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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25 성령강림후 11주 / 왕국절
    성서의 거울 앞에 2019. 8. 24. 22:46

    성서일과

                         #01 예레미야 1:4 ~ 10

                         #02 히브리서 12:18 ~ 29

              본문)   #03 누가복음 13:10 ~ 17

                         #04 응송 시편 71:1 ~ 6

     

    설교 음원

    https://drive.google.com/open?id=1ZGxhsd7GP9Lbov_ZWpjgIqQFONiwsSTe - '클릭' 하시면 '설교음원'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설교 영상

    https://youtu.be/nxa3R64hae8 - '클릭' 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1

    방금전에 보신 영상에 나온 사람이 누구이신지 아시나요 ? '이용마' 기자입니다 서슬퍼런 정권의 앞에 무너지던 방송을 지켜내겠다며 시작되었던 2012 170일에 걸친 MBC노조 파업당시 그는 제일 먼저 해직되었습니다. 그리고 촛불혁명이 한창이던 2017 12 11 휠체어를 탄채 꿈에도 그리던 방송국에 복직되었습니다. 불의한 정권에 아첨하며 승승장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언론 민주화를 지켜내겠다고 밥그릇을 집어던진 사람입니다. 치열한 삶에서 그의 몸은 쇠약해졌고, 병마가 그를 집어삼키운 이후 지난 21 소천하였습니다. 1969년생 그러니까 51세입니다.

    시간은 그가 선택했던 길이 옳았다고 말해주었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그가 직면했던 시간들은 얼마나 두렵고, 힘이 들었을까 ? ‘과연 이런다고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라는 물음앞에 얼마나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고를 반복했을까 ? 거짓되고 불의와 타협한 이들이 잘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은 얼마나 무너져내렸을지 ...

     

    그러고 보면 우리들 개개인이 직면해야하는 삶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을 만큼 치열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으면 없는 힘에 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절망이 때로는 두려움이, 그리고 그렇게 걸음에 대한 회의가 계속 반복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는 세상에서, ‘대체, 믿는다고 뭐가 바뀌는가 ?라는 절망을 쏟아내고, 때로는 믿음의 길에서 파선하기도 합니다.

     

    복직하는 , ‘나는 이 날이 올 것을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습니다라던 이용마 기자의 한 번도라는 말이 자꾸만 부럽게 들립니다. 대체 그는 무엇을 보고 있었길래, 무엇에 기대고 있었기에 서슬퍼런 현실에서도 매일을 흔들리고 휘청거리는 우리네 걸음과 달리, 의심하지 않고 오롯이내일오늘처럼 붙들수 있었던 것일까요 ?

    그는 양심과 진실이라는 부름앞에 반응했었고, 어떤 사람들은 현실의 삶에 반응했습니다. 그들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우리중에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이끄는대로 은혜 안에서 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도리어 넘어지는 돌부리 되기도 합니다. 차이는 무엇입니까 ?

     

    2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를 믿는다는 말은, 그를 믿을 대상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며, 안다는 것은 그런 존재로 경험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도 덜도 아닌,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믿는 만큼만 살아가게 됩니다.

    아~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삶으로 경험한 사람과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데~'라는 말을 들은 사람의 삶의 무게와 결은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안다는 '으로 체화되려면, 반드시 아는 것을 터잡아 살아내야만 합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변화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될때, 다시 말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 어떤 경험이기에, 사람의 삶이 변화되고 그의 인생이 바뀌게 만드는 것일까요 ?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험한다는 것의 힘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

    루돌프 오토라고 하는 신학자는 그의 《성스러운 것:Das Heilige》에서 인간이 절대의 신을 경험하는 것을누미노제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절대의 경험이기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놀람 경외, 두려움, 그리고 매혹 평안 경험하게 되고 경험에 압도될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압도되었다는 말은 쉽게 말해, 그와 같은 이를 경험한 바가 없고, 그와 같은 이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방법, 다른 , 다른 ,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여지가 있다는 것은 존재가 내게 절대적 존재가 아닐 뿐더러, 삶의 걸음을 바꿀 만큼 압도적이지도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하나님을 경외의 대상으로 경험한 사람은 그의 말씀을 따라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절대성과 두려움으로 하나님 경험에 압도당한 이들의 반응은 가지로 드러나게 됩니다. 무당이나 점쟁이가 귀신 때문이라고 말해주는 순간부터 귀신에게 눌려 사는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대해서도 두려움에 눈치를 보면서 살던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반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도, 무섭기 그지 없는 존재 앞에서는 주눅들기가 마련입니다. 그러니 압도적인 존재를 적극적으로 따르며 반응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대상이 내게 유익이 되는가 ? 선한가에 대한 신뢰의 정도, 결국은 그에 대하여 마음을 담는 '사랑하느냐' 따라 달라질 밖에는 없습니다.

