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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라, 잊어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2017. 4. 5. 14:38
( * 도무지 어느 편에서 보는 얼굴이 본 모습일까요 ?
우리는 또한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요 ? )
시간의 흐름이 벌써? 세월호 참사 삼주기에 닿았습니다
매일 되풀이되던 악몽이 삼년이고,
자식잃은 부모들의 헤어진 가슴앓이가 삼년이고,
함께 한 울분이 삼년인데,
또 한편으로
잔인한 말의 폭력이 삼년이었고,
아파하는 이들, 고통당하는 이들과 마땅히 함께 하여야할 종교의 돌팔매질에
멍든 시간이 삼년이었고,
이 땅에서 만큼은 주님은 아픈이들이 아닌, 가난한 이들이 아닌,
가진 자, 힘있는 자들, 말 구유가 아닌, 헤롯의 궁전에 거하신다는 흉흉한 소문에 아파했던 시간이 삼년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비로서 인간안에 얼마나 이기적인 원죄이 유전자가 가득한지를 목격했습니다 누구나 세월호는 아픔이고, 상처이며, 슬픔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세월호를 이야기하고, 유가족들의 곁을 지키라치면 '종북', '빨갱이'라는 돌팔매가 시작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파하는 이들의 곁에 함께 하려는 마음 마져도 용기?가 필요했던 아픈 삼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삼년이 지나고 나서야,
잔인한 무관심의 깊이 만큼 깊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떠올랐습니다
세월호가 떠오르자 다시금 세월호를, 유가족의 아픔을 운운하는 우리네 예수 믿는? 이들의 모습에,
앞장 서듯 언론에 얼굴을 들이밀고, 부활절 행사 및 기획에 연민과 사랑많은 종교인 드러내기식의 기도시간을 슬그머니 끼워넣고 있는 근엄하고 거룩?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만 조롱섞인 옅은 미소, 그 너머에 담긴 분노가 베어나니 어쩌면 좋을까요 ?
그 삼년을 교회안에서 들어왔던 수 많은 잔인한 소리들...
'아픔을 이해한다 상처를 공감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해라'......
제 손톱끝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보다 무겁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타자의 고통은 작고 큼을 계량화 할 수 없습니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원죄의 유전자를 지닌 우리에게는 타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경험할 만큼의 공감의 능력이 일천하기 때문입니다
타자의 고통이 이해되고 공감되어진다는 말은, 그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되고, 그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됨을 말합니다
그가 아파하는데 그런데 그만하라고, 그가 눈물 흘리는데 멈추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타자의 아픔, 타자의 고통일 뿐 나와는 별반 관계 없음을 드러내는 꼴입니다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알만하다는 말입니까 ? 정확히는 내가 이해해줄 만큼, 내가 헤아릴 만큼만 아픈 셈입니다 단언컨데 우리는 결코 그의 아픔을, 그녀의 슬픔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의 눈물이 얼마나 뜨겁고 고통스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는 거짓됨입니다 한번도 나의 고통이 되어본적 없으니 멈추라 나무랄 수 있습니다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타박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하고, 내가 이해해줄 수 있는 이처럼 고통속에 있는 이웃들 위에 서려는 오만함입니다 하지만 일단 내 고통이 되면 논리와 이성, 효용성, 상식 그런 말들은 모두 사치스러울 뿐입니다
아픔앞에 통곡하지 못하고 계산함으로 절제하는 인간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용서도, 이해도, 잊음도 고통과 마주하고 있는 이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곁을 지켜주고 쓰러지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해주고, 눈물을 닦아 줄 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는 우리에게 어찌하셨나요 ? 예수의 성육신으로부터 비롯해서, 예수의 십자가가, 예수의 부활로 이어지는 그 숭고한 구속의 시간이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전적인 공감"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식을 잃은 라헬들을 찾아 그 고통과 슬픔의 세상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와 동일한 육체, 동일한 삶속에서 고통을 경험하여, 우리를 체휼하실 수 있으신 분이 예수가 아니었습니까 ?
그가 가시관을 쓰고, 채찍에 맞고,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림이 우리들의 죽음을 온 몸으로 끌어안으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
내 서있는 자리가,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걷고 있는지, 내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는 사순절입니다
이쪽에서 보면 이런 얼굴, 저쪽에서 보면 저런 얼굴을 갖고 있는 일그러진 모습이 아닌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총에만 기댈 수 있는 부족하고, 상처많고, 눈물많고, 아파하는 모습 그대로,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져 타자의 고통과 아픔이 찔려와도,
그것을 나의 십자가로 끌어안는 예수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떠오른 세월호... 그러나 밝혀져야할 진실은 많고, 가리려고 하는 거짓도 많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삼년보다 더 잔인하고 더 괴로워하는 이들의 아픔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이 땅의 삶의 자리에 주의 은총 머물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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