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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의 실종, 인간의 파괴 그리고 평화의 길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2017. 8. 20. 00:05

    1

    한센병이 무서운 이유는 세균에 의한 침식보다는, 썩어가고 상처입는 고통에 무뎌진다는데 있다는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실은 우리의 살아감 속에는 늘 이런 모습이 즐비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살충제 계란 때문에 연일 시끄럽기만 합니다 산란계들을 키우는 양계장의 환경이 얼마나 낙후하고 반 생태적인지 새롭게 알게되면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로 상당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지나고 있음에도 아직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오늘 자 뉴스를 보니 안전한 농가를 지정하고 출하를 허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뉴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런 정부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불신이 가득합니다 살충제가 검출된 곳중에, 친환경이라고 허가를 받은 농장들의 이름이 발견되는 것도 그렇지만, 사실 관계와 맞지 않은 농장을 친환경이라고 임의로 지정해준 기관들, 생산지를 허위로 조작하는 이들, 다른 농장도 그렇게 하는데 뭐 어때?라고 생각한 사람들, 돈이 좀 된다면 양심을 팔아 넘기는데 주저 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속이는 사람들이기에 사람들은 더 이상 믿지 못하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뒷 맛이 찝찝한 것이, 사실은 속임의 문화와 세상은 우리 모두가 공범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속이는데 익숙합니다 그리고 속임 당하는 것에 분노합니다 


    2

    그러고 보니 이 시대안에 ‘우리’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은 교회 공동체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공동체 입니다 신약 성서에 ‘바울’ 사도가 표현한 ‘한 몸’이 바로 그것입니다 공동체 ‘커뮤니티’ 혹은 ‘커뮤니언’은 함께 라고 하는 컴과 ‘선물’이라고 하는 ‘munus’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말의 뜻대로라면 공동체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지는, 그렇게 ‘함께’하는 이들의 집합인 셈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라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나 거기 서 있다' 부분


    3

    어느새 우리는 ‘너’ 때문에 아파하지 못하는 불감증 환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나’ 때문에 세상은 무너지는데, ‘너’의 아픔은, ‘너’의 슬픔은 공감되지 않는 ‘우리’는 불화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나’와 ‘너’로 구별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너’는 선물이 아닌, 속임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나와 너가 평화하는 ‘우리’가 되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너’는 ‘나’를 위한 속임과 희생의 대상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늘 그런 식입니다 내 돈을 위해, 내 이익을 위해, ‘남들도 다 그런데 뭘’이라는 한 마디 때문에 우리는 속이는 자가 됩니다 너가 죽으면, 내가 죽는 것을 모릅니다 너가 살면, 우리가 사는 것임을 놓칩니다


    윤리의 실종, 공공성의 실종은 ‘나’와 ‘너’로 대립되는 ‘우리’의 깨어짐, ‘평화’의 깨어짐과 동의어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회복할 때에만 우리 사회에서 다시금 정의가 흐르고, 공의가 세워지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일련의 사건속에서 나와 너가 구별되지 않고, 한번이라도 ‘우리’일 수 있었다면 이런 갈등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평화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과도 평화할 수 없기에 그렇게 스스로도 속이고, 또 그렇게 고독과 소외 속에 버려집니다



    4

    지금도 우리는 또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의 이야기에 익숙했던 우리이기에 여전히 내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인 양 분노하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일’ 이라고 말하는 우리는 멈추어야만 합니다 남이 아닌 우리입니다 이것을 회복해야만 우리는 비로서 평화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살리는 길이 됩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생명이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우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명을 보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시금 발견되어집니다 


    생명의 신음에 함께 울 수 있고, 생명의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예민함이 ‘나’를 일깨워줍니다


    그렇게 너의 상처에 귀 기울이고, 그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하나 됨 !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이, 세상은 교회가 되어집니다 그것이 ‘공동체’ ‘한 몸’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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