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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12/31 송구영신
    성서의 거울 앞에 2022. 12. 27. 17:57

    성서일과 독서 본문

    • 전도서 3:1~13
    • 시편 8
    • 요한계시록 21:1~6a
    • 마태복음 25:31~46

     

    설교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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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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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 주길 원하느냐?

     

    # 01

    우리는 지금, 2022년의 마지막 날에 함께 서 있습니다. 돌아보면 여전히 아쉬움과 미련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는, 우리 삶이라는 것이 늘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곧장 새롭게 시작하는 한해와 만나는 감동적인 순간임을 안다면, 지금 이곳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올해의 마지막 주어지는 성서일과 말씀으로 오늘 열왕기서를 함께 읽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솔로몬’의 이야기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이라도, '솔로몬'이라는 이름이나 그가 했던 재판 이야기는 한번 정도 들어봤을 만큼 그는 유명한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지혜'를 구하며, '솔로몬'을 닮게 해달라고 할 만큼 그는 '지혜의 화신'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지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본문의 뒤에 등장합니다. 두 여자 사이에 일어났던, ‘친자 확인 소송’ 사건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토록 놀라웠던 그의 지혜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 기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기원이 되신다는 것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야만 한다는 절대적인 정당성과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성경은 솔로몬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왕으로 집권하던 시기, 그리고 말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의 인생에 치명적 오점으로 남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이후에도 왕이 되는 과정에서도 그는 ‘아도니야’와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지나왔습니다. 왕이 된 이후, 경쟁자였던 아도니야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고 지지하던 이들을 정치적으로 숙청하기도 합니다. 비록 다윗의 뒤를 잇는 ‘왕좌’에 오르기는 했지만, ‘왕’이 될 적자가 아니었기에 ‘왕’으로서의 권위가 부족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의 부족한 ‘권위’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왕’이 되었다고 하는 순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불신과 자괴감은 일순간에 해결될 겁니다. 이런 배경에서 그의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 02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제사하러 간곳은 ‘기브온’에 있는 산당입니다. ‘산당’이란 본래 가나안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신, 그러니까 우상에게 제사드리던 곳입니다.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안에서 ‘산당’은 끊임없이 ‘우상숭배’의 장소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솔로몬 당시는 아직 성전이 지어지기 이전이었기에, 기존의 산당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이용했을 뿐, 우상숭배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일천번제’를 제물로 드릴 만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의 정성에 기뻐하셨던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그를 만나 주셨고, 그에게 두 가지의 복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 바르고 합당한 것을 구했으니 지혜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광까지도 주시겠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선왕인 다윗처럼 말씀을 잘 지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 때문인지, 이후로 그의 왕위는 정말 탄탄대로였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추종하며 찾아왔을 만큼, 그의 명성은 땅끝에 이르렀던 것처럼 보입니다.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 열왕기상 3:13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로부터 ‘복받은 자’ 답다 싶을 만큼 그의 삶은, 남부러울 것 없을 만큼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삶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치닿고 말았습니다. 

     

    # 03

    열왕기서 11장4절은 그의 삶을 최종적으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늙으니, 그 아내들이 솔로몬을 꾀어서,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그는 우상 숭배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한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 성경은 세상과 달리, 그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유명했는지, 또는 얼마나 대단한 사역을 해냈는지 같은 일에 무관심합니다. 성경의 평가 기준은 오직 한가지, ‘네 아버지 다윗이 한 것과 같이, 네가 나의 길을 걸으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이것 뿐입니다. 이 기준에서 그의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누렸다고 소개되고 있는 부귀와 영화, 성공 같은 것들이 아무리 대단해 보인다고 해도 사실 그런 것들은 내게 없을 때나 소중한 것이지, 일단 주어지는 순간부터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들이 될 뿐입니다.

     

    왕이 된 이후 초기에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말씀처럼 선왕인 다윗의 법도를 비교적 충실하게 따랐던 것처럼 보입니다. 나라는 부강해 졌고, 그토록 원했지만 아버지 ‘다윗’이 해내지 못했던 ‘성전’도 완공해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의 말년이 하나님 없이, 그렇게 형편없이 우상숭배로 떨어지게 된 걸까요? 왜? 하나님을 배신하고 신앙에서 변절하게 된 걸까요? 

