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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07/ 23 성령강림절 후 7주성서의 거울 앞에 2017. 7. 23. 15:32
2017 / 7/ 23
본문 - 창세기 28: 10 ~ 19
https://youtu.be/O4o4XlXv8EY =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 마르크스 샤갈 - '야곱의 사다리 위에서')
- 참 좋으신 주님의 은총과 위로가 오늘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는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오늘은 24절기중 12번째에 해당하는 ‘대서’(大暑)라고 하는 절기입니다 큰 더위라고 부쳐진 이름답게 무더위가 맹렬한 요즘입니다 예전 농부들은 이 때 즈음이면 퇴비를 준비하고 김을 매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심지도 않은 잡초가 생기면 농부들의 마음은 편치가 않습니다 잡초가 벼가 받아야 할 양분을 온통 빼앗아 농사를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낮의 불볕속에서도 김을 매어주어야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무더위에 육체만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의 삶도 느슨해 지지 않았는지 돌아 보아야겠습니다 ‘대서’가 너무 덥다라고 지쳐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믿음의 길 위에 돋아나는 잡초를 제거하고 느슨해지는 우리 마음을 주님께 단단히 잡아 맬 수 있는 지혜로운 시간으로 지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는 넋두리를 많이 듣게 예년과 다른 습하고 무더운 날의 낯설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꼭 초행길은 괜시리 더 멀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일단 한번 지나간 길을 다시금 지나칠 때에는 더 빨리,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낯설음이 힘이 들기만 합니다 하지만, 24절기 중에 ‘대서’(大暑)가 ‘소서’(小暑)와 ‘입추’(立秋)의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보면 이렇게 낯설고 힘든 시간도 이제 곧 지나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아니 이미 가을이 우리를 향해 다가 오고 있음을 볼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도 머물고 있는 어렵고 곤한 시간이 이미 지나가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감사함으로 다가올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변화보다는 평안함에 안주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이고, 익숙해진다는 것은 낯설음에서 벗어났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낯설음’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내일에 더 친숙하기에 눈 앞이 보이질 않는 우리에게 불안감으로 여겨지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낯설음’은 익숙하지 않고, 눈에 ‘익지 않음’입니다 익숙하지 않으니 서툴고, 눈에 익지 않으니 더디기만 할 뿐입니다 그렇게 말만 두고 보면 ‘낯설음’은 조금의 불편함일 뿐인데, ‘낯설음’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왜 이렇게 불편하기만 할까요 ?
따지고 보면 낯설음은 여러 경우에 경험됩니다 새학기가 시작될 때 새로운 선생님, 친구들, 공부 모두가 낯설음입니다 이사를 가게 될 때에도 낯설음은 함께 합니다 익숙했던 마을, 사람들과 헤어져 낯설음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대학 신입생 때에도 여전히 우리는 낯설고,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도 여전히 낯이 설기만 합니다 함께 하는 이 교회 공동체도 시작은 우리 모두에게 낯설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낯설음’은 모든 ‘처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매일의 일상은 어떨까요 ? 누구나 가족이라고 하는 일정하고 익숙한 기반을 가지고 있으니 낯익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낯설음의 자리로 내 몰고 있습니다
오늘 경험하게 되는 고통, 좌절, 상실감, 슬픔의 무게는 어제 익숙했던 것과 다릅니다 너무 아프고, 너무 힘이 듭니다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이야기인지를 경험할 만큼 말입니다 충분히 예상하고 있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일 마주해야할 절망감은 여전히 낯설기만 합니다 이제는 상실감도, 박탈감도, 허전함도 익숙해질 만도 한데, 수 많은 이들을 떠나보냄에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우리는 여전히 경험해야만 하는 내일에 낯이 설기만 한 존재입니다
- ‘낯설음’ ! ‘낯’이 ‘설다, 익숙지 않다’는 말뜻 그대로, 익숙함으로 마주보아줄 누군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낯설음의 통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내일을 바라보며 낯설음의 아픔을 경험하는 이유도 함께 할 누군가를 찾지 못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AI기술이 진보하면서 우리 생활속에 벌써 곳곳에서 경험되어집니다 광고를 보면 홀로 살고 있는 이들의 말 벗이 되어주고, 삶의 일부가 되어주는 AI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편으로 씁쓸합니다 인간이 지나쳐야하는 ‘낯설음’의 길을 함께 해줄 ‘사람’이 없는 세상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속에 야곱이 처한 상황도 ‘낯설음’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에서 야곱은 낯설은 세계,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거칠고 낯선 세상으로 내몰려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원인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탐하고 빼앗지만 않았어도 집에서 좇겨나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그를 끔직하게 사랑했던 어머니도 낯설음의 자리에 함께 해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야곱처럼 낯설음 가운데 내몰린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희랍의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홀로는 설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공동체 안에서 발견됩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복잡한 공동체 안에 있어도 실상 개개인은 늘 고독한 존재입니다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도 나의 불행은 나만의 낯설음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 낯설은 세상으로 내몰린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길에 벌판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피곤하고 곤한 마음을 드러내듯 돌 베게를 베고 잠이든 야곱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 전체를 덢고 있는 이미지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사다리’입니다 본문은 천사가 하늘과 땅을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샤갈이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습니다 보통은 그가 그린 ‘야곱의 꿈’이 더 유명하지만, ‘야곱의 사다리 위에서’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가 기록한 시가 그림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닫혀 있다.
