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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8/ 6 성령강림절 9주
    성서의 거울 앞에 2017. 8. 6. 13:24

    본문 - 창세기 32:22 ~ 32


    https://youtu.be/9-QhvBlrfxc = '클릭'하시면 설교 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고독, 그 은총의 시간"





    강앞에 야곱, 강을 건널 것인가? 돌아설 것인가

    이십 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기쁨과 기대감이 가득해야하는 길임에도 야곱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이제 저 만치 그리운 고향집이 눈에 희미하게 보입니다 강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지척을 앞에 두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생각해 보니, 형이 받아야 하는 장자의 특권을 빼앗은 뒤 형의 분노를 피해 도망쳤던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권유로 잠시만 떠나면, 잠시만 환란의 때를 피하기만 하면 곧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세월이 참 많이도 지나버렸습니다 힘이 넘치던 근육도 약해졌고, 고향을 떠나 피신했던 삼촌 라반의 집에서 겪어야 했던 타향살이에 몸도 마음도 많이 삭아버렸습니다

    지나온 시간이 꼭 도둑 맞은 것만 같습니다 

    혈육이라고는 하지만 형을 속인 자신보다 더 영악하게 자신을 속였던 삼촌의 집에서 생활했던 그의 시간은 가족을 잃어버린 이방인의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곳에서도 야곱은 ‘고독’했습니다 마음 편히 발 뻗고 쉬어보지 못했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쳐야만 했던 타향살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빈손으로 황망하게 도망쳐야만 했던 그 곳으로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재산도 많이 불려 금의환양하는 길입니다 보란 듯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이십여 년전 이 강을 건너던 그 날처럼 또 다른 두려움에 휨쌓여 있습니다 앞으로의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두려웠던 그 밤처럼, 이제 이 강을 다시 건너면 기다리고 있을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야곱은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이 강을 건너고 나면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시간이며, 닿아있지 않은 미지의 세상입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 틀어지고, 위험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온통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내일에 대한 두려움, 강 건너 미지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입니다 그곳에는 너무나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형 ‘에서’입니다 그 형의 분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피해 도망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강 너머에 바로 그 형이 있습니다

    너무나 분명한, 너무나 확정적인 절망의 자리입니다


    마치 내일, 아니면 내년에, 그도 아니면 몇십년 즈음 뒤에 닥쳐 올지도 모를 절망 때문에 걱정하는 우리들 처럼,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방황하는 우리들 처럼, 야곱은 얍복 강가만 거닐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 설 수 없습니다 삶을 되돌릴 수 없음처럼 말입니다



    홀로선고독

    지금 이 절체절명의 두려움앞에 야곱은 홀로 서 있습니다 이십여 년을 한결같음으로 사랑했던 아내도, 그의 자녀들도, 그렇게 삼촌을 속여가며 악착같이 모은 수 많은 재산도 이 두려움의 자리에 함께 해주지 못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홀로이며, 처연하게 고독합니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한다지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와 함께,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연인과 함께, 그렇게 수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홀로는 서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늘 함께 하는 것 같은 삶이지만, 정작 우리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넘지 못할 문제, 갑작스레 찾아온 환란속에서, 예기치 못했던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는 혼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내게 주어진 생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는 ‘나 자신’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나는 그 날도 혼자였고, 이 땅에서의 주어진 시간을 마감할 때에도 ‘혼자’입니다 

    그러니 ‘고독’은 우리들의 본연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고독’을 낯설어하지 않고, 끌어안을 수 있다면, 도리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해 줄 수 있는,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더 소중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야곱은 미지의 두려움이 가져온 ‘고독’속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지금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처연한 인생, 불쌍한 삶, 많은 것을 소유한 것 같지만 내일의 한 걸음도 장담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휨쌓인 생입니다 그리고 이 출발은 모두 욕심과 탐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씨름 하는 야곱

    성서 일과 제1독서인 창세기 본문은, 고독 가운데로 내어 던져진 야곱이 어떤 사람을 만나 씨름을 하게 됩니다 아침이 되어 정신이 들고나서야 밤이 새도록 씨름하던 그 사람이 분명 하나님이었다고 야곱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밤이 새도록 가슴을 쥐어 뜯으며 몸부림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십년 전 제 한 몸을 위해 도망쳤던 그였지만, 이제는 지켜내고 돌봐야할 것이 많아졌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이들을 누가 책임집니까 ? 

