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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3 성령강림주일 26주
    성서의 거울 앞에 2016. 11. 13. 16:07

    2016/ 11/ 13 성령강림주일 26주 


    본문 - 누가복음 21:5 ~ 19                       https://youtu.be/fT01JlmMPEI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 본문은 설교영상의 일부 요약입니다


    "같은 '방향' 바라보기"





    1

    사람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사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우리입니다

    간혹 어떤 사람은 나는 혼자도 살 수 있다거나 혼자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는 세상에 나만 홀로 있는 것처럼 살기도 합니다 먹는 것도 일구고 알아서 혼자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자궁을 빌어,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형제, 자매 식구들의 헌신과 섬김을 통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실존은 태생부터 홀로일 수 없습니다

    인간, 아니 생명은 모두 본질적으로 그 태생으로부터 누군가의 도움과 은혜를 입고야 살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 이런 마음을 조금씩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다만 이것이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느냐 ? 혹은 드러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유대교 종교철학자인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언급했던 바처럼,  너가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고, 너가 없으면 우리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가 있으니 내가 있으니 우리는 함께 하여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2

    상대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상대가 있으므로 우리는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됩니다 상대가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설 수 없습니다 

    거룩함도 마찬가지 입니다 거룩함이란 무엇과 비교하여 구별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룩함이나 영적인 성숙, 성화는 모두 상대가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였던 존 웨슬리 목사님은 성도의 구원의 단계의 최종을 '성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 말합니다 감리교회의 구원은 칭의구원에 그치지 않고, 성화 즉 하나님과의 친밀함, 잃어버린 아들이 아버지 품에 안기는 성화구원을 주장합니다 성화가 바로 구원입니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홀로 있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크고 어려운 일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상대가 함께 하고 있기에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것일까요


    3

    그러니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함께, 더불어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더불어 살고 계십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내시기 위하여 우리 땅에 찾아와계심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함께, 더불어 있음이 곧 잘 살아내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함께 함으로 생명을 살려내고, 누군가에게, 세상에 유익함을 끼칩니다 반면 또한 어떤 이들은 함께 하므로 도리어 사람을 죽이고, 생명을 해치는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직 폭력배나 사기꾼들은 모이면 모일 수록 더 큰 악을 초래하게 되겠지요 ?


    4

    더불어 살아감에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이들과 어떻게 접하고 있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며 서는 방법은 크게 3가지 입니다


    첫째 마주보며 서기, 둘째 어깨를 함께 하며 서기, 셋째 등을 돌려 서기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아파 숨이 막히고 잠이 들지 않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 통치하는 이가 국민들과 함께 하지 않고, 함께 하지 않아야할 이들과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함께 해야하는 국민들과의 자리 마져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국민들과 소통함으로 마주보지 않습니다 마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고, 상대로 삼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자리에 서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삶의 자리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억울한지를 모르니 그들앞에 소통을 위해 마주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5

    마음을 헤아릴 때, 삶의 자리를 공감할 때야 상대의 앞에 마주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용납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줄 수 있을 때, 그 마주함은 자연스럽게 변화합니다 서로를 원수지듯 등을 지는 것이 아닌, 서로가 기댈 수 있는 힘있는 어깨를 마주하고 한 방향을 향해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한 방향을 바라보는 어깨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은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함께 하는 자리여야 힘이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을 ‘동지’라고 합니다


    6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당시 지중해 연안을 두고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로 불리운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경탄의 말입니다

    가로, 세로가 럭비경기장의 각 3,4배되는 엄청난 규모이며 요세푸스의 말대로라면 헤롯성전을 보지 않고는 고대의 건축물을 논할 수 없다고 했을 만큼 대단한 건축물입니다 사람들이 그 성전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대단하다고 그 위용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경이로운 외관과 규모에 대한당연한 반응입니다 

    자신들의 성전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 그 엄청난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자신은 또 얼마나 대단해 보였을까요 ? 하지만 같은 성전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7

    성전을 무너트리시겠답니다 다시 짓겠답니다 말씀만 듣고 보면 예수님은 참 성격이 모진 분이십니다 좋다고 하는 사람들 편은 들어주지 못할 망정, 초를 치는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여하튼 무너트리신다는 말씀대로라면 적어도 지금 이 성전은 주님께는 불완전하거나 좋지 못하다는 뜻이겠지요 ?

