙니다
천대받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상처받고, 아파하고, 손가락질 당하던 가능성없는 우리였지만,
먹고 마시는 일에 좇겨 노예처럼 살아가던 우리였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기도하는 순간,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로 돌아온 ‘로암미’들이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 되신다는 예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풍족한 쌓을 것을 찾아 내몰리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그렇게 넘치는 은혜로 책임져주시는 아버지 되심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듣고 그렇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담력을 베푸시는 성령의 감동에 힘입어 오롯이 걸어가는 한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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