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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208 대림절 둘째주일
    성서의 거울 앞에 2019. 12. 8. 09:29

    성서일과

           제 1 독서 | 이사야 11:1 ~ 10

            2 독서 | 로마서 15:4 ~ 13

            3 독서 | 마태복음 3:1 ~ 12

                  | 시편 72:1 ~ 7, 18 ~ 19

     

    설교음성

    https://drive.google.com/open?id=1_EjJbbRDB0yGpC-lTY9M4xbHNT-eI6Fx = '클릭' 하시면 설교음원을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설교영상

    https://youtu.be/94COeMVZ_Nc = '클릭' 하시면 설교영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성령로 세례를 주시는 분

     

    # 요한의 외침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을 품고 한주를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는 대림절 두번째 초에 불을 밝힙니다. 두개의 초가 모여 밝아지듯, 대림 첫주 여러분안에 심기워진 대림을 향한 소망의 초도 또한 꺼지지 않고 더욱 밝아질 있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는 마태의 복음서 본문속에서 암울한 시대의 분위기를 가로막고 서있는 낯설은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두터운 패배주의와 온통 절망으로 가득한 시대의 어둠을 찢고, 빛을 밝히기 위해 몸으로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 그의 이름은요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의 하나인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 그의 앞길을 밝히던 세례를 베풀던 요한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철저하게 구별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이민족들에 의해 핍박을 당하고, 깨어지고 상해 버린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처절한 현실속에서도 이제 임하게 하나님의 심판의 , 보복의 날을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래 앞서 있는 사람, 시대를 읽을 있는 사람은 외치지 않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믿음 없음 깨워내기 위해 광야로 뛰쳐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요한의 메시지는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습니다.

     

    # 광야에 서는 사람

    마태는 요한이 함성으로 시대를 깨우던 곳이유대광야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외치려면 광야가 아닌, 들어야 사람들이 많이 있는 도시 한복판을 향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 광야로 향했을까요 ? 

    광야는 생명, 살아있는 것들이 머물 곳이 아닙니다. 한줌의 소망도 남아 있지 않은 헐벗고, 척박한 땅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광야의 이미지는죽음입니다. 요한의 사명지는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죽음만 있어 보이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외치는 살아있는 자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분주하고 번잡한 세상을 뒤로하면 비록 먹는 음식이 메뚜기와 석청이라도, 하나님이 선명하고, 영혼이 더욱 풍성해지며, 생명으로 가득차, 암울한 시대에 빛처럼 있음을 요한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리어 풍성한 생명안에 있는 요한의 눈에는 광야 이쪽편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광야에 헤매이는 허무한 영혼들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알고 있던 이스라엘이 정작 믿음이 없음으로 자신들의 삶에 생명되시는 하나님이 실종되어 버린 광야를 살고 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믿음이 없어 갈하고, 믿음이 없어 절망이 뒤덮이는 두려움의 광야를 통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광야는 분명죽음 그림자가 짙은 절망의 땅입니다. 먹을 것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내몰리게 되면 누구나 먹고 살아야한다는 생존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자주 광야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소개합니다. 광야야 말로 나는 아무것도 없음을 통렬하게 경험하는자기 무능무력함의 실체 깨닫게 되는 , 힘으로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만을 바라는가난한 심령 되어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광야에 이들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광야를 지나고 계십니까 ? 내몰린 치열한 생존의 터로 광야를 헤매이고 있습니까 ? 아니면, 아무것도 없으나, 아무것도 없으나 가난하고, 무능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곳으로 광야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

     

    # 요한과 예수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을 향한 복음서 기자의 시선은 요한 자신이 아닌, 그가 바라보던소망 향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주목하고 있던 것은 로마의 폭압의 현실, 죄와 죽음, 온갖 패역함으로 가득한 폭력의 세상을 뒤엎으실 하나님의 심판의 , 그리고 하나님의 날을 끌고 오시던 예수님이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_ 3:11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토록 바라던 소망의 날을 발견했습니다.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날을, 하나님 자신을 발견한 요한의 가슴이 뜁니다. 요한은 다시금 외칩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_ 3:11b ~ 12

     

    당시에 사람들은 요한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가 메시아일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날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바라보아야할 것을, 향하여야 것을, 붙잡아야 것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요한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요한이 아무리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여도 그는 하나님의 구원자,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은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데, 분명한 차이가세례라는 단어에서 드러납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차이가 무엇인지 선뜻 이해가 되십니까 ? 