    사람들이나 예수님이나 모두 성전앞에서 성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 똑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가는 본문 6절에 ‘너희 보는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과 주님이 보시는 것이 다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8

    사람들과 예수님의 시선은 애당초 달랐습니다 본문 1~5절까지는 그 유명한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끼니 식사 밖에는 할 수 없는 전 재산을 아끼지 않고 봉헌한 과부를 보면서 주님은 그이가 가장 큰 연보를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라고 칭찬하십니다 그 말은 무엇일까요 ?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과부외에 성전을 자랑하고 경탄하는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향한 정직하고 바른 신앙의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신앙이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성전, 멋진 성전입니다 누구나 놀라고 경탄하는 이 성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 성전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자랑이라고, 내가 바로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도라고 어깨를 우쭐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렙돈 바친 과부, 오늘 드림이후 한끼를 걱정해야하는 가난한 과부의 아픈 삶을 돌아보지 않는 이들의 예배는 무엇이고, 이런 이들이 예배하는 성전은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이라고 외치는 그들의 눈은 여전히 배고픈 과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런 성전을 무너트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교회를 보면서 주님은 동일하게 너희의 교회를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트리겠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

    예수님과 수많은 사람들 모두 성전앞에 서 있습니다 수 많은 그들은 화려한 성전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님은 성전이 아닌, 성전을 이루는 교회된 '너희'를 보고 계셨던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8, 9절 이후에 따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에서도 사람들과 예수님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성전을 찾는 사람들, 예수의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도 야웨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과 그들은 바라보는 것이 같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대상도 다르고, 방향도 다릅니다 


    세상의 징조를 보면서 두려워했습니다 말세에 이를 박해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님은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따르지도 말고 두려워도 말라 ! 여전히 주님과 우리의 보는 눈은 다르다는 것이지요


    세상을 향한 우리들의 반응은 두려움과 따름으로 나타납니다


    9

    그런데 18, 19절에는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고, 너희 영혼을 얻게 된다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분명 두려운 현실앞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셨고, 부러운 불법을 따라가려던 연약함을 향하여 따르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문제를 보고 있지만, 주님은 문제의 너머를 보고 계십니다

    세상을, 사람을, 이웃을, 나라를, 너를, 우리를, 교회를 바라보시는 주님과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번 사태를 두고, SNS에서 작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한국교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존경받는 목사님의 언급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답게 주님을 바라봅시다’라는 글이 문제였습니다 그 글을 무책임하다며 비난하는 이들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마땅하다는 이들간의 논쟁이일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중요한 전제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주는 여전히, 언제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내 기질이나 성격, 욕망을 단련하고 내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저는 이 견해에 반대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과 악을 추구하며 살던 이들이 돌아보며 회심하며 바라볼 때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언제고 우리의 빛이며 길이신 주님을 향해야 함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그를 믿고 그를 따르기로 삶의 방향을 정한 그리스도인,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음성은 ‘오라’가 아닌 ‘가라’에 맺혀있음도 기억해야만 합니다 '가라'는 말씀에 순종하려면 우리는 어디를 보고 있어야할까요 ? '가라'는 말씀에 순종하려면 주님의 어깨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보며 서있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주님은 우리를 마주보며 오라고 하셨고, 이제 주님과 함께 서서 세상을 향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서야하는 자리는 주님과 어깨를 버성기며 불의하고 불법한 세상, 고통과 아픔, 죽음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향해 함께 서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


    저는 방법론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방향성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다면 그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촛불을 들고 사람들을 깨우러 나갈 수 있습니다 기도함의 자리를 지키며 기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0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인지의 정체성이 결정됩니다

    주님은 어디를 보고 계십니까 ? 주님의 눈은 가난하고 아파하는 이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눈은 지금 잃어버린 사람들, 잃어버린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불의함과 불법함으로 자신들의 부와 명성이라는 성을 쌓는 이들을 엄한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 혹시 불의한 자들의 부와 명예를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

    이제 주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주님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불법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이루어질 그 나라, 주님이 꿈꾸시던 그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바로 꿈, 비젼, 환상, 그리고 … 믿음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주님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주님과 같은 방향을 보고 선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을 거스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바라보고 게시는 그곳을 함께 바라보는 '믿음'안에 서있으면, 

    인내함으로 서있으면 그를 통해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얻도록 구원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마주보는 자리를 너머, 이제 가라하시는 주님이 바라보고 계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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