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10/ 8 창조절 6주성서의 거울 앞에 2017. 10. 8. 14:25
본문 - 출애굽기 20:1 ~ 20
https://youtu.be/EPGCncGAxug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약속'안에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1
긴 추석 연휴 기간 주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 부모님을 만나고 형제 자매와 함께 하는 마음의 풍성함을 누렸듯, 우리 모두의 삶에도 이처럼 풍성히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십계명’을 알고 계시지요 ?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십계명’에 관하여는 출애굽기와 신명기를 통해 읽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십계명’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처음 드는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 ? 억압, 불편함, 강요, 부담감을 떠올리셨다면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눔으로 주 안에서 자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2
출애굽 이후 삼개월이 지났을 즈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한 시내산은 구약성경에서 호렙산으로도 불리우는데 영험한 산으로 여겨집니다 시내산이 특별한 것은 그 산이 높아서도, 웅장해서도, 경관이 수려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산,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되는 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산에서 이스라엘은 드디어 그들을 출애굽으로 이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출애굽 이후의 삼개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운 구원의 사건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계속해서 그들은 하나님 야훼는 누구이신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 나갔습니다
자신들을 애굽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신 분, 말과 적군을 무찌르시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아서는 모든 것, 그것이 홍해라 할지라도 거침없이 걷어내시고 길을 만드시는 분,
먹을 것과, 마실 것이라고 하는 생존의 문제앞에서도 그들을 지탱해주시는 분.
그들의 목숨을 취하고자 맞서는 아말렉과 같은 열패감을 경험하게 만드는 세력의 손에서도 능히 그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 어떤 민족보다, 그리고 우리중 누구보다 이렇게 생생하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잘 아는 민족은 없을 것입니다
———————————
3
그동안 문제앞에 봉착할 때 마다 예외없이, 권능을 보이시던 하나님이 거하시던 곳은 저 하늘 위였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는 자유를 찾는 이스라엘이 도착한 시내산 위에까지 임하셨고 지도자 모세를 산위로 불러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산위에 오른 모세에게 말씀하신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언약’즉 ‘약속’을 맺자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약속이라면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체결되어야 하는데, 이 약속은 무언가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생존의 필요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언약을 체결해 달라고 떼를 쓰거나 조르기 위해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미셨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지배아래 신음하고 있던 그 처절한 때에 먼저 그들을 찾아오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약속’이란 사전적으로 모름지기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두거나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을 말합니다 어떻게 함께 장래의 일을 열어갈 것인지, 미래를 논하는 자리가 바로 이 약속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약속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굴복의 대상이 아닌, 서로 마주보는 대상으로서 인정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약속을 맺으셨다는 말은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신들이나, 가나안의 우상들처럼 지배와 억압과 강요와 굴복의 대상이 아닌 약속의 상대방으로 여겨주시고 인정해주셨음을 말합니다
게다가 언약을 체결함에 있어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었는지는 전혀 문제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의 빵 부스러기를 받아먹으며 비천하게 살았는지, 애굽의 우상들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살았었는지, 돈과 권력앞에 무릎을 꿇으며 부정의하게 살아왔는지, 혹은 자신이 살고자 타인을 해하며 살아왔는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언약안에는 그들의 출신과 그들의 본성, 능력과 관계 없이 ‘하나님 백성’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그들을 불러내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
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사이에서 맺으시려는 언약의 주된 내용과 목적은 매우 단순합니다 음흉하게 감추고 있는 속내도 없이 투명하기만 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킴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
19장 5 ~ 6절은 이런 목적을 나태내주고, 그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은 오늘 읽은 20장과 이후로 시작하는 율례들안에 담겨있습니다 19장 5절은 간단히 말해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가 내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핏 우리가 명령을 잘 따른다는 조건과 자격만 갖추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라고 하는 말 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실재로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이 약속을 온전히 지켜낸 적이 없습니다 점수로만 치면 이스라엘은 언제나 낙제점이었고,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이 아니라고 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 그러니 이 문장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마음을 유심히 읽어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애초에 이 언약과 약속의 관계 자체가 타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찾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십시오
또 한가지 ! 이제 이스라엘이 시련을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는 길목, 그러니까 이 약속의 방향과 지향이 어제도, 오늘도 아닌,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맞이할 ‘내일’에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단초가 됩니다
이렇게 하고 다시 읽어보면, 이 문장의 앞 그러니까 ‘너희가 이 약속을 지키면’의 앞에 숨어 있는 ‘내가 이제 부터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주겠다 !’ 라고 외치는 하나님 마음이 숨은 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것이 주된 문장이고, 그로부터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가 너희는 나와 약속을 맺고, 그 약속의 소망안에 살아가는 이들이 될 것이다 ! 는 셈입니다 이 주된 문장이 바로 오늘 십계명이 기록된 20장과 이후 21장부터 이어지는 율법과 율례들, 그리고 레위기까지 이어지는 해석의 키워드가 됩니다
———————————
5
무엇때문에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마라, 어떤 우상에게도 절하지 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마라, 안식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하셨을까요 ?
