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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8/ 21 성령강림후 14번째 주일
    성서의 거울 앞에 2016. 8. 21. 20:18

    2016 /8/ 21 


    본문 - 시편 93편                https://youtu.be/NFoSGASlsDQ  = 클릭하시면 예배 영상을 나누실 수 있습니다



    "뒤 바뀐 왕의 자리"



      



    1 

    마크 트웨인이 지은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을 알고 계십니까 ?

    영국의 에드워드 6세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가난한 빈민가의 거지 톰과 왕자 에드워드가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겼고, 서로 옷을 바꾸어 입게 되고나서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책으로도 영화로도 여러분 읽고 보았는데, 그때 마다 가장 긴장감이 높았던 부분은 아버지 헨리 8세가 죽고 우여곡절 끝에 왕자는 왕궁으로 돌아오지만 누구도 그를 왕자로 알아보지 못한 장면이었습니다 강점이입이라고 할까요 ? 진짜 왕자임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그 답답함에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전래 동화가 있기는 합니다

    함부로 버린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한 쥐가 주인 행사를 했다는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두 이야기안에서 발견되는 극적인 장면은 본래 주인이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한 장면이 아닐까요 ? 그런데 우리들 신앙의 자리에도 이러한 억울함과 말도 되지 않는 답답함, 자신의 자리를 인정받지 못해 억울해 하는 존재가 있음을 알고 계십니까?


    2

    오늘 함께 읽은 시편 93편은 왕이신 위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짧은 5절이ㅡ 말씀이지만,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이 시안에는 깊은 생에 대한 통찰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예배 가운데 나오시면 어떤 마음을 지켜내시면서 나오셨습니까 ? 아니,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기대감을 가지고, 또한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며 나오셨습니까 ?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주일에 교회에 나가 예배하는 우리들을 보면 답답해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힘들고 불편한 시간에 교회라는 곳에 나가서 보내는 시간이 낭비라고 말입니다 혹은 교회안에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반응과 기대감이 있습니다 오늘 목사님은 또 어떤 말을 하시려는지, 오늘 찬양은 왜 이렇게 어색한지, 시간은 또 왜 이리 더디가는지, 혹은 이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누려봐야지하는 경우도 있을 테고, 바쁘고 힘드니까, 피곤하니까, 혹은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한 두번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왠지 벌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테고, 그저 이도 저도 아닌, 현대인의 조금 세련된 생활로 무감각하게 참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예배가 이 중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과연 예배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거나, 하나님께 무엇을 받거나 하는 것은 사실 모두 예배의 부차적인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예배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 시편기자는 그분을 왕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그 표현은 결코 상투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인의 이 고백은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또 그렇게 쥐어짜듯 뱉어진 삶의 한 마디입니다


    하나님은 이시다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붙들고, 이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보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에 의해서, 세계 기구에 의해서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대통령이나 국가의 경제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만한 기업이 세상을 지탱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보다 노골적으로는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온 우주가 지탱되어지는 것은 전능하시며 생명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밤 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는 별들이 떨어지지 않고, 바다가 뒤 덮지 않으며, 우리들 살아가는 세상이 몰락하지 않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이 땅 어떤 권세보다 강하시고, 그 무엇보다 높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바로 그분이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왕은 세상의 천박한 권력과는 그 무게가 다릅니다 그 지배하는 범위와 권세가 다릅니다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왕입니다


    그렇다면 !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온 세상을 지탱하는 유일의 권세자라면, 그 분이 천하를 호령하고 우주를 손으로 펴시는 왕이시라고 믿으신다면,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다면, 조심스레 권면합니다 이제는 함부로 하나님 앞에 서지 마십시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아니 그분을 인정도 하지 않으면서, 그분 앞에 서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모독입니다


    3

    라의 수장앞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서실 수 있습니까 ? 부모님 앞애서, 어른들 앞에 행동거지를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 나보다 높은 권위 때문입니다

    예배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를 그렇게 아무런 긴장감이나 경외감없이 그렇게 공기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서고 있다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가장 정확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

    교회에 들어와 흐트러짐이 없는지 옷깃을 여미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예식이 중해서도, 교회라서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의식 때문입니다


