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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8/ 13 성령강림절 10주성서의 거울 앞에 2017. 8. 13. 13:43
본문 - 마태복음 14:22 ~ 33
https://youtu.be/2VwCNFnkS9g = '클릭' 하시면 설교 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넘어짐’, 그 ‘믿음’의 자리에서 ...
1 축복의 인사
참 좋으신 은총과 위로가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무덥고 습하여 매일이 힘겨운 싸움같아 보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쉼을 통한 기대감 보다는, 밤 사이 잠을 설치며 힘겨워한 시간들이 우리의 육체를 지치게 만드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처서’를 한 주 앞두고 있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요 며칠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여름도 그리고 이 여름 내내 우리를 힘겹게 하던 무력감이나, 상처, 그리고 아픔,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던 일들 모두가 지나쳐가고 주의 은총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우리들에게 ‘그 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는 가장 크고 분명한 확신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가꾸어 가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리들 그리스도인에게는 절망의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억눌림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안에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구원인 예수를 세상도 동일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경험되는 예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공허한 신앙의 이름으로만 여겨집니다 간절히 소망하기는, 오늘 예배 가운데 나오신 여러분의 삶 가운데 실재의 구원으로서의 ‘예수’가 살아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세상이 바라보는 ‘예수’
예수님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모두가, 그리고 언제나 예수에 대하여 호의적인 사람들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의 주변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거부한다는 것은, 실은 예수가 보여주었던, 예수가 전해주었던 메시지를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가 전한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습니다 땅의 복음, 세상의 복음인 부와 명예와 출세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와 정의, 생명과 자유가 뒤덮이는 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는 오늘 14장을 시작하면서 한 사건의 기록을 배치시킵니다 바로 세례 요한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지, 세례 요한의 공동체에 속하였었는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직, 간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은 세례 요한이 전하던 회개의 복음과 맛닿아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오늘의 시대, 땅의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향한 회개를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첫 출발이 바로 ‘회개’ 즉 돌이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으로부터 촉발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온 몸으로 전하는 예수에게 들려온 소식은 헤롯에 의한 요한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서는 누구도 주권자나, 통치자가 될 수 없습니다 땅의 권위와 세속적 권력을 부정하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정치적 통치자였던 헤롯에게 거부당했고, 결국 요한은 그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 예수께서 전하시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세례 요한의 그것보다 더 강력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나라 즉 땅의 모든 불의한 권력이 불인되는 나라가 올 것이므로 회심하라고 요청했지만, 예수는 이미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음을 폭로하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왔으니, 이제 땅의 모든 권세는 무효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의 길은 정확히 세례 요한이 직면했던 죽음의 길을 피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또 다른 저항이 있습니다 본문의 뒤를 잇는 15장을 읽어보면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 문제를 들고 예수와 대립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고 있는 이들이었고,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던 이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와 가장 가까워야할 이들이었지만, 이들은 끝내 예수를 거부합니다
왜 일까요 ?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하나님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출신 청년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는 분명한 거부와 저항과 위협이 현실로 드러나고 경험되고 있는 삶을 회피하지 않고 여전히 이와 관계 없이 의연하게 올 곧은 걸음을 힘있게 걸어가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를 지지하고 따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와 함께 하는 이들은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예수와 뜻을 함께 하고, 그의 하나님 나라를 삶의 지향으로 삼으며 살아가기로 결단한 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입을 통해, 그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재로 믿으며 사는 이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예수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큰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예수의 친구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뒤 34~36절에 짤막하게 덧붙여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게네사렛 땅에서 예수께 몰려들던 이들입니다 게네사렛은 갈릴리 북서쪽 지방을 뜻하는 지명입니다 갈릴리는 예수의 실재적인 고향입니다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었지만 예수는 공생애 전 대부분의 시간을 갈릴리에서 살았습니다 그 땅은 가난한 땅이었고, 본문속에서도 볼 수 있듯 병들고 아픈 이들이 많았습니다 땅의 권세, 땅의 세상에서 버려진 이들입니다 상처받은 이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예수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는 늘 이런 이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길은 ?
