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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3 "광야로 내몰린 사람들"성서의 거울 앞에 2016. 7. 3. 14:08
성령강림후 7주 맥추감사주일
본문 - 마태복음 14:13 ~ 21 '광야로 내몰린 사람들'
https://youtu.be/G8PRtM_B7II <---- (* 클릭하시면 설교 영상을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
1
인생을 광야라는 단어로 표현하곤 합니다 시나 문학에서 표현되는 광야의 상징은 거칠고 막막한 암담한 상황이나 환경을, 무언가 고난을 경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모티브로 사용됩니다
거칠은 땅이라는 것외에 이런 ‘광야’가 갖고 있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
첫번째, 고독입니다 광야에서는 어울릴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광야에서는 힘들고 괴로워도 그 고통마져 나눌 만한 상대도 없는 줄곧 홀로 걸어가야만 하는 곳입니다
두번째, 죽음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광야에는 살아 있는 것보다는 척박한 환경속에 적응할 수 없어 죽음에 굴복한 좌절만 가득합니다 한 낮은 몸을 숨길 만한 그늘 한점 없이 따가운 열사의 바람에, 또 밤에는 애이듯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기온에 버텨내야만 하는 극한의 땅입니다
세번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매섭고 거칠은 상황이라도 끝이 보이면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눈을 들어 사방 어디를 둘러 보아도 광야일 뿐입니다 어지간한 사람의 희망은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땅이 바로 광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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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가정해보겠습니다 누군가? 지금 이런 길에 내몰려 있는 사람이 있다면 ?, 사람을 그런 곳으로 내몰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 불한당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없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처벌해야한다고, 내 몰린 사람을 어서 구원해 내야한다고 한 마음으로 소리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알고 계십니까 ? 사실 우리 모두가 이런 광야로 내몰린 사람이며, 또 한편으로는 이런 광야에 내몰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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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세상은 고독합니다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찬란한 도심의 불 빛속에서 개개인의 인격은 철저한 고독속에 갇혀 있습니다 내 것을 움켜잡은 마음들이 빼앗으려는 마음이, 지켜내려는 마음이 마음의 벽을 견고히 만들어 내었고, 온통 내 것에만 빼앗긴 마음은 옆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도심의 불빛이 찬란해지고, 방송매체의 정보들이 정신없이 현란해져가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인터넷이나 게임등에 몰입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군상들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풍요의 땅에서 좋든 싫든 우리는 매일 죽음을 경험합니다 질병으로 노환으로 맞는 죽음도 견디기 힘든데, 요즘 처럼 내 주변에 가깝게 도사리는 죽음에 노출된 시대는 없지 않았나요 ? 몇푼의 돈 때문에 떠밀린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화장실에서 공공장소에서 혹은 골목길 어귀에서 친근했던 이웃들에 의해 이유 없는 살인에 희생당하는 요즘입니다 사실은 희생의 대상이 언제나 우리 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찔하기만 합니다 생명살리는 소식보다는 죽음의 이야기가 익숙한 이 시대가 바로 죽음의 땅이 아닐까요 ?
더욱이 시대적 절망이 끝나리라는 소망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타락한 지도자나 정치인들의 부폐상은 날로 더해져가는 것만 같고, 곳곳마다 갈등과 분열만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사람들의 마음은 날로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해만 갑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 결국은 죽음을 향해 내몰린 땅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죽음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주일 아침, 광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십시오 광야 한 복판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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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생은 고독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에도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서일과에 따라 주어진 창세기 본문이 계속해서 집중하고 있는 ‘야곱’ 이 바로 우리들의 보편적인 인생의 고독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32장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밤세워 하나님과 씨름하는 대목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본문을 통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복을 받았다고 하는 한 문장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32:24은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라고 말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바로 목전에 놓인 형 에서의 분노에 두려워하던 야곱을 생각해 보세요 식구들을 모두 앞서 보내고 홀로 남은 야곱입니다 가장이니까 남편이니까 아버지이니까 드러내지 않았지만 야곱의 심정은 한 없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결국 마지막 감당해야할 길은 홀로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밤 이슬을 맞으며 지세우던 밤 야곱이 경험한 고독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형시키는 변화의 용광로와도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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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두려움을 내용으로 하는 고독 가운데 내몰린 야곱은 불현듯 그의 앞에 찾아온 한 사람을 만납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사실은 그의 곁에 늘 함께 하시던 하나님의 모습이 고독속에서 불현듯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요 ?