    해결할 수 없는,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현실앞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신 적이 있으십니까 ?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을 구하며 씨름하는 밤을 보내신 적이 있으신가요 ? 고독 가운데서 생의 허무와 씨름하던 야곱은 어느 순간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 * 그러니 고독은 유익합니다 - 생의 가치와 살아내야할 삶의 무게를 발견하는 자리입니다 )




    치열한 씨름의 중심, 환도뼈가 어긋나다

    그러고 보니 야곱은 싸움을 의미하는 씨름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이 늘 치열한 씨름이었습니다 전쟁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인생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밤, 얍복강가에서의 그 씨름에서 그의 허벅지 (야레크)가 어긋났습니다 허벅지는 사람을 지탱하는 중심입니다 씨름과 싸움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는 더이상 제 인생을 두고 씨름할 수 없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 더 이상 씨름하지 못하는 사람 !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120세까지 40년을 달려온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땅을 바로 목전에 두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목적과 성취를 성공으로 보는 우리의 시선으로보면 모세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너무하셨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이 풍요가 기다리는 땅이 아니라, 이방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유의 땅이라는 데에 가치가 있음을 보면, 이미 모세는 가나안에 도착해 있는 셈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다른 이들이었지만, 가나안을 누린 것은 모세인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지도자로 씨름해야하는 그의 은퇴는 모세의 지난 시간을 대하는 하나님의 위로였으며 상급이지 않았을까요 ?


    야곱의 환도뼈,허벅지가 어긋난 것도 우리네 방식으로, 우리네 시선으로 보면 실패와 불행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치심으로 인해서 이제 야곱은 씨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내가 책임지고, 내가 열어가고,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걸음, 두려움과 절망이 연속인 걸음에서 멈추어, 그가 책임지고, 그가 이끄시는 삶을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 그러니 지난 밤 그 고독의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겨낼 수 있는 위로의 밤이었던 셈입니다


    우리들 삶에서 내 꿈과, 내 목적과, 내 가치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강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 내려놓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망할 것 같고, 실패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씨름에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씨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이 씨름이 멈추어져야만 평안과 쉼과 행복이라는 목적을 이룰수가 있습니다


    힘을 다해 꽃을 피우면

    여러분 식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요 ? 대부분 뿌리나, 가지가 아닌 ‘꽃’이라고 할 것입니다 ’알쓸신잡’이라는 종편 프로그램에서 한 패널이 했던 이야기입니다 

    꽃은 식물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가치의 표현일 것입니다

    자연 환경속에서 ‘난’이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난이 꽃을 피우는 때가 언제일까요 ?

    잘 관리되고 좋은 환경에 있을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척박한 환경에 놓였을 때 그때 난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워냄으로 씨앗을 남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봄 교회 계단에 놓여있는 철쭉이 3년만에 꽃을 피웠었지요 물론 물은 계속주었지만 꽃을 피워내지 못하는 녀석을 잘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겨울에도 창가에 방치되어 있었지요 그런 녀석이 봄이 되니 얼마나 큼지막한 꽃을 피웠습니까 ? 


    우리들의 삶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속에서 온 힘을 다하는 바로 그 순간이 언제일까요 ? 야곱처럼 고독 가운데 내 몰려, 온 밤을 씨름 하듯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바로 그 때가 아닐까요 ? 그 아픔의 시간을 지내고 나서야 비로서 자신의 것으로 붙잡고 있던 허망을 내려놓게 됩니다 우리의 고독은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바로 그 순간과 같습니다



    멈춤의 미학, 고독의 은총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이끌어 가실 것, 오늘 내 기대대로, 내 뜻대로, 내 방식대로, 내가 추구하던 대로 되지 않아도 ‘죽지 않음’을 깨닫는 몸부림, 허벅지가 어긋나고 마는 씨름의 자리인 고독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서 우리들 삶의 순간 순간에 머물고 있는 은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순간이 모여 매일이 은혜임을 보게 됩니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지요 ? 평상시 빠르게 달리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고독’은 뒤 쳐지는 것이고, 느려지는 것입니다 그때 나를 돌보시고 내 인생이 전복되거나 파탄나지 않도록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야곱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과 그로 인한 고독의 시간들, 홀로 서 있어야 하는 그 씨름의 자리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고독의 시간을 불평과 불만으로 보내지 않고, 소중한 삶, 우리의 허벅지가, 우리의 힘이, 우리가 그렇게 든든해 하던 중심이 무너지는 패배감 속에서 우리는 삶의 소중함과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픔이 있으므로 지나쳐 버릴 수 없는 행복을 발견하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의 자리에 찾아오는, 아니 스스로 찾아가는 ‘고독’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의 도우심이, 그의 은총이 경험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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