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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3/ 25 종려주일
    성서의 거울 앞에 2018. 3. 25. 17:10

    본문 - 로마서 4:1 ~ 8


    https://youtu.be/RkeWAm2uWxw = '클릭' 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이 '구원'하십니다


      1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내는 둘째를 낳고 그만 세상을 떠나버렸고,  홀아비로 한 평생을 남은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왔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장성하였고, 남부럽지 않을 만큼 살림도 넉넉해져 이제는 살만해졌는데 이 남자에게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 근심이 있습니다

    엄마의 빈자리가 컸던 탓인지, 둘째 아들이 삐딱하던 녀석이 자꾸만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화한번 내지 않고 감싸줍니다 그나마 큰 아들 녀석이 잘 커주어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둘째 녀석이 결국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행방은 묘연하기만 합니다 


    2

    집이 싫어 뛰쳐나간 아들, 세상은 화려했고,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친절은 내가 그럴 듯 해 보일 때까지 입니다 가진 것이 떨어지고, 볼품없어 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떨어져나가고, 아무도 그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고 몸은 아파옵니다 그래도 쉴 수 없습니다 뼈가 빠지게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하루 끼니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쉬는 날은 없습니다 몸은 어느새 만신창이가 되었고, 일할 수 없는 그에게 손을 내미는 곳은 없습니다 이제 꼼짝 없이 굶어서, 혹은 병들어 죽게 생겼습니다 그때 ! 아들에게 아버지의 집이 생각납니다 언제나 자신을 받아주고, 사랑해주었던 아버지가 기다리시는 집 말입니다 

    아버지가 미워서 집에서 뛰쳐나왔으니 다시금 돌아갈 염치는 없습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노하여서 자신을 내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죽느니,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종으로라도 사람 대접 받으며 살 수 있을 테니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병든 몸을 이끌고 집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사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세리와 죄인들에게 전하셨던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즉 기독교의 구원 교리가 이 한편의 예화속에 들어있습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 

    둘째 아들이 직면했던 고통은 무엇입니까 ? 온갖 고생과 배고픔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사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일 뿐입니다


    4

    아버지와 함께 할 때는 굶주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할 때에는 내일을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행하시고, 책임져주시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등지고 떠난 순간부터, 그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누리던 모든 특권을 상실했습니다 타국에서 사람들은 둘째 아들을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종으로, 거지로 여길 뿐입니다 


    5

    둘째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를 믿기 이전에 우리는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자녀의 권세를 잃어버린, 이방인일 뿐입니다


    혈관이 막히면 건강이 위험하고, 호흡이 막히면 숨이 멎습니다 관계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관계가 막힘으로 타자는 더 이상 수용의 대상이 아닌, 극복과 포기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관계가 막힌다는 것은, 관계안에서 누리던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그 관계의 대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막혔다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림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이 상실되고, 불안과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이 우리 심령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관게 없는 세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다보니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으니 생명이 가득해야할 ‘생’ 가운데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차기 시작 합니다 이것이 인생이 괴로운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돈이 없어서 괴로운 것이 아니고, 집이 없어서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돈을 탐하는 이가 정직하기 어렵고 명예를 탐하는 이가 겸손하기 어려운 것처럼,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 걸음이 생명이신 하나님께 예민하고 나아가기 불가능하고 무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흔적입니다 

    6

    둘째 아들은 굶주려 죽느니, 차라리 ‘종’이라도 아버지께로 돌아가자고 결심합니다 왜?입니까 ? 여기서는 굶어 죽는 것 밖에는 다른 결과는 없습니다 살 수 있는 길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그가 아버지께서 용서하실 것을 기대했었나요 ? 아닙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있기에, 그는 아마도 그런 일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구원받는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직면하게 된 비참한 삶 앞에서야 비로서,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게 됩니다 발걸음을 돌려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온통 덮고 있던 세상을 향했던 헛된 마음들을 돌이키고, 아버지께로 마음을 옮겼습니다 내가 선택했던 것이 틀리고,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음을 두는 것, 마음을 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했고, 그것이 구원받는 ‘믿음’입니다


    7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둘째는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온 둘째를 아무런 조건없이 더 할 수 없는 기쁨 가운데 맞이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구석 구석 집 나간 둘째를 찾아다녔고, 언제나 동구 밖에 나가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어떻게 아버지는 그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 내 새끼니 그렇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랑은 논리나, 합리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들이 다 뭐라해도, 정말 나쁜 녀석이었고, 못난 녀석이었지만 내 새끼인 것을 어찌합니까 ? 


    둘째 아들이 잘 났거나, 재산을 많이 가지고 왔거나, 성품이 곱거나, 거룩하거나, 아버지의 뜻을 잘 따랐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돌아온 아들의 몰골과 행색이라야 거칠고 초라하기 이를때가 없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그는 용서하기 어려운 패악한 아들일 뿐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난 회심이 아닌, 그저 굶어죽지 않으려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를 있어야 할 그 자리, 아들의 자리로 받아주었습니다


    8

    집을 향해, 아버지께로 돌이킨 것은 둘째 아들이었지만, 그의 돌이킴이 해피 엔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조건없이 그를 받아준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탕자, 폐륜아가 아닌, 아버지의 아들인 것은 아버지가 그를 아들로 받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안에 있던 종들도, 이웃들도, 하다못해 첫째 형도 그를 아들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손가락질하고 여기저기 수군거릴 뿐이지만, 아버지만은 외칩니다 ‘이는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내 아들이다 !’


    ‘칭의’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로 돌이킨 이들을 하나님께서 아들이 기대했던 ‘종’이나, ‘파렴치한 페륜아’가 아닌, 사랑하는 그 집안의 둘째 아들, 상속자로 받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칭의’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어낸 어떤 지위나 부유함이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했고, 우리를 먼저 기다렸고, 우리를 먼저 용납했다는 선언입니다 


    9

    ‘칭의’는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시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답’입니다

    글자로 보면 ‘칭의’는 ‘의롭게 여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의롭다’는 말 때문에 우리는 칭의를 윤리, 도덕적인 완전함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칭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 본래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버지의 아들의 자리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녀의 자리로 돌아온 것을 말합니다 나의 탐욕의 본성과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뜻을 따르듯,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우리는 이방 땅에서, 나그네 처럼 유리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의 권세와 힘에 눌려, 죽음의 지배력앞에 주눅이 들어, 어깨를 늘어 트리고, 절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For us ! 우리를 위해 독생자이신 예수를 통해, 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자녀로 우리를 받아들여주셨습니다 이제 그 누구도 우리를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세상의 노예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힘입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몸부림치며 헤매었던 걸음을 멈추고, 돼지 쥐엄이라도 먹으려 했지만 그것조차 먹을 수 없던 서러운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천국을 누리고, 향해 나아가면 됩니다 

    아버지를 향한 ‘믿음’ 이외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의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 이외의 모든 것을 가지지 못했다고 하여도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얻는 칭의의 ‘의로움’입니다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향한 마지막 일주일의 걸음을 따라가는 시기입니다 

    이 한 주간 우리는, 우리를 세상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죽음 앞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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