    솔로몬은 ‘무엇을 해줄까? 물으시던 하나님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듣는 마음'을 달라는 소원을 빌었습니다.(9절) 백성의 하소연을 잘 듣고 바르게 재판하는 왕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백성을 잘 돌보겠다는 마음이, 하나님도 기특하셨던가 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억울하고 서러울 사람이 있습니다. 첫사람, ‘아담’입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탓에, 인류에게 죄와 죽음을 초래한 원흉이 되고 말았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왜? 그는 않되었는데, 솔로몬은 되는 걸까요? 왜, 아담은 죄인이고, 솔로몬은 기특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요?

     

    # 04

    ‘선악과’는 대체 무엇이고, ‘선’과 ‘악’을 구분한다는 것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막연함’이라는 것을 싫어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에 답답해 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은 두려움이 되곤합니다. 내일이나 운명, 일이 앞으로 어찌되어 갈른지 등등의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신년마다 사람들이 운세를 보려고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앎’이라는 것이 언제나 우리에게 복된 것만은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일도 많습니다. 막상 몰라도 되고, 몰라야 하는 것을 알게 될 때,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자신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것을 알 능력도 없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복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짓눌린 채,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점쟁이나 무속인을 통해, 좋지 않은 점괘를 듣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유를 빼앗긴 채 점점 삶이 ‘파괴’되고 말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삶과 생명을 파괴하고 갉아먹는 것이야 말로 ‘죄’입니다. 우리에게는 궁극적으로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때만 우리는 인간일 수 있고, 그때만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우리의 최선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데 있을 뿐입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그가 좋은 것을 구한 것 같지만, 성서기자의 시선에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배타적인 능력을 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없어도 됩니다. '하나님 처럼'이라고 하는 에덴에서 보았던 '죄'입니다. 

     

    # 05

    결국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말년에 이르러 솔로몬은 결국 우상을 택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도 얻었고, 부유함, 권력, 장수하는 ‘복’도 얻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에서 만큼은 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죄’의 힘에 짓눌려 삶이 파괴되고, 염려와 두려움, 좌절로 무너지고 말았다는 말씀인 겁니다. 다시 말하면, 솔로몬에게서 우리가 발견했던 ‘복’이라는 것들이, ‘하나님’을 빼고는 그 무엇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2022년의 마지막 날, 성서일과 본문은 우리에게 솔로몬과 똑같은 자리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널 위해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는 질문 앞에 서는 겁니다. 새로운 한해를 앞두고 물으시는 주님의 물음에,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다가올 23년의 삶에 무엇 채워주기를 물으신다면, 무엇을 답으로 내놓으시렵니까? 어떤 것이 참된 ‘복’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2독서 서신서 말씀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1:1~6까지 입니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 생명수 샘물을 주시는 분에 관한 말씀입니다. 처음이며 마지막, 알파요 오메가 되시는 그분으로 인해, 모든 역사는 ‘구원’으로 마침표를 찍게 될 겁니다. 종말을 모르는 세상에서 여전히 그분은 외면당하고 있지만, 그분의 날이 오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분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고린도전서 1:23~24 

     

    비록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일지 몰라도,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라는 ‘바울’의 권면을 깊이 새기며 들으셔야 합니다. 세상이 자랑하던 모든 것이 풀이 마르듯 시들고 말았지만, 그리스도안에서는 온전한 생명, 부활이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얻는 것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보다 크거나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에게서 지혜를 배우십시오. 주님은 '솔로몬의 의복'으로 상징되었던 부귀나 영화, 장수와 같은 세속적 ‘복’이란 들에 핀 ‘백합화’만도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8~29) 그런 것들은 모두 시들어 사라지고 말 겁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참된 복으로 채우지 못했던 헛헛하고 섭섭함을 지워낼 수 없던 한해였지만, 이제는 우리 인생의 한 페이지로 마감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은혜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분명히 2023년은 새로운 기회가 될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한해는 '복'으로 충만해 질 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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