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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있는 '비어있음' 의 자리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2018. 4. 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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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에 아웃도어룩을 만드는 유명업체의 기십만원씩 하는 점퍼가 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학부모들의 등골이 빠진다고 해서 ‘등골브레이커’라고 불리웠던 옷입니다 그 옷을 입은 아이들과 입지 못한 아이들, 더 비싼 옷을 입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알게 모르게 그들 사이에 계급이 형성될 지경이었고,
이런 시류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케팅은 대 성공? 이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이들만 이렇게 휩쓸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들도 나름 메이커, 소위 ‘명품’이라는 것을 좋아합니다 명품가방, 명품 옷, 커피나 먹을 것에도 명품이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명품’이라는 이름이 붙는 제품은 종류도 천차 만별인데다 ‘명품’ 광풍에 흔들리는 것은 남녀를 무론하다고 해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의문이 듭니다 왜 이렇게 명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 말입니다
물론 ‘명품’ 자체가 제품 자체의 ‘우수성’을 가지는 경우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명품’을 향한 호감은 단순히 제품의 질이 좋아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광적이고 홀릭하기만 합니다
명품을 손에 넣기 이전과 손에 넣은 이후의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보통 사람은 명품을 넣기 이전까지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채우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은 이후부터는,
명품 자체의 용도나 목적과 관계 없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나’를 경험하고 싶은, 과시하고 싶은 욕구만 분출되어집니다 소위 말해 ‘나, 이런 것 가지고 있는 사람, 이런 정도 수준의 사람이야~’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이런 사람들은 으레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못하고, 수단으로, 물질로, 나의 도움이 되는 어떤 방편 정도로 여기는 모난 태도를 갖게 됩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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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가방이 진품인지 아닌지는 비가 오는 날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면 가품이고, 가슴에 가방을 품고 간다면 진품이라는 겁니다 제품의 용도나, 그것이 사람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지 사람이 제품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않되는데 ‘역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보다 귀한 것, 사람보다 중요한 것이 되는 순간, 사람은 도구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명품을 추구하는 탐욕의 기저에는 어쩌면, ‘나’의 빈 곳을 채워보려는 본능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명품을 가질 수 있는 ‘여력’ 정도가 보여져야만 감추어지는 어떤 신체적인 핸디캡이나, 지적, 물적 재능이나 능력의 부족 말입니다
이런 경우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람의 ‘비어 있음’이 아니라, ‘비어 있음’을 견디어 낼 수 없을 만큼의 자존감의 열악함입니다 그 열패감이 '나'의 밖에 있는 타인의 존재감 마져 상처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채워져야 한다는 ‘소유’의 강박증속에서 ‘비어 있음’은 쓸모 없고 볼품 없는 불량?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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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11장에 ‘당기무유기지용’ (當其無 有器之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어 있어야만 쓸모 있다는 말입니다 그릇은 그 비어 있음 때문에 채울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 그 비어 있음 때문에 사람은 비로서 사람을, 세상을, 삶을, 그리고 하늘도 채울 수 있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어 있는 ‘너’와 ‘나’가 서로의 빈 곳을 매워가는 것을 인내하고 용납해 나갈 수 있을 때, 그때야 ‘우리’로 서 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주변에 사람들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비어 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보입니다
자신안에 ‘비어 있음’을 누군가에게 ‘쓸모 있음’으로 채워나가지 못하고, 쓸모 없는 ‘소유’로만 채우려는 사람들 말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는 것도, 학위도, 경험도, 사랑도, 친절이나 겸손, 심지어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 조차도 자신의 빈 곳을 감추고 이 만큼 가지고 있는, 그 만큼 여력이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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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옆에서는 ‘존중’과 ‘사랑’은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을 빈곳을 감출 만큼 채워줄 수 없다면, 그 곁에 있는 사람은 여지 없이 쓸모 없는 도구일 뿐입니다 버려집니다 그래서 자꾸만 곁에 사람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여전히 불평의 대상, 비난의 대상, 뒷담화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맙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경계 밖으로 내 몰아 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볍습니다 제 아무리 젠체하고, 제 아무리 선한 체 하여도 결국은 그 가벼운 빈탕이 드러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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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초에 ‘비어 있음’ 을 안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 비어 있음이 있으므로, 사람에게는 이제 ‘무엇’을 채워갈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담아, 자신의 비어 있음을 누군가에게 ‘쓸모있음’으로 채워갈 수 있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모인 ‘우리’가 ‘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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