최소한 이스라엘은 누구나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치고 그가 지금까지 그들의 생명의 주가 되신 것을 못 본 사람이 없습니다 굳이 그렇게 명령으로까지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두번째 해석의 키워드 이 약속이 ‘내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이 계명은 모두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내일을 시작해야하는 이스라엘, 즉 자기 백성을 위한 사랑의 언어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들이 정착하고 살아가야 하는 땅은 풍요와 다산과 소위 행복을 이야기하고 약속해주는 가나안의 신들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 땅에 들어가면 그 지방의 신의 지배를 받는다는 다신론의 신관이 지배하던 당시 문화속에서 이 말씀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담대합니다 야웨 이외에는 모두가 거짓이라는 선언은 자칫 그 지방 세력으로부터 전쟁과 죽음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
6
하나님이 함께 하셔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펴셔도 그 손을 잡지 못했던 이스라엘이며,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걸음을 걸으면서도 불안에 떨던 불신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곧장 지배받아 두려움에 꽁무니를 빼는 이들이었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늘, 애굽의 막강함이나 다른 민족의 풍성함에 주눅들어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백년간 뼛속까지 뿌리 박힌 노예근성은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도 다시금 드러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가나안땅에서 이들은 풍요를 관장하는 바알이나 아세라와 같은 이방신의 간섭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들지 않으면 비도, 햇빛도 허락되지 않고 농사는 망할 것이며, 그들의 내일은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광야에서 늘 경험하던 굶주림과 목마름의 두려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던 길에서도 배고픔과 목마름에 하나님을 원망했던 이들이었으니,‘오늘’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이 노예처럼 가나안 우상들앞에 벌벌 떨고 비위를 맞추려 들 것입니다 마치 오늘의 시대에, 돈의 권세와 지배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마는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여기에서 십계명의 전반부인 1~4절까지 ‘나 이외의 다른 신은 없다’는 야웨의 유일성의 선언이 빛을 냅니다 이스라엘에게 야웨만이 그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하나님이시게 되는 그 순간 ! 두려움의 대상으로 그들의 앞을 버티고 서 있는 모든 우상들과 세상권력은 모두 출애굽 당시 야웨 하나님에 의해 무릎 꿇린 바로나, 애굽, 홍해, 아말렉처럼 실재하고 있으나, 실상의 내 삶을 지배할 수 없는 신기루처럼 거짓된 존재들 중에 하나가 될 뿐입니다 !
———————————
7
그러니 유일신 하나님 선언은 신앙의 울타리에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한 강요가 아닌, 낯설고 당황스런 이방의 땅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우상에게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면서 주눅든 채 구속받지 말고, 어디를 가더라도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큰 함성과 기합처럼 들립니다 끊임없이 걱정하지 마라고, 어깨펴고 다니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가난한 살림에 학비를 걱정하고, 병원 치료비를 걱정하는 처자식에게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너는 걱정 마라고 말하는 아비의 음성이 들리웁니다
타지로 떠나는 자식을 붙잡고 밤새 많이 성공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그저 몸 건강하게, 그저 너하나 행복하게 살라는 부모의 마음 그대로인 셈입니다
이 말씀이 공허하거나, 부질없는 명령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이 말씀이 ‘너희가 이렇게 하여라’는 것이 아닌,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하나님 선언이자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 는 이 하나의 메시지를 읽게 하는 거울인 셈입니다 십계명은 인간이 이루고 완수해 내야만 하는 무거운 숙제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증서입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우리 삶을 지배할 다른 신은 없고, 그 하나님이 이름도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지 않으시는 천지의 주재이시니, 두려워할 것도 없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안식하라 명하셨으니 일체의 강요와 착취로부터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우리에게 주신 자유와 생명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해내도록 비추는 거울 말입니다
———————————
8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시골에 다녀오시면서 집을 비우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린 저에게 배고프거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 옆 식당에 가서 어머니 이름 대고 마음껏 먹으라 하셨습니다 출출한 차에 문을 나섰지만 저는 선뜻 문을 열고 들어서지 못한 채 중국집 앞만 서성거렸습니다 중국집 주인 아저씨의 인상이 무척 험해 보인 탓도 있지만 어머니 이름만 대고서도 식사를 할 수 있을까 ? 라는 사실에 신뢰를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괜시리 음식 시켜먹고 돈을 내라 채근당하면 낭패를 당할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첫째날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먹었습니다 둘째날 점심까지도 집에서 굶다가 오후 늦게서야 다시 중국집 앞에까지 가서는 다시금 서성 거립니다
한참을 서성거리는 저를 보고 식당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셔서는 ‘어머니에게 말씀 들었다며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하십니다 반신 반의하면서 자장면을 먹고 나오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다음 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내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음에도 내집에 들어가듯 들어가 식사를 하게 됩니다 주인 아저씨의 험한 인상도 그렇게 상냥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와 식당주인과 맺은 약속이, 어머니께서 나와 맺어준 약속이 있었기에, 아무런 꺼리김이나 두려움없이 마음껏 식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
9
이스라엘의 발걸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광야길처럼 반복되어지는 두려움의 문제가 늘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위압적인 모습에 주눅이 들고, 돈의 권세가 우리 영혼마져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삶의 여유와 자유의 기쁨은 빼앗겨 버렸고, 당장 ‘오늘’의 문제가 주일도 안식하지 못한채 몸부림 치며 살도록 강요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나 여호와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내가 너의 내일이 되어줄 터이니 주눅들지 말어라 그저 너 하나 행복하고 그저 너하나 건강하게 잘 살아라’
오늘도 십계명은 구속과 억압과 거부감이 아닌,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고 자비로운 사랑과 만나게 합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율례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자유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포입니다 구약의 복음입니다 그렇게 알고 보면 십계명은 거북함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감동의 약속증서인 셈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을 찾아와 내가 네 하나님이 되어줄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가슴에 새기고 여러분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조건없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주께서 우리 모두의 삶과 영혼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아멘.
'성서의 거울 앞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 10/ 22 창조절 여덟번째 (0) 2017.10.22 2017/ 10/ 15 창조절 일곱번째 주 (0) 2017.10.15 2017 / 10/ 1 창조절 다섯번째 주일 (0) 2017.10.01 2017/ 09/ 24 창조절 넷째주 (0) 2017.09.24 2017/ 9/ 17 창조절 셋째주 (0) 2017.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