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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11 사순절 넷째주일성서의 거울 앞에 2018. 3. 11. 13:56
본문 - 에베소서 2:1 ~ 10
https://youtu.be/bDsEWuog6vE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구원받는 믿음의 선물"
모임마다 목적이 있고 추구하는 바가 그 모임의 정체성이라고 할 것입니다 동일하게 기독교 역시 추구하는 바가 분명한데 바로 ‘구원’입니다 이것 바로 기독교의 정체성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말하는지와 무관하게 누가 무어라 해도 기독교 신앙의 지향점은 바로 ‘구원’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인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구원을 ‘은혜’로 주신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속에 은혜와 동일한 단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선물’이라는 단어입니다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여간 좋지 않습니다 공짜라서가 아닌, 선물을 전한 이에게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 또한 그런 사람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손에 쥐어진 선물이 담고 있는 반가움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신앙의 영역 밖에 있는 사람이나, 안에 있는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이 주신‘선물’을 대하는 우리들의 반응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국내 자동차 회사에서 최고급 수준의 차량을 생산한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매력적인 차량이었고, 각종 전문지에서 성능을 높이 평가한 데다가 가격도 저렴하여 경쟁력이 높다고 기대를 안고 있던 차량입니다 그런데 막상 시판이 이루어지자 저조한 판매실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전문 업체에서 진단한 이유는 딱 하나 였습니다 가격이 저렴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전해주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아마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복음도 대가 없이 주어진다는 것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세미나나 교육을 진행하게 될 경우에 반드시 듣게 되는 조언은 참여하게 되는 가입비나 도서나 재료는 반드시 구입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 내가 들인 가치는 기억해도 선물로 받은 가치는 잘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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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교회 안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교회 나온지 시간이 지나고 신앙생활에 익숙해 질무렵부터 이상하게 우리는 ‘구원’에 대한 감동과 가치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내가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무한히 주어진다는 안도감이나, 노력이나 대가 없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싸구려라는 인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이 모든 원인은 바로 ‘선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그릇된 평가로부터 출발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우들에게 이 세상 풍조속에 매몰되어 살아갈 수 밖에는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어, 사람답게, 아니 하늘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구원을 베푸셨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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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가치는 누가 주는 것인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연애 할 때 아내가 처음 선물한 시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수 많은 책을 샀고 처분도 했습니다 그리고 책 자체도 수 만권이 발행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제게는 가장 소중한 책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은 가장 가치있고 값진 것입니다
선물은 값없이 받지만, 그렇다고 선물 자체가 싸구려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나를 잘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분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이 세상 무엇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린 그런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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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물의 가치는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베푸시는 이 ‘구원’이라는 선물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까요 ?
첫번째, 죄책으로부터의 구원
이 세상이 ‘죄’가 지배하고 있음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미투 운동의 현실속에서 우리안에 얼마나 추악한 죄가 도사리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거룩하고 세련되고 멋있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그 내면속에 숨겨진 죄성 말입니다
우리 안에도 수 많은 죄의 본성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재로 우리는 그런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에 의해 세상은 그렇게 타락하고 지옥처럼 변해가고 있지 않습니까 ? 문제는 어떤 사람이 특별히 악하고, 특별한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모습이야 말로 인간의 본성과 실존이라는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죄에 대한 율법의 고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속에는 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의 구원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 형법에는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 ‘구성요건’과 ‘위법성’과 ‘책임성’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구성요건은 죄로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기에 좋지 않고 악해 보여도 법이 죄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위법성은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만 합니다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내 생각과는 관계 없는 피해가 발생하였다면 처벌 할 수 없습니다 책임성은 가해자에게 잘 못 했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형사 미성년자가 저지른 범죄, 혹은 심신 미약자가 저지른 범죄는 위법여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행위이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은,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의 허물과 본성과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책임을 묻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떳떳해서가 아닙니다 그 행위나 삶은 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아 그로 옷입은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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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우리는 모두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소멸과 무의미와 내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선물은 심판앞에서 두려워하는 종의 자리를 사랑안에 거하는 자녀의 자리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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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죄의 권세로부터의 구원
실재로 죄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힘에 굴복당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합니다 억압하는 것을 거스를 수 있는 것, 자유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보다 더 강한 힘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 힘은 하나님의 선물안에 담겨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예수를 믿는 즉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의 값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 즉시, 사탄의 영향력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름값으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어둠의 힘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 결코 그러할 수 없습니다 그 힘이 이제 우리에게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힘과 권세를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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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두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있는데도 여전히 예수를 믿기 이전의 죄를 범하고 있으니 나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 라는 것과 나는 연약한 사람이므로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는 변명입니다
죄를 이길 힘이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무력한 존재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입니다 상처를 치료하면 딱정이가 남는 것처럼 상처는 치유되어도 그 질병의 흔적은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남아 있게 되는 것처럼 믿음안에 있음에도 미움, 시기, 질투, 유혹, 음행등의 죄의 흔적들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권세에 지배당하지 않으므로 언제나 그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연약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왜 변명일까요 ? 잘 생각해 보세요 죄를 짓는다는 것은 연약해서가 아닌 우리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제자들이나 후배들을 성폭행한 사람들이 여자들만 보면 연약해져서 그런 잘 못을 저지른 것인가요 ? 미투 운동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여자들과는 악수도 하지 않고, 여성과는 식사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을 역으로 차별하고, 성폭행이나 범죄의 원인을 그들에게 돌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스스로가 죄를 이기고 저항할 권세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중요한 사실은 죄된 과거가 아닌, 구원받은 현재에 주목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과거에는 죄를 범했지만 지금은 범하지 않는다!는 저항과 선언을 매일 반복하고 발견해 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현재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그 완성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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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선물은 ‘값없이’주어지는 것이므로, 값으로 치를 수 없는 방식으로만 받아야만 합니다 그 방식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선물을 쳐박아 둔다면 선물을 준 사람을 모독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오늘 하나님께서 구원의 복된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기쁨으로 받으시고, 믿음으로 그 선물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을 놓치지 마십시오 선물 주신 하나님을, 선물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믿음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을 붙드셔서 구원의 복된 삶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한주간의 삶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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