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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주현절 5주성서의 거울 앞에 2017. 2. 5. 15:14
2017/ 2/ 5/ 주현절 5주 동녘교회 가정주일
본문 - 마태복음 5:13 ~ 20
https://youtu.be/ZYlhU94f2NE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빛'과 '맛'을 회복한 교회
1
마태에 의하여 기록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 ‘산위의 가르침’입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분명하신데, 가르침이라고 하니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누구일까요 ?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대상은 모두 세 그룹입니다
첫번째 그룹은 산위에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 그룹은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 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그룹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라 하겠습니다
2
말하는 이는 동일하지만, 듣는 이들이 다르니, 말씀의 목적도 달라집니다
첫번째 청자들인 산위의 사람들, 그러니까 예수님이 직접 만나시고 위로하신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은 ‘위로’였습니다 당시의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산위로 몰려온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그닥 기득권이 없는 소외된 사람들이 주류였습니다 다들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그들의 비루하고 비참한 삶은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저주받은 자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비참한 이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산위에서의 가르침은 전혀 다른 결론을 제시합니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복된 자들이라니 말입니다
3
두번째 청자인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 마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신앙 공동체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요 ?
초기 기독교공동체는 예수를 주로 믿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에 참여된 사람들, 즉 자신들의 의로움이 바탕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은혜를 자신의 의로 삼는 자들이 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이 씻은 들 더러운 오물통을 단박에 생수통으로 사용할 수 없듯, 사람은 단번에 바뀔 수 없습니다 마태공동체는 유대인들이 중심이 된 공동체였기에 예수 믿는 이들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들안에 율법적인 신앙이 몸에 베어있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신들의 의로움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4
율법이 다스리던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오직 외적인 기준이었습니다
예전에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기준은 성적이었습니다 학점은 몇점이고, 학교는 어디를 나왔으며, 자격증은 몇개인지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그런 기준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사람을 뽑을 때 하다못해 기업에서도 점수 몇점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학교 생활에서 동아리나 봉사활동, 대인관계나 꿈과 비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들을 평가함으로서 지원한 사람이 과연 끈기와 신념이 있는 사람인지,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려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겉으로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심층적인 것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산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그 시대나, 마태를 통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전해 듣고 있는 신앙공동체나 내적인 동기나 내면보다는 외적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을 철저하게 검열하고 기준으로 삼던 시대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이런 율법주의 신앙은 우리를 자유로 인도하지 않고 도리어 강박과 고통으로 몰아세우기 마련입니다 자유가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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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기준에 합당한 점수를 얻는 존재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가련하기만 합니다 율법에 기대려고 하니, 나는 몇점이나 되는 사람이라고 으스대기 일쑤입니다 마치 100점 만점에 50점 맞은 사람이 40점 맞은 사람을 보면서 손가락질하는 모습입니다 모두들 낙제이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그 나마 정직한 사람들은 몸부림치면 칠수록 율법의 기준에 미달되어 있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휩쌓이곤 합니다
기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구원을 향한 우리의 걸음이 율법주의로 흐르게 되면 자신의 신앙에 다른 사람에 비하여 으스대고 있던지, 부족함에 답답해하든지 그 부딫히게 되는 결국은 ‘나는 구원받을 수 없다’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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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마태공동체 안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열심인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헌신적인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이 구원하시기에 합당한 모습을 갖고 있는지를 발견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다’ 주님은 율법의 온전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온전함은 착한 행실입니다 그래서 20절 너희 착한 행실은 서기관들보다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의 의보다 나아야하고 율법의 온전함을 이룰 수 없는 우리인데, 이를 이루어야만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 하지만 우리는 율법의 온전함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빨리 깨닫고, 온전히 고백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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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이 어디에 있을까요 ?
그래서 바울은 끊임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몇점을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로운 행위를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애초에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맺혀지는 것이지, 열매를 맺으므로 성령이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동일한 말씀이 오늘 예수님의 말씀속에 ‘빛’과 ‘소금’이라는 비유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 앞에 나오는 내용은 ‘팔복’입니다 하나님께 복받는 사람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빛’과 ‘소금’인 사람들입니다 주의 깊게 보아야할 것은 주님은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우리가 빛이고 소금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빛이고 우리가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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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짠 맛을 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소금이기 때문에 짠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빛이기에 어둠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기관의 의보다 나은 율법적 온전함을 이루는 것을 추구하는 한 결코 우리는 의로울 수 없습니다 그저 방향을 돌려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될때서야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 율법의 마침이시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의 완성되시는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의 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음으로 의를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고 외면하면 우리가 온전한 의를 이룰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의의 사람, 구원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이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요 ? 맛이 없는 곳에 소금이 필요하고, 빛이 없는 어둠에 빛이 필요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있어야할 곳은 바로 세상 한복판입니다 팔복은 빛과 소금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세상에 맛을 내는 사람, 세상의 어둠을 비추고 밝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9
누가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회복하는 사람들입니까 ?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입니까 ?
20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
율법의 최고를 이루려고 애쓰던 사람들의 행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의 완성되시고 온전하게 하실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되신 예수를 보고, 품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안에서만 빛이며, 그분안에서만 소금일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이들로 만드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을 때 우리는 빛이며 소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을 때에야 우리는 세상속에서 맛을 낼 수 있고,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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