예수를 기점으로 땅의 세계와 하나님의 나라, 땅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 예수를 부정하는 이들과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부정한다는 것은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땅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땅의 것을 불의로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앞을 기다리고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요 ? 우리는 이미 이 물음의 답을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했고, 예수도 역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던 이들입니다 부와 명예, 기득권을 부여잡고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눈엣 가시일 뿐입니다 자신들의 가식과 허탄함을 들춰내는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 예수의 제자들 앞에 놓여 있는 길은, 예수가 그렇게 부정되었듯, 세상이 부정하는 길, 예수가 그렇게 내 몰리셨듯, 죽음으로 내몰리는 그런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따르며 세상에서 환영받고, 예수를 따르면서도 세상에서 인정받는 삶은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4 제자의 삶을 기다리는 것들
이렇게 세상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살아내야만 하는 ‘좁은 길’을 마태는 이야기의 틀을 가지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오병이어’라고 하는 기적적인 사건을 뒤로 한채, 예수는 22절 그곳에 있던 이들을 보내시고 제자들은 강 건너로 떠 밀듯 떠나 보냅니다 ‘오병이어’놀라운 기적의 현장입니다 그런 곳에 사람들은 몰려들기 마련입니다 인정받고,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을 사람들은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우리는 우쭐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사람들을 모두 흩어버립니다
그렇게 떠밀린 제자들이 지나고 있는 바다는 사람들의 인정이나 안정, 풍요와 안락이 아닌 폭풍과 풍랑이 기다리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길을 살아내고자 하는 제자의 삶은 풍랑이나 폭풍같은 세상의 위협과 두려움에 직면된, 내몰린 삶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폭풍과 풍랑속에 흔들리듯 두려움과 절망에 눌린 삶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의 삶은 큰 위기 앞에 직면하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애당초 예수를 따르는 길이 닿아 있는 곳이 사나운 폭풍이 기다리고 있는 땅이라면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시도는, 결국 예수를 포기하고 세상을 선택하는 것 밖에는 남지 않게 되는 셈이니 말입니다
5 폭풍 가운데로 내몰은 이, 누구인가 ?
마태가 그려내고 있는 제자들의 길은, 이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열광하는 것, 바로 세상이, 땅의 가치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있어야 하는 곳은 이곳이 아닙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자리를 떠납니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 주님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간혹 본문을 대하면서 제자들이 주님 곁을 떠났으므로 그들이 풍랑과 폭풍을 만나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아닙니다 ! 본문은 그렇게 해석되어서는 않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나 보낸 바로 그 곳이 풍랑과 폭풍이 기다리고 있는 곳일 뿐입니다 애초에 예수는 제자들을 그러한 땅으로, 그러한 세상으로 떠내보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을 보냄을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마태 10:16) 예수의 제자들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풍랑과 폭풍인 셈입니다 그러니 이 길 떠남을 가지고 제자들을 타박해서는 않됩니다
그렇다면 왜 ? 예수는 이들을 폭풍 속으로 내몰았을까요 ?
제자들이 머물러야 하고, 가야하는 길은, 예수처럼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살아내야하는 길입니다 예수 곁을 지키는 것이 아닌, 살아내야하는 그들의 삶의 자리인 셈입니다 그곳으로 예수는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마땅한 길입니다 그 길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길입니다
여러분 ! 세상의 안락과 그들이 보장하는 행복을 얻지 못해서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 예수를 따라 살면서 경험하는 폭풍과 풍랑속에서 두려움에 휩쌓여 있습니까 ?그렇다면 슬퍼하지 마십시오 !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그 바다 위가, 여러분이 경험하는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 여러분을 아프게 하는 상실감의 자리가 바로 여러분이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제자임을 반증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6 제자들의 ‘믿음’의 수준
오병이어 사건에서 제자들은 이미 주님에 있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경험에 온통 압도되어 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을 목격한 것 만으로는 주님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기적도 보고, 감동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예수의 제자들이 가야하고, 살아내야만 하는 삶의 자리는 주님이 오병이어가 보이지 않는 풍랑과 폭풍만이 현실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본문 24절 제자들이 그곳에서 많은 고난을 당했다는 표현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성경은 예수의 제자들의 삶이 풍요와 평안함과 출세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삶은 ‘고난’입니다
이 ‘고난’이라는 한 단어가 예수를 따르는 삶을 모두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모든 고난을 감내해도 좋을 만큼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가치가 있으며, 그 만큼 예수는 우리가 사랑해야할 분일까요 ?
