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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하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목회 일기 2018. 2. 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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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이란 무엇일까 ? 질문은영적 것은 무엇인가 ? 라는 말과도 동일하겠지요

    과연 신앙인들에게 영적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

    삼층천을 내다보고, 장래일을 점쟁이처럼 신묘막측하게 예언하는 것일까요 ? 동일한 질병인데, 정성이 가득한 이들만 선별해서 고쳐내는 신유? 같은 능력일까요 ? 성경을 통째로 암송하고, 문자적으로 떠받든 성경지식으로 자신의 지적 수준? 드러내고 갈등과 편가름, 혐오와 증오에 길들여진 천박한 신앙을 강요하는 이들일까요 ?

    아니면 만명이 출석하는 대형교회를 일궈낸 이들, 박사학위가 자랑스러워 설교단에 오를 때에도 박사가운을 입고 오르는 사람들? 가진 권력에 취해, 자신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많은 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는 사람들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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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이다라고 , ‘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Spirit 입니다 단어는’, ‘마음 함께정신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다(요한 4:23 ~ 24)라고 말할 In the Spirit 무언가 이방신을 섬기는, 혹은 무속인들이 궃을 하면서 반쯤 혼이 나가는 몽롱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예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하나님의 , 하나님의 얼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예배하다라는 뜻으로 석의할 수도 있게 됩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는 어떤가요 ? ‘루아흐, ‘프뉴마역시 담긴 뜻은 새롭기만 합니다 호흡과 생명, 생기, 바람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무속적 신비주의의 형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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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에서 조금 과격한 해석을 할라치면, 영적이라는 말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릴 있는 친밀함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함, 그분의 선한 뜻을 헤아릴 있는 것들을 다른 언어로공감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싶습니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를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친구에게서 받아온 업둥이입니다 오년을 함께 살아온 녀석이라 이제 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고양이의 행동안에서 원하는지도 읽어낼 있게 되었습니다 정이들다보니 고양이에게 연민이 들때도 있고, 안스러울 때도 있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감력이 키워지다 보니 이제 제법 고양이의 생각이 읽어지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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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어떠십니까 ? 저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공감 극치를 읽어내고 감동받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의 주재라 불리우는 절대자가 죽음이 지배하는 운명의 울타리 안에 신음하는 내게 찾아오셨다는 사건 자체가 경이롭기만 합니다 로마의 신화 어디쯤에선가 만나는 인간들 틈에 슬그머니 들어와 자신의 신적 능력을 뽐내고 으스대는 그런 신이 아닌, 나와 동일한 무력함, 절망, 아픔, 상실, 고통의 자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참여한 하나님의 육화에서 내가 공감받고 있다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이기에 나는 예수에게 아픔도 상처도 모나고 이그러진 마음도 기댈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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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 동안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되셨던 장인 어른 병수발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고통 가운데, 아픔 가운데 있다보니, 어떤 사람의 위로가 감동을 주는지, 어떤 이의 인사가 전혀 공감되지 않는 낯설은 언어인지, 어떤 사람이 참으로 사람을 위로하는 이인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사람안에 담겨있는 말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언어가 정말 따스한 언어인지, 표정은 따스하지만 마음에 차가웁고 냉랭한 얼음을 지니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건 사실 능력이라고 것도 아닙니다 젖먹이 아이도, 못하는 짐승도 진심으로 대하는 이들을 구별해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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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쯤되니 다시금공감이라는 단어가 깊이 다가옵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약하고 힘겨운 사람들의 삶이 자주 눈에 띄입니다 몇푼 안되는 돈으로 생색내려는 이들, 생색으로 인해 아프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의 상처애 무딘 사람들, 이익을 챙기는데 셈이 빠르고 공평과 분담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이것이 바른 것이라고 말하며, 힘겨운 이들, 어깨펴고 나서지도 못하는 이들에게도 짐을 지우려는 이들에게서 낯설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또한 아픔과 힘듦의 시간을 지나지 않고 있었다면 여전히 이외의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했겠지요 하지만 주님은 고통 받는 이들의 곁에, 상처받는 이들의 삶속에, 좌절하고 주눅들어있는 이들을 찾아가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

    그러므로 한편으로 오늘의 아픔은, 오늘의 무게는 영적인 민감함속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총의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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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기사 사람이 죽어나가도 여전히 일이 아니면 평온하기 그지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나와는 관계 없이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아픈 이웃들이 서글퍼지는 것은 소외감 때문이겠지요

    소외감을 극복할 있도록 해주는 길은 고통 밖에 머물고 있는 이웃의 공감하는 다가섬 뿐입니다

    사람이 있을 가장 아름다운 자리는 명예의 자리, 높음의 자리도 아닌, ‘옆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감할 있는 사람, 영적인 사람만이 옆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통과 기도에는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담겨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영적인 사람들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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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그럴 듯해 보이고, 목사라고 해도 영적인 수준은 천박하기 그지 없는 셈입니다 어떤 것이 영적인지 아닌지,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탐욕과 이기심을 종교의 언어로 위장하고 있는지 이제는 속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신에게도 속지 않을 있겠지요 언제 영적인 겉모습속에 일그러진 모습을 위장하려 하는지 말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천박한 마음 밭에, 영적인 깊음을 허락해주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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