     

    요한은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것 밖에는 수가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입니다. 요한에게 찾아왔던 사람들은 불의하고 불법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두려움과 진노를 피하기 위해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지금까지 현실과 타협하며, 말씀의 능력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그렇게 망가진 세상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의롭게 살아보아도, 바르게 살려고 해도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러니어쩔 없는 현실이라고, ‘ 이렇게 살아간다 것이 그들 삶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날이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도끼처럼 임박하였다는 메시지를 접하고 이후, 그들의 걸음은 멈추었습니다.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받은 물세례의 의식은 이제부터는 이처럼 부패하고, 패악한 세상의 편이 되어 손가락질 받으며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회개인 셈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지와 결단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걸음이 이렇게라도 멈출 있다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회개 한다는 것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앞에서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구원이 없습니다. 이런 걸음이 무의미하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게 되는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을 스스로 구원해야만 한다는 조급성, 누군가의 인정을 얻어야만 한다는 연약한 마음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왜곡되고 뒤틀린 욕망과 탐욕의 문제는 그대로죽는 순간 이르러서야 해결될 있는 문제들입니다. 그때서야 지금 붙들고 있던 모든 것이,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무익하고 무능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하루에도 몇십 번씩 돌변하지 않습니까 ? 옳은 , 의롭고 마땅한 길이라고 해도 이익이 되지 않고, 손해가 보이면 돌아서는 우리입니다. 은혜 받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는 같다가도, 내가 언제 예수믿는 사람이었던가? 싶을 만큼 무너지는 것이 또한 우리 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해낼 없는 존재입니다. 요한이 행하였던 물세례의 한계가 여기입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인력처럼 끌어당기는 죄의 속성에서 벗어날 없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타락한 본성을 깨트리며 살아가려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힘으로, 스스로 인정받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시는 은혜,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말입니다.

     

    # 성령과 불의 세례

    요한은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뒤에 오실 , 예수님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세례를 베푸신다고 설명합니다. 성령과 불로 베푸는 세례입니다.

    12절을 보면성령세례불세례 같은 대상이 아닌, 서로 다른 이에게 행해지는 것임을 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_ 3:12

     

    성령세례의 대상은알곡이고, 불세례의 대상은쭉정이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임한 성령을 떠올리며성령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뜨거운 신앙열정과 믿음을 달라는 마음이려니 싶지만 사도행전 23절은 분명 성령을이라하지 않고, ‘불의 혀처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본문에서도 예수께서 행하시는세례를 받는 대상은 불에 의해 태워질쭉정이입니다. 그러니불세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어지는 주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쭉정이는,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을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나를 구원하기 위해 추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주님의 날에는 불에 타서 사라지게 입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니라’ _고전 3:13~15

     