     

    본문 2독서 히브리서 12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부류의 신앙의 자리를, 시내산과 시온산이라는 가지 산의 이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이야기는 출애굽기 20 말씀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던 산입니다. 율법을 받아들고 내려오는 모세에게 군중은 외칩니다.

    …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_출 20:19

    히브리서 기자는 인간의 연약함과 두려움에 터잡은 모든 세워진 것들, 심지어 유대인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있던 율법신앙의 자리까지도 결국은 흔들리고 깨어질 것들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가 영광스럽게 선포되어지는 시온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완성될 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영원한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믿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

    그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말씀으로가 아니라, 따르지 않으면 벌받고 저주 받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그마져도 요즘은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그의 진노 조차도 거부하는 우리이지만,

    그를 따라 사는 , 그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내것을 희생하고, 기쁨을 포기해고, 내가 짊어져야하는 무엇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 여전히 시내산에 올라 경외의 대상인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그렇게 두려우니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으로 치부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알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를 아는 것이 기쁨이고, 그를 아는 것에 삶의 구원이 담겨 있으며,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안에 있습니다

     

    3

    오늘 3독서 누가복음 본문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18년간이나 귀신들려 꼬부라져 사는 여인을 고치신 이적 사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들리면 제대로 어깨피며 없습니다 권세에 눌려 위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못된 누미노제의 경험입니다 소망을 잃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짜부라지기 마련입니다 오랜 시간 아프고, 오랜 시간 궁핍하고, 오랜 시간 박탈당해 살아가면 누구나 그렇게 됩니다

     

    신약당시에는 이미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이 성전에서 회당으로 옮겨져있었습니다 성전을 잃어버렸던 바벨론 포로기의 기억 때문입니다 회당은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되어지고, 기도와 설교가 이어지는 예배의 처소, 그곳에서 에수님은 병들고 귀신들린 여인에게 12네 병에서 놓였다 ~라고 선포해주셨습니다 !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고, 주님은 그를 메시아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움 너머로 들리는 회당장의 이어진 말은,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 고침을 받고 안식일에는 하지 말아라’. 함께 기뻐할 없었던 그는 지금 여인의 기쁨이 되어주신 예수님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그의 심사는 단단히 꼬여 있습니다

     

    첫번째, 그는 병든자, 귀신들린자에게 소망과 해방과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일을 그는 단순한 엿새동안 일어날 허드렛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여인을 고치시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은, 여인도 회당에 있었거나 출입했었음을 추측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18년간 귀신에 묶인 여인이 아니라 ) 귀신에 묶여 꼬부라지고 뒤틀린 그녀를 18년간이나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귀신을 내어좇아 회복시키지만, 회당장은 능력이 없는 범부이니 어쩔 없는 것은 아닐까 ? 라고 되묻는다면, 예수의 치유와 축사사역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당장은 여인을 고쳐주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고쳐줄 생각을 하지 않았던 , 주님의 이름으로 깨어지고 뒤틀린 삶을 붙들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

    두번째, 물론 결국은 예수님 들으시라고 하는 말이지만, 그의 말은 병들고 아프고, 귀신들린 마음과 육체를 이끌고 예수께 나아가고자 하는 군중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18년간 뒤틀렸던 여인의 절절한 아픔과 고통의 자리는, 그가 하고 있는 예배, 종교예식이나 사특한 목적에 가리워져있습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덮여지는 시온산이 아닌,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눈치나 보아야하는 시내산 자락에 머물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15에서 예수는 자신들의 소유인 소나 나귀만도 못하게 아픈 이들을 대하고 있는 그들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누미노’ ! 하나님 경험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니 눈치보는데만 급급한 셈입니다 이런 곳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자유와 해방을 경험케 하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만인 앞에서 여인이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선언하시고, 그가 병들고 귀신들려 있는 것은 그녀의 탓도 못도 아닌, 사탄에게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풀어주십니다하나님의 가로막는 존재가 사탄입니다 아픈자가 병든자가 귀신들려 눌리고 비틀린자가 자신을 정죄하고 포기하고 낙망하도록 버리고, 방치하고 망가트리는 존재입니다

    반면에 사탄에게 묶여 있는 이를 자유케 해주어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마땅한 사명, 마땅한 삶의 결이었습니다 사탄에게 묶여 자기 자신과도, 타인과도, 사회와도, 그리고 하나님과도 평화할 없는 이들을 평화하게 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이기 때문입니다 _ 5:9

     

