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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발승'을 아시나요?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2020. 10. 18. 19:52

     

    탁발 [ 托鉢 ] : 

    승려들이 걸식으로 의식(衣食)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불교에서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율인 12두타행 중 걸식과 같은 뜻. 발(鉢)이란 음식을 담는 그릇인 ‘발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따라서 탁발이란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 _ 네이버 사전

     

     

    | 그러고 보니 어릴적에는 탁발승들의 모습을 어렵지 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거의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불교 최대 교단인 조계종에서는 탁발에만 전념하고 도량에 게을리하는 이도 생기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뿐더러, 승려로써의 품위를 떨어트리는 경우도 있어 탁발을 금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이란 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더니, 목사가 되고 이쪽?에 속한 분들만 눈에 담아왔던 탓도 있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어릴적 기억에, 식당에 탁발승이 들어와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읊을때 사람들이나 식당 주인의 대응은 살갑지 않았습니다 꽤나 싫은 눈치의 주인이 천원짜리 한장 내어주어 떠밀고 나면 식당안에 가득했던 불편한 분위기가 해소가 됩니다 그때 식당안에 있는 이들이나 식당 주인이 모두 기독교인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 코로나로 인해 교회 안팎에서 반성과 비난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걸어왔던 교회의 궤적이 그 만큼 어지러웠던 탓이지 싶습니다

    그 와중에 요즘들어 코로나로 인해 촉발된 가장 핫?한 주제는 교회 건물에 대한 시각인 듯 싶습니다 왕궁같은 교회 건물을 성공한 목회의 표상으로 삼으며 달려왔던 탐욕탓에, 교회 건물의 해체를 마치 타락했던 교회가 정화되고 개혁되는 것처럼 칭송하는 분위기가 여간 낯설지 않습니다 으리으리한 건물로부터 단칸 상가월세까지 다양한 층위가 깡그리 무시된다는 것 보다는, 교회해체의 기사나 소식에 감동하는 분들의 반응이 곧장 건물로 모이는 교회나 목회자들은 무언가 잘못되고 부정한 이들처럼 비난하는 소리로 이어집니다

     

    | 건물과 모임의 해체?가 페러다임의 변화를 통한 사역의 다변화라는 적극적인 접근일 수도 있고, 어찌할 수 없는 생존?의 내몰림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느 쪽이 되었든 건물로서의 교회가 해체되는 데에는 목회자나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의 피눈물나는 사연이 담겨있을 겁니다 그러니 어떤 결정이든, 그 누구라도 공동체의 결정을 존중해야만 합니다 그릇되거나, 잘 못되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그 공동체가 교회로 존재하는 모습인 겁니다 예루살렘이든, 로마이든, 기독교 초기이든, 오늘이든, 건물이든, 감옥이든, 무덤이든,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교회는 그곳에 있었던 겁니다 

    세상의 빛이 되길 기대했던 교회가 오히려 그 수준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에서도 무너지고 나니, 세상은 거칠게 그 수준의 회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런 삶을 추구하거나 지향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유식하든 그렇지 않든, 인격적이든 그렇지 않든 본질적으로는 죽음앞에 차별이 없습니다 교회는 본질적인 구원 사건을 찾아가는 공동체임을 간과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복음에 천착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것을 이땅에서, 이런 삶에서 경험하고, 그 경험에 함께 하는 이들을 초대하는 잔치의 자리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본질적인 생명사건에 대한 기대는 실종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공동체로성의 교회가 되길 요구받고 있습니다 예, 이 또한 공적신앙의 바탕조차 이루어내지 못했던 우리 탓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본질을 향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 두번째 과연 건물로 모이는 교회를 해체하는 것으로 교회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요? 돈에 지배를 받는 목회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라면 건물해체는 본질적인 답일 수 없습니다 돈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과연 존재할까요? 좋든 싫든 우리는 모두 돈의 가치가 통용되는 현실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돈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돈 없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광야로 떠나겠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 세번째 그렇다면 모이는 건물로서의 교회는 어떤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요? 어떤 노 정치인이 ‘정치란 생물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생물’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살아있으니 멈추어있을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교회는 계속해서 변화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외형과 시스템이 아무리 변하여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그것은 늘 교회입니다 유대교 분파중의 하나였던 교회가, 가정교회가 되고, 도망자들의 모임이 되기도 합니다 시대가 지나고, 예배처소로서 교회당으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모임으로만 함께 할 수 있는 예전과 예식이 있습니다 함께 모여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도 있지만, 헛헛한 인생길 어느 한켠에서 지쳐가는 걸음을 멈추고 신의 존재앞에 무릎꿇고 머물 때만 경험하게 되는 위로와 평안도 있습니다 건물 자체가 종교의 요소로서 가지고 있는 의미를 간과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는 종교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감당할 교회를 필요로 합니다

     

    앞서 탁발승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언급한 속내를 이제 털어 놓아야겠습니다

    | 오늘 우리의 문제는 건물같은 것의 탓으로 돌려서는 않됩니다 성전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예배 받으실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그를 예배하는 이들이 거룩해야하는 것처럼, 건물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 건물을 채욱고 있는 사람이 타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목회자와 성도, 우리들 신앙이 본질과 깊이로 정진하지 못한 탓입니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구원을 경험한 사람처럼 ‘좌고우면’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의 시선은 이미 너무 진리 아닌 것에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질 아닌 것을 본질처럼 붙잡고, 수박 겉 핥듯 경험한 것을 복음의 전부를 붙잡은 것처럼 생각한채 서둘러 세상으로 뛰쳐나가고 맙니다 

     

    | 사실 건물도, 재산도, 명예도 어찌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도, 또한 그것을 외면하고 멀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탁발승은 제 발로 걸어낸 길에서 탁발하여 채워진 ‘발우’, 그 속에 어떤 것이 담기어 있든, 그것에 만족하고, 그것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같은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이 기도가, 일용할 양식으로 삶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또한 일용할 양식안에 천국이 있음을 발견한 이들의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며 살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지켜내려 탁발로 살아가고, 소유함에 붙들리지 않으려 했던 탁발 수도회나 은수자 공동체가 교회의 역사안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말씀에 귀 닫고 살았던 우리의 양심을 깨우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발우’ 한 그릇에 한끼를 풍성하게 먹는 탁발승보다는,

    ‘일용할 양식’을 허락받았으니 수지 맞은 것임을 주님은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까?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 …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의 근거되신다는 믿음만 불들고 살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무엇을 하든, 어떤 모습이든, 그리고 어디에서든 주님의 교회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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