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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문동 사는 '성기훈'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2021. 10. 16. 13:10

     

     

    '그들이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 마가복음 10:46

     

    주일 준비를 마치고, 예배후에 성도들에게 나눠줄 다음주일(#성령강림후 22주) 성서일과 본문 묵상지를 만들려고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복음서 첫 대목을 읽다가 갑작스레 우울해졌다.

    #M.하이데거#형식은_존재의_집 이라고 했다는데,

    우리의 존재성은 ‘이름’에 담겨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름’이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걸까?

    .

    #눈먼_거지_바디메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타고난 ‘#다름’이,

    ‘거지’라고 하는 소유의 #차이

    무리 가운데서 내쳐져 다시는 넘어올 수 없도록 그어진 날 선 ‘줄’이었다

    하지만 정작 더 서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바디메오’는 ‘#디메오의_아들'이라는 뜻이고, ‘#디메오’는 ‘존경’, ‘명예’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명망있던 아버지와 눈먼 아들

    질병이란 신으로부터 받은 저주라고 여기던 고대시대를 감안해 본다면,

    바디메오가 가정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을런지 눈에 선하다

     ‘거지’였다는 것은 결국 집에서 조차 내침을 받았다는 수식어였으리라

    가족 조차도 내치고 기억조차 하지 않는 버려진 인생

     

    그만큼 서러운 인생이 또 없다

    소경, 거지,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고통스러운 수식어 외에, 정말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

    그러다 문득 #나는_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내게도 말을 걸어왔다

    ‘나’를 수식해줄 수 있을 법한 수 없이 많은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빠, 혹은 어디 교회 목사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들의 #상대로서, 혹은 어떤 #직임이나 #역할로서 표현될 수 있을 뿐,

    ‘나’의 정체성과 존재는 블랙홀에 삼켜진 듯 아득하기만 하다

    그리고 남은 것이 이름 석자 뿐이었다

    .

    하나님께서 창조의 마무리를 인간에게 양보하시면서 맡기신 일이 아담이 뭇 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보면, 
    결국 우리로서 자기 정체성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힌트는 역시 ‘이름’일지도 …

    그래서 이름은 근본적으로 #차별이 아니라, #다름을 지향하고 있다

    개별자로서의 자신이 그 안에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온통 #동일화라는_폭력속에 살아가고 있다

    유치원에 들어갈때부터 똑같은 옷을 입히기 시작하던 세상은,

    언제나 줄을 긋고 똑같은 무리로 그 안에 들어올 것을 요구한다

    기어코 모두가 똑같은 모습, 똑같은 모양을 만들어 내야 직성이 풀리려나 보다

    여기에서 ‘다름’은 그저 줄 밖으로의 추방을 의미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작 줄 안쪽에서의 상황이 다를 것도 없다

    계속해서, 다른 이유와, 근거와, 줄은 이어지고 그때마다 일련의 사람들은 줄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밀려난 사람들 편도 다를 것은 없다

    어찌해야 서울로, 더 좋은 아파트로, 그들만의 리그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몸부림치는 형국이다

    그리고 마치 오징어게임에서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던 455개의 숫자들이 지워졌던 것처럼…

    그들은 결국 잊혀진다

    스스로도 스스로를 잊고 살아간다

    .

    그래서일까

    #오징어게임속에서 주인공은 스스로를 ‘이름’으로 표현한다

    ‘#쌍문동_사는_성기훈

    게임의 주최자인 ‘오일남’ 역시 성기훈과의 마지막 일대 일 구슬게임이 끝난 후 남기는 마지막 대사는

    기억났어 내 이름은 ‘오일남’이야’였다

    바다 건너 애니의 장인 ‘#미야자키하야오’의 ‘#센과_치히로의_모험’에서도

    자신의 세계를 찾는 유일한 길은 ‘이름’이었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한,

    내 이름을 찾지 못하는 한,

    선물처럼 주어진 삶은,

    온통 소비되고, 버려지고,

    허무에 사로잡힌 채 불안과 두려움속에 몸부림치다

    그렇게 지워지고 말지도 모른다

    .

    지금은,

    #존재의_집안에 갇혀 있는 존재를 찾아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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