    물론 초보적인 신앙이라면 괜찮습니다 아직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거나,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곘다는 결심과 신앙적 결단에 서지 못한 분이라면, 아직은 하나님을 깊이 모르고 있다면 괜찮습니다 신앙의 초기라는 것은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때이니 말 입니다 만일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감이 상실되어 있다면, 예 여러분의 신앙은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이거나 아직은 미숙한 상태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때에는 아직 그분이 왕이심이 인식되지 않는 단계입니다 이런 때에는 아직 내 의지가 우선시 되는 때입니다 내가 편한대로, 내 마음에 내키는 대로, 내가 좋아하는 대로, 하나님 앞에 서도 별반 거슬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


    4

    하지만 여러분 그렇다고 하여도, 즉 아직 신앙이 없어도, 비록 아직은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처음 나오신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실 때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하나님께 나오셔야만 합니다 

    내가 함부로 해도 괜찮은 하나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 내 마음이 우선되어도 괜찮은 하나님이라면, 대체 그렇다면 여러분은 왕도 아닌 그런 하나님을 왜 찾고 있으며, 나 조차도 이길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을 대체 왜 믿으려고 하십니까 ?

    왕이신 하나님을 찾으시려면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경외감으로 그 앞으로 나아가셔야 합니다

    그런 마음의 기대감이나 준비가 없다는 것은 몸은 예배에 나오면서도 실은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기대가 없다는 반증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담아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은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 의해 조종되거나 복종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이 왕이시면, 우리는 실재의 위협적인 삶을 직면할 수 있게 됩니다

    살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 그 말이 맞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3절 에 큰 물이 소리를 높이며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실감나게 읽으면 물이 소리를 높입니다 더 큰 물이 흉흉한 물결로 닥쳐옵니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세상살이의 정의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우리들 인간은 하나님의 품안에서만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늘 불안하고 두려움에 휩쌓여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오늘을 소비하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삶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왕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시인은 세상의 그 높은 파도보다, 세상을 온통 뒤 덮을 것같은 그 물결보다 하나님은 더 높으신 분이십니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6

    기독교신앙의 정체성은 예수님을 믿으면 고통이 사라진다 위협이나 역경이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를 어떻게 위로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분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온통 죄와 타락에 물들고 부폐하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직면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림으로 현실에서의 도피, 마음의 위로, 약맞는 그런 수준의 일을 경험해서는 않됩니다 신비한 무엇으로 세상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기독교 복음은 세상과 벗어난 자리가 아닌, 바로 그 세상안에서 하나님이 왕이시라고 선언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외면이 아닌 세상을 직면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왕이되시는 자리라면, 바로 그곳에서 우리 삶의 문제들, 부정의와 폭력과 고통과 좌절, 아픔과 상처의 문제들은 무력화되어지고 무장해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왕되시는 하나님의 권위야말로 최종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통스러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들 삶의 어려움이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숨이 막히고, 그래서 기도가 아닌 울부짖음이 될 때도 있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 하나님 대체  나한테…  왜 이러십니까? 따져 묻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왕이시라는 하나님이 왜 이리 무기력하십니까 ? 답답한 신앙의 밤이 계속되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우리 삶에서 '왕'으로 계십니까 ?

    큰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탄탄한 근육이 생기려면, 근세포가 찢어지고 회복되는 것이 반복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정서적인 고난과 어려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고통을 겪어내야만 더 단단해 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단단하게 세워가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기에, 세상의 어떠한 권세보다 크시고 강하신 왕이시기에, 왕의 자녀된 우리로 하여금 역시나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이들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소망을 이루게 된다는 바울의 고백은 옳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세상에서 예수를 믿으니 얻게 되는 핍박이나 고통까지 더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음게 되면, 더이상 우리는 세상의 종노릇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우리 실존에서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되기 때문입니다


    7

    깨지고 엉터리 같은 세상, 이곳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에 천착하지 않고, 영원한 아버지의 집을 바라봅니다 어서 당신의 나라가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이 세대의 눈물을 지워주십시오 라고 기도합시다 그저 세상살이 힘드니, 내 삶을 온통 부정하고 저 멀리 신화적인 세계만을 기대하는 허탄한 종교가 아닌, 그저 억울한 내 삶의 만족이 이루어지는 신앙의 나라가 아닌, 참된 왕의 주권이, 왕의 통치가 회복되어지는 '종말'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 그 종말이 현실이 되고, 이 땅에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여러분 !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과 절망과 피곤함과 좌절과 무력감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시고 대하시고 믿으세요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며,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영혼에 참된 평안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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