    4

    그러고보면 참으로 의아합니다 회당장이나, 예수,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이들인데, 그런데 ? 무엇이 ? 이들의 삶의 모습, 신앙의 모습은 이렇게 전혀 다를 밖에 없는 것일까요 ?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말씀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전혀 다르기만 합니다 그들의 말씀에 대한 앎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금 스스로 질문해 봐야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압도적인 분이신가 ? 그의 말씀은 진리인가 ? 그의 말씀은 능력인가 ? 그는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분이신가 ? 답하여 보십시오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장면을, 천지만물이 하나님 말씀앞에 순응하는 것으로 읽어낸 어느 시인의 감성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천지만물이 순응하고그대로 되니라 길을 따르는데, 유독 인간은 말씀을 권위로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고그럴리가 없습니다 그럴 없습니다라며 저항하고 거부합니다 그러고보면믿음없음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입니다( * 들리워지는 말씀에 압도되어 순응하시고, 순응하는 삶 가운데 말씀이 써내려가는 위대한 일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

    그리고 부분에서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서 이루어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우리의 실망과 좌절이 비롯됩니다 말씀을 읽지만 믿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세상이 워낙 두터워서, 이런 삶과 현실이, 운명이 너무 거세니까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질 없을 것이라는 포기와 패배감이 스며들었을 뿐입니다 세상이 하나님 보다 크게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보다 크고 위대한 압도적인 분이시지 않은 분으로 알고, 경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

     

    5

    누가는 본문의 말씀뒤에 예수님의 말씀 한단락을 곧장 이어붙입니다 18 ~ 21입니다 겨자씨 한알 같고, 가루 서말속에 들어있는 누룩으로 비유되는하나님 나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으로는하나님 은혜로 덮여있는, 흔들리지 않고 요동치 않는 나라입니다

    지금 비록 이러할지라도, 지금은 연약하고, 지금은 깨어지고,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통치 있으니 ! 그것들이 공중의 새가 깃들 만큼 자라고, 전부를 부풀게 되어질 나라입니다

    회당장은 말씀을 들었지만 자신의 삶에 떨어진 말씀을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 알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예수는 그에게 들리워진 말씀 모두가 그의 삶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온전한 나라가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믿음안에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예수의 제자들, 예수를 믿고 따르는 모든 성경의 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 ! 우리들의 삶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 오십니다 !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말씀이 우리 개인의 신앙의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침내 그렇게 하실 하나님의 결연한 의지가 이루어질 것을 믿고 말씀에 잇대어 나아갈 뿐입니다 씨앗 알에, 누룩 한줌에, 우리의 걸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것입니다

     

    이용마 기자, 역시 올음의 길을 선택할 , 불법과 불의가, 세상의 권세가 압도적인 힘으로 짓눌러 , 암울했을 것입니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길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직면하는 삶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걸음을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의 요청을 자신의 의지보다, 세상의 힘보다 압도적인 음성으로 들어낸 걸음입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걸음위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6

    하나님 말씀앞에 나는 말할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라던 예레미야의 답변은, 거대한 현실앞에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우리는 무능합니다’ 하지만, 일을 이루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예레미야의 입에 말씀을 넣어주시고, (흔들리는) 왕국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시키고 넘어뜨리며,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건설하고, 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10)

    하나님이 계심으로 마침내 우리는 저마다의 신앙의 삶을 다시금 조명하고, 삶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과 세상의 구원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우리'안에 더불어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삶에 눌려 살아가는 이들이 모인 세상은, 결국 사탄의 체제인 폭력에 눌리는 세상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겨자씨처럼 반드시!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사는 세상에 폭력은, 사탄의 체제는 발붙일 없게 입니다

    나는 않된다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 넋두리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질 없다! 패배감으로 이어질 밖에는 없습니다 개인의 삶에서부터 승리를 경험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주님을 경험하십시오 매일의 묶임에서 풀어내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구원을 경험해내야 하고, 또한 그렇게 경험하게 것입니다

     

    정말 믿어도 없습니까 ?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까 ? 하나님은 아무도 구원하시지 못하십니까 ?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을 여기며 그를 불신하던 , 불의한 사탄의 체제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압도당하시는 예수는 말씀이 온전치 통치되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여린 여인의 삶속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로왕국절 시작됩니다 땅을 끌어안고 계시는 절대의 타자되시는 하나님, 그분의 통치와 회복의 역사를 기억해내십시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불의와 억압, 폭력과 절망, 찌그러지고 왜곡되도록 누르는 모든 거짓된 권세를 흔들고 뽑아내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의 나라는 요동치 않습니다

    우리의 되시는 예수와 함께 나라는, 이미 우리의 삶에 임하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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