    말은 이런 것들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다른 편의 세례는성령세례입니다. 성령을 도구나 수단처럼 뿌리거나 주신다는 말씀으로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성령은 살리시는 하나님,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깨지고 상한 영이 회복되고, 성령이 임하면 죽은 영이 살아납니다. 물세례를 베풀어 후회하고, 한탄하며, 죄된 걸음을 멈춘다고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바꾸고 영혼을 새롭게 하는 , 세상이 아닌 은혜로 사는 삶이 되는 ,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삶으로 영혼을 새롭게 있음은 오직성령만이 하실 있는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신앙을 가지며 살아도, 여전히 먹고 마시는 일에 사로 잡히며 살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얼마나 채울 것인가? 방식으로는 영혼의 구원은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의 방증입니다. 구원은 채움의 문제가 아닌, 그런 문제 자체로부터의 자유하는 능력을 누리는 경험입니다. 한끼 두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먹지 않으면 배고플 밖에 없는 삶에서 벗어날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우리안에 찾아오셔야만 이런 세상의 체제로부터 벗어날 있습니다. 빵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 자신을 구원하라 세상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너를 구원하셨다라는 사실을 실재로 믿을 있도록 하시는 이가 성령이십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쁨으로 바라보며 있습니다. 믿음도, 소망도 우리의 영혼을 깨우치시고, 새롭게 하시는 성령이 찾아 오셔야만 어둠에서 빛을, 절망에서 소망을 바라보며 사는 구원의 삶을 살아갈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심판은 이미 임하였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가 오심으로 인하여 세상은 이미 예수님 이전과 이후의 세상으로 나뉘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예수님 이전과 예수님 이후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나뉨과 가름이야 말로 요한이 보았던세상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심판의 실체는 이전까지는 저마다 괜찮다고, 살만하다고, 나는 안전하다고 외치며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찾아온 사건입니다. 하나님없이 살아온 삶의 실체가 불에 타버릴 쭉어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결코복음 수가 없습니다 ! 예수만 아니라면,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님의 가름 앞에서 성령의 세례를 통해 예수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구원의 조급함에 내몰려 소비되어가는 결국은 불세례로 태워질 삶을 살고 있는지 반드시 돌아 보셔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어느 편에 있습니까 ?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기대하며 살던 이들에게, 예수님은 성령의 세례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회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안에 살아가는 삶의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입니다.  대림절은 태워없어질 것들을 붙들며 살아가게 만드는 거짓된 세상에 불로 세례를 베푸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불의한 세상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망을 이루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주님을 주목하게 해줍니다

     

    # 다시 소망의 주님께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같은 것은 없다고, 그러니지금 삶을 누리며 살아가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살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그런 조짐은 보이지도 않는다 말합니다. 하지만 이사야도, 요한도, 바울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런 상황에서 주님의 날은 오고 있다는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성도는 두려움이 아닌, 소망을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깨어진 세상, 상하고, 넘어진 인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세상을 가로막고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 뿐입니다. 주님을 소망으로 품으며 영혼의 불을 밝히며 사십시오. 소망의 주님께서 대림의 기쁨과 평화로 삶을 채우고, 주님께서 마침내 이루실 구원의 희망에 사로잡히는 날을 우리는 맞이하게 것입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주님, 생각해보면 성령과 불은 유사한 성질이 있습니다

    모두 차가운 것을 뜨겁게 만들고, 어둠을 밝힙니다 그리고 태워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이신 소멸하는 불이 성령이시기도 합니다

     

    불은 때로는 부족해서 춥고, 때로는 과하여 앞에 선이를 해치지만

    성령은 냉랭한 가슴, 두려움과 절망에 짓눌려버린 마음과 영혼을 따듯하게 품어주십니다

    불은 그 자리만 비추어주니 떠나는 사람의 삶은 여전히 어둡지만,

    성령은 그 앞에 서있는 이의 영혼을 밝혀, 그가 떠난 그곳에서도 빛이 되게 해주십니다

    불은 태움에있어 남음의 여지가 없는 소멸이지만,

    성령은 부정한 마음과 사특한 불의함을 태워, 다시금 순결하고 정한 마음이 되도록 해주십니다

     

    여전히 불의하고, 

    여전히 부패하고, 

    여전히 악이 득세하는 세상이지만

    쭉정이를 모아 불로 세례를 베풀어 사르실 이가 오고 계십니다

     

    여전히 연약하고,

    여전히 무능해서,

    여전히 깨어지고 상한 믿음의 자리이지만,

    알곡들을 모아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실 이가 오고 계십니다

     

    대림절 두번째 주일입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주님이 오고 계십니다

     

    바울의 말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_로마서 15:13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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