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한 그는 심지어 하나님 마저 꺾으려는 야곱의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야곱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부상을 당합니다 씨름에서 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패배를 통해 야곱은 더 이상 자신의 꾀와 기질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고독과 패배의 아픔을 겪고 마침내 그 결과로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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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는 졌지만 야곱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26절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사실 야곱과 하나님과의 싸움은 25절에 이미 끝이 난 것이지요 그러니 26절은 더 이상 싸움일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께 온 몸을 던져 매달리는 것, 처절한 몸부림일 뿐입니다 이 비참한 인생을 도와달라는 외침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니 이것은 싸움이 아니라 처절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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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 함께 읽은 복음서 마태의 복음 14장은 잘 아시는 오병이어의 사건이 이루어지던 빈들의 상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기대를 안고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서, 또 어떤 이들은 이 답답한 세상 이제 갈아 엎을 때가 되었으니 앞으로 나아가자는 결단의 메시지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에 주목합니다 14절을 보면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 ‘라고 쓰여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인간의 깊은 감정이 내장에 머물러 있다고 여겼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다 민망히 여기시다라는 히브리식 표현으로 심장에 아픔을 느끼셨다는 말입니다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자기 백성들이 누구의 돌봄이나 나음에 대한 희망없이 병들고, 소망 없는 삶에 가난과 질병에 눌려있는 삶의 자리에 기진하여 있는 것에 주님의 마음은 아파왔습니다
14절 후반절을 보면 그 중에 병자를 고쳐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불쌍한 마음, 가련한 자를 바라보는 연민은 곧장 병든자들에 대한 치료로 이어진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대개는 병자를 치유하실 때 믿음을 먼저 보신 후에 치유하셨는데, 오늘 본문은 그저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아파하시고, 죄의 권세에 눌려 버성기며 살고 있는 우리들 광야의 삶에, 우리들의 고통에, 우리들의 눈물에 극심한 고통으로 아파하시는 분이심을 예수님이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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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고 나서… 병든 자를 회복시켜주신 이후에, 빈들에서는 오병이어라는 노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오병이어는 하나님이 먹이시는 생명의 사건입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죽음의 땅이 광야 빈들에서 하나님이 출애굽 당시 히브리 탈주민들을 만나로 먹이시며 살려내셨던 그 일이 지금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절망의 땅, 고독의 땅, 죽음의 땅에 하나님의 구원이 오늘로 임하였음을 빈들, 광야로 내몰렸던 이들이 보고 있습니다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똑똑한 제자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는 먹일 수 없다던 계산 빠르고 합리적인 그들로부터 비롯하지 않았습니다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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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빈들에 있던 사람들은 오병이어, 주님 손에 들려진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라는 초라한 식탁이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풍요의 식탁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는 비로서 주님 손에 맡겨진 굶주림은 결코 굶주림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상이 새겨졌습니다 이제 어떤 궁핍함이 찾아오고, 어떤 가난함이 찾아와도 그들의 마음에는 주님 손에 맡겨진 삶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은 풍성한 식탁으로 나를 채우신다는 믿음이 이 사람들을 살려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손에 맡겨진 굶주림은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을 너머 열 두 광주리를 채우고도 남는 넘침으로 바뀐다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빵이십니다 우리 배고픔의 근원, 광야로 내몰려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명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오병이어의 사건을 경험하고 돌아간 이들과 달리,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시니 우리는 복받은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 한번의 경험으로 광야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이적의 주인이신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시니 주님이 우리 삶을 광야를 푸른 땅으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 삶을 억누르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이 해결되는 자유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배고픔의 자리에 우리를 살리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 자기 힘이나 부유함, 권력으로 사람들을 광야로 내모는 이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풍성해 보이는 그 도시의 삶은 결국 죽음이라는 허무로 마쳐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광야에 내 몰려있는 이들의 삶을 불쌍히 여기시며 주 안에서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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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성찬에 참여합니다 이 성찬은 무리 가운데 행하신 주님의 오병이어을 우리 안에서 다시금 확인하는 기적의 자리입니다
성찬에 참여함으로 예수님 안에 깊이 머무를 때, 내적 평안과 배부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예수께서 나누어 주신 물고기와 떡을 배고픈 군중들에게 나누어주던 제자들의 손처럼, 교회와 성도들은 바로 예수님의 협력자이며, 예수님의 생명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 거룩한 식탁에 함께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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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주님과 연합하고, 광야의 땅에서도 매 순간 생명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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