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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3 부활절 2주
    성서의 거울 앞에 2017. 4. 23. 14:13

    2017/ 4/ 23  부활절 2주


    본문 - 요한복음 20:19 ~ 31


    https://youtu.be/hSQZefubUKY  = '클릭'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 그가 전해주시는 '평안'


    ( * 카라바지오 '의심하는 도마')


    1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난 사흘째 날, 그러니까 안식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당연히 마주쳐야했던 예수는 주검이 아닌, 여인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살아 있는 이였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니 ?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사건이 예수 안에서 일어났으며, 예수를 찾던 이들은 이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8절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2 그러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니 ? 

    (* 사실 예수 부활에 대한 믿음의 문제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가 본질이 아니라, 죽은 자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을 수 있는가 ? 의 문제야 말로 본질입니다 )

    스승 예수를 따르며 지내온 시간이 삼년이지만, 스승 예수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깃들어 있음을 헤아릴 만한 사건들을 보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문제인 셈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생명을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려내실 수 있으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유대인 공동체 신앙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한 마른 뼈의 환상을 기억해내고 있지만 개인의 삶에서 죽은 자의 다시 삶의 문제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일 뿐입니다


    3 사도 베드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중에 여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은 이는 없었다 스승 예수가 죽은 무덤에서 일어나 살아 있다는 이 놀라운 이야기에도 여전히 이들의 슬픔은 가시지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일, 현실감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새벽부터 소동이 있고 난 후 변함 없이 하루가 지났다 19절은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라고 시간을 밝혀주고 있다 어둠이 내렸다 소망이 사라진 현실, 어둠은 제자들의 마음에도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라고 군중들이 소리치던 그 절망의 공간인 예루살렘입니다 방안에 모인 사람들은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모두들 스승을 잃은 슬픔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막연함, 그리고 여전히 예수에 대한 군중들의 반감으로 인한 두려움에 눌려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틈 속에 머무는 것 뿐입니다 더 이상 소망은 없습니다 이른 새벽 여인들이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들었지만 허튼 이야기는 제자들의 실재적인 두려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4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 두려움에 눌려 있는 제자들 사이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온통 그들을 휘어잡고 있던 절망과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떨구었던 고개를 들던 제자들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외쳤습니다 ‘주님이시다~!‘

    두려움에 짓눌려 문을 꽁꽁 걸어잠근 제자들의 사이로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못 박히셨던 손과 창에찔리셨던 옆구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예, 주님이십니다 !’ 여인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언제나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가르쳐주시던 주님이십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심을 가르쳐주시던 주님이십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억나기 시작한 주님의 말씀이, 그들을 짓누르던 두려움을 내어좇고 주님을 다시금 만난 기쁨이 그들 안에 새로운 소망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 이 절망속에서 언제나 당당하고, 확신에 차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던 주님의 말씀이 기억날 수 있음은,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모습속에서만 분명한 사실일 수 있습니다


    5 그러나 절망에 휩싸인 제자들의 자리에 함께 하시던 주님은 홀연히 오셨듯, 어느 새인가 보이시지 않습니다 헛깨비를 본 것일까요 ? 마침 자리에 없던 도마가 들어왔습니다 제자들은 너나 할 것없이 무덤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그 여인들처럼 도마에게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주님이 살아나셨다 !’ 

    한 두 사람도 아닌, 모인이들이 모두 외치는 소리에 도마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니… 분명 사흘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도, 창에 찔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들이 헛것을 보았거나, 주님을 닮은 누군가를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내보려 몸부림쳐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죽은 자를 붙들고 있는 모습에 답답함을 너머 화가 나기 시작해 짜증섞인 목소리를 냅니다

    ‘그가 찢기고 죽으신 것을 모두가 보았지 않은가 ? 너희들이 본 것은 주님을 닮은 누군가일테지 난 도무지 믿을 수 없네 결단코 죽은 자는 살아올 수 없는 일이야 ! 그러니 못자국이나 창자국 사이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


    나머지 제자들의 말문이 닫혀버렸습니다 도마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죽은 자가 살아돌아오다니…. 


    5-1 일단 절망이나 두려움이 닥쳐오면, 우리들의 삶의 자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예배할 때, 기도할 때 분명 지금 여기에 계시는 주님이, 고개를 돌려 삶을 바라보는 순간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예수는 죽은 자이며, 내 삶은 두려움에 짓눌려 있습니다 내 삶속에서 예수가 살아 있다면, 죽음이 벗어난 예수가 살아있다면 그를 살려내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두려움을 이겨낼 텐데 말입니다

    기도하면서도 우리의 눈은 두려움에 눈물이 흐르고, 예배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절망에 압도당하기도 합니다 문득 문득 예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지만 여전히 답답하기만 합니다 



    6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니 형편없는 자리입니다 맞습니다 ! 예수는 이미 사흘전에 죽었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볼품없이 두려움과 절망에 찌들은 제자들 밖에는 없습니다 돌아보니 주님은 계시지 않고 절망의 상황만 보입니다

    그렇게 다시금 여드레가 지났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했던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는 예수의 죽음은 다시 현실이 되었고, 그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은 그저 헛소리였을 뿐입니다

    모두가 모여있는 자리, 그러나 주님이 계시지 않은 그곳은 다시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절망의 공간입니다 

    그들의 절망과 두려움의 두께는 너무나 두껍기만 합니다 누구도, 어떤 소식도 이 두려움을, 이 절망을 벗겨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금 방문을 걸어잠궜습니다 