빛은 사그러지고
밤이 다가 온다.
나는 어느 곳에 나의 색들을 감출 것인가.
눈물, 그것이 쏟아지는 곳으로
마지막 기쁨, 마지막 시선이
내 형제들의 나라에 닿고
나는 그들을 향해 올라가고 내려 온다.
야곱의 사다리에 대한 나의 꿈은
마치 내가 십자가를 잡아 당기는 것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지쳤던 나의 그림은 노래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울고 있다.
묘지에 흩어져 있던 나의 모든 그림은
불꺼진 양초 냄새가 올라온다.
도처에 뛰어다니는 죽음 음악가들
그들은 고인들의 기도를 읊조린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야곱이 직면하고 있는 하란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땅은 버려진 곳입니다 그는 함께 소통할 수 없는 땅으로 내몰려 있습니다 그곳에는 탈출구도 없습니다 화가 샤갈이 내몰린 인생이라는 세계가 그렇했듯, 그리고 오늘 저마다의 무게를 끌어안고 내몰려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합니다 모두가 낯설기만 합니다 누구도 이 고독의 자리가 익숙함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 그런데 낯설음과 절망의 땅에서 지치고 곤하여 잠든 그의 꿈에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짧고 강렬하기만 합니다 딱 두가지 메시지입니다 ‘나는 … 의 하나님이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할아버지, 아버지가 낯설은 인생의 길을 동행하며 걸어갔던 하나님, 이야기로만 만났던 그를 지금 그의 삶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이 ‘너를 떠나지 않겠다’ 즉 그와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낯설음의 땅, 고독과 암담한 현실에 내몰린 그에게 하나님이 길벗이 되고, 동행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더 큰 감동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서도 나와 함께 한다니,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율법에 정해진 장자의 권리를 침탈한 나를 말입니다 야곱은 낯설음의 자리에서 자신을 용납하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 잠에서 깬 야곱의 첫 반응은 과연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탄성이었고, 그 자리에 베개로 삼던 돌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난 이정표입니다 이정표를 세운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제부터의 삶의 자리가, 길이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새로워졌습니까 ? 그의 삶은 이제 혼자 걷는 길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이라면 그 길은 늘 새로움이라는 이름의 기대감으로 가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길, 새로운 시작의 이정표입니다 야곱은 낯설음의 인생 가운데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그런데 시간이 흘러 구약의 역사가 끝맺어지는 한 대목에 등장한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사다리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목격한 사다리를 통해‘내 일이 이루어질때까지’라고 하는 한시적인 관계, 조건의 관계로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전 인격과 삶으로 친히 우리를 위한 다리를 놓으시고 예수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에게는 조건이 없습니다 시간적 제한도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의 무너진 삶으로 찾아오셨습니다
- 오늘 성서일과 제2독서 서신서 본문은 로마서 8:12 ~ 25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 삼아주셨기에,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내 일을 이룰 때까지’를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낯설음의 자리에 놓인 사다리는 제한도 조건도 없습니다 영원한 관계의 다리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조건을 말할 수 없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의 다리였기 때문입니다 양자가 된다는 것은 이전까지의 모든 신분, 관계가 청산되고 새로움의 관계에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이전까지의 낯설음의 자리를 떠나야만 됩니다
- 야곱은 어쩌면 불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삶이 버거워지기 시작할 때, 아들 요셉을 잃어버렸을 때 아마도 야곱은 하나님의 목적이 끝나 자신을 떠나신 것은 아닌가 자조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삶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하나님이 떠나지는 않으실까 두려웠을 터입니다 하지만 이제 죽음이 덮고 있는 낯설음의 자리에서 만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안에 모든 근거가 있습니다 햇님과 달님이라는 옛 전래 동화에서처럼, 썩은 줄이면 떨어질 것이고, 든든한 동아줄이라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붙들고 나아가는 길은 조건이 없는 길입니다 단절됨이 익숙한 세상, 낯설음의 땅, 무너지고 흐트러질 우리 운명의 길에서 예수는 하늘과 내몰린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가 되었습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를 가로 질러 하늘에 잇대어 있는 사람들, 아니 땅위에 살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내일 우리들이 경험하고 만나야하는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할까요 ? 야곱이 돌베게를 베던 곳에 단을 쌓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듯이, 우리들의 삶은 이제 예수로 인한 새로운 삶의 이정표가 세워져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낯설음의 땅과 하늘 아버지와의 사이를 이어주는 사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낯설음의 자리가 함께 하는 자리로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빈다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의 낯설음의 삶, 고통과 눈물과 좌절과 절망으로 덮인 그 낯설음을 낯이 익는 삶으로, 단절된 세상을 하늘과 연결하는 사다리를 놓는 이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기억하세요 ‘사다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이제 세상이 하늘에 잇댈 수 있도록 돕는 사다리의 한 칸이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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