제자들은 모두 지쳐있었습니다 포기를 직전에 두고 있었는지도 체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난의 연속에서 우리의 밑천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바다위에서 제자들은 놀라운 사건을 경험합니다 폭풍이는 바다 위를 태연히 걸어오는 예수를 발견한 것입니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에게서 여러분은 무엇을 보십니까 ? 제자들처럼 ‘유령’이라고 외치시겠습니까 ? 그럴리 없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체념하시렵니까 ? 아니면 놀라운 기적에 열광하시겠습니까 ? 지금 주님이 걸어오신 이 바다는 미친 듯 풍랑과 바람으로 흉포하게 날뛰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을 뚫고 지금 주님이 오고 계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 무엇을 찾아 바다 위를 가로질러 주께서 오고 계시는가 ? 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고난’의 삶으로 내 몰아 세우고 버려두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폭풍과 풍랑이 이는 곳이라도, 바다 한 복판에 있더라도, 아니 우리들 삶이 남들이 비난하고 소망없는 벼랑 끝처럼 절체 절명에 놓여 있더라도 당신의 사람들이 몸부림치는 그곳을 어디느 마다않고 찾아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구원의 소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주님의 능력을 보았고, 주님안에 있는 기적을 보았다고 해서 그런 믿음으로 우리는 결코 쓰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만은 없습니다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폭풍우 이는 바다위에서 우리의 믿음만으로는 결코 고난의 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바다위에서 만나는 주님, 폭풍속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언제 어디서나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내니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바다에 침몰되지 않을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7 우리 믿음의 현주소
우리는 때로 자신의 믿음에 의기양양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폭풍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무력합니까 ? 그 무기력함의 자리에 있던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외칩니다 ‘주님이시어든 물 위로 오라 하십시오’ ‘주님이시어든’ 이란 말은 ‘그리스도이시거든’ 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기름 부은 이, 우리를 이 죽음의 두려움속에서 구원해줄 구원자가 맞다면 이라는 질문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이 아닌, 주님이 누구이신지에 목숨을 걸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길이, 당신의 삶을 따르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맞다면 죽음처럼 보이는, 이 고난이 지배하고 있는 물 위로 오라 하십시오 ! 그러면 뛰어들겠다는 말입니다 대단한 신앙고백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도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30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베드로가 왜? 물에 빠졌습니까 ?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를 무섭게 만들었습니까 ? 바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람’은 실체가 없습니다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대체 베드로는 무엇을 본 것일까요 ? 베드로는 ‘바람’이라는 허상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아직 보이지 않는 죽음인데, 혹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허상에 온통 눈을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오늘 우리 걱정의 대부분은 오늘이 아닌 내일에 대한 것들’이라는 말처럼, 아직 보이지 않고, 아직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눈을 빼앗기고 두려워하고 결국 절망이라는 물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맙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예수의 길을 가겠노라고 오라 하소서! 라고 말하는 성도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자리는 늘 이런 두려움이 가득하기만 합니다
여기서 재미난 영상 하나를 볼까 합니다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 ‘상자속 물건을 맞추라’는 게임영상입니다 여러분은 왜 웃으셨습니까 ? 전혀 무서워할 것이 아닌데, 볼 수 없는 참가자가 두려워하는 모습이 어리석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앞에 찾아오는 고난, 두려움 같은 실체가 없는 바람을 보게 되면, 두려움은 어느새 우리 안에서 실재가 되고 실재의 힘으로 우리를 억누르고 맙니다
8 그렇다면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
그렇다면 예수가 내 몰아 살아가야하는 삶의 자리에서, 그 풍랑이 일고 폭풍이 세차게 몰아치는 삶속에서 대체 우리에게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
베드로가 물에 빠진 장면을 다시금 기억해 보십시오 베드로가 물에 빠지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요 ? 어떻게 했으면 될까요 ? 주님을 바라보았으면 됩니다 그랬더라면 허상인 바람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수준과, 믿음의 한계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 믿음이 연약해졌음은 허상인 두려움에 휩쌓였다는 것이고,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진 것은 바로, 예수를, 예수의 길을 놓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예수의 제자로 이 거칠은 세상으로 뛰쳐나갈 만큼 자신은 없습니다
31절 32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제자들이 풍랑속에 잠겨 고난 가운데 사투를 버리는 그곳을 향해 주님이 찾아오셨듯,
예수는 또 다시 베드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 물 속에 잠겨가는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 주님이 배에 오르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의 신념만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이 고난의 길로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가 가야하는 배위에 오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길에 멀찌감치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주셨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두려움을 무기 삼아 우리의 걸음을 바다 밑으로 끌어당길 것입니다 물위는 걸을 수 없고 빠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두려움은 당연히 우리를, 넘어짐으로 이끌어만 갑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함께 하는 곳,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길에는 바람이 그칩니다
바람이 보입니까 ? 내 인생의 배위에 오르신 주님을 보십시오
두려움이 삶을 덮고 있습니까 ? 언제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선택한 이들에게 찾아가시고, 그의 손을 붙잡아 주시며, 그의 인생에 함께 하시는 주님이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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