    그래도 혹시 팔일 전에 주님이 오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 생각이 일어나곤 하지만 그들을 뒤덮고 있는 현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예수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7 그런데 팔일 전 그 날처럼 어느 순간 제자들 사이에 무언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입니다 절망에서 고개를 든 제자들의 눈에 예수가 보입니다 도마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의 마음속에 분명한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 지금 그의 눈앞에 예수가 보이는 것도, 그의 마음속에 예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도, 그분이 하셨던 말씀들이 기억나는 것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고 보니 도마의 눈에 눈앞에 서계신 주님의 손가락과 옆구리에 눈에 들어옵니다 분명 못자국과 창에 찔려 찢긴 자국입니다 죽었던 그분이 죽음의 흔적을 그대로 지닌채 살아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예수의 몸을 덮었지만 지금 주님은 죽음의 힘에 아랑곳 없이 도마의 눈앞에 서계십니다

    주님을 믿지 못하던 그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에 안타까움과 측은함이 베어있습니다 그러니 민망하고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다 바로 나다 라고 말씀을 거시는 것 같습니다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아도 예수의 살아계심이 분명한 확신이 듭니다


    8 놀라운 밤입니다 이처럼 무겁기 그지 없는 절망과 두려움이 일순간 사라지다니요 예수님이 분명 살아 계심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주님은 또 다시 보이지 않습니다 여인들에게 보였고, 제자들에게 보였고, 도마에게도 보였던 예수의 모습은 지금 또 이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미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만 선명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내가 본 것이, 지금 내가 들은 것이 예수의 말씀인지 아닌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주님을 만나고 경험하기를 기다리며 며칠을 함께 했지만 주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평상시 우리들의 삶의 자리처럼 주님은 계시지 않으신 것 같기만 합니다 21장의 시작은 그럿게 기다림에 지친 제자들이 고기잡으러 디베랴 호수로 돌아간 장면이 나옵니다


    9 무엇이 문제일까요 ? 예수께서 살아난 것은 사실입니까 ? 예수를 보았던 이들의 모습은 왜 한결같지 않습니까 ? 다시 살아나신 예수에 대한 그들의 마음은 왜 자꾸만 현실앞에서는 닫혀지는 것일까요 ? 예수의 말씀만 남아 있는 현실속에서 왜 예수는 보이지 않을까요 ? 제자들이 기다렸던 것은 대체 예수의 무엇이었습니까 ? 주님의 말씀이 아닌,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있다는 모습을 보기만 원했습니다 그때마다 예수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들의 평안은 무너지고 있었다 


    대체 이 반복되는 절망과 두려움, 예수의 다시 살아남에 대한 회의는 언제 끝이 나는 것일까요 ? 과연 우리들 삶에 이런 회의가 반복되지 않는 온전한 믿음의 자리는 언제나 오게 될까요 ?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음에도 이런 사건만으로 현실의 두려움을 해결하지는 못하는가 봅니다

    의심많은 도마가 문제아가 아닙니다 애당초 여인들에게 예수의 부활소식을 접해 들은 제자들, 그리고 믿음없는 도마를 타박하던 그들의 심경의 변화를 좇아가보면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수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울 좋은 것인지와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믿음과 믿음 없음을 실감하는 현실의 갈등도 어찌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 밖에요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앞에서 신앙의, 믿음의 실익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 애당초 무력하고, 애당초 무너지는 믿음이라면 말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과 맞대어 얻어낼 수 있는 평안은 불가능의 개척지인건가요 ?

    (* 예수의 부활에 다시금 기댑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어느새 우리에게 믿음을 불어넣어주실 수 있으십니다 부활이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이듯 말입니다 )


    10 ‘카라바지오’라는 화가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 라는 작품에 이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뱉었던 말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 도마는 손가락으로 상처 자국이나마 만져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예수를 보니 도마는 차마 손가락을 못자국과 창자국 속으로 집어 넣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상처의 자국만 만져보려 했는데, 예수님께서 도마의 손목을 잡으십니다. 도마의 손목을 칼자루 쥐듯 잡으시고 도마의 손가락은 칼날이 되어 갈비뼈 사이를 헤집듯 찔러 넣습니다 흠칫 놀라는 도마의 표정속에서 경이로움과 두려움에 당황함이 베어납니다

    그리고 잔잔히 그의 손을 붙들어가는 예수에게서 음성이 들리는 듯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아라 믿을 수 있게 더 깊이 집어넣어보아라 네가 믿을 수만 있다면 더 깊이..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을 평안으로 바꾸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평안의 자리는 어디였습니까 ? 다시금 디베랴 바닷가에서 겼습니다 허울 좋았던 예루살렘이 아닌, 애당초 주님은 처음 만났던 그 호숫가에서 비로서 그들의 두려움은, 절망은 사라지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누리는 평안이 경험되어집니다


    처음 예수를 만났던 그 곳,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 하루를 악다구니 처럼 내몰리듯 살아가던 그들의 치열한 삶의 자리말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내일을 알 수 없어,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지 기억할 수 없는 절망과 두려움으로부터,

    내가 누구이며, 우리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부르심의 사명을 기억하는 삶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로 예수의 모습이 다시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은 믿음으로 가득했고 문을 걸어잠그고 닫혀있던 그들의 삶이 사람들에게로 이어져갑니다

    두려움이 절망이 사라졌습니다 아니 그러한 상황이 그들의 마음을 짓누르지 못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전적인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으신 생명 사건인 것처럼,

    온전한 샬롬, 온전한 평안도 역시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사건입니다

    부활한 예수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부활한 예수는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신 부활처럼, 우리들의 그 삶을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는 그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는 찾아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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