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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4 성령강림후 25주성서의 거울 앞에 2021. 11. 9. 17:34
성서일과
- 1독서 | 사무엘상 1:4~20 혹은 다니엘 12:1~3
- 응송 | 사무엘상 2:1~10 혹은 시편 16
- 2독서 | 히브리서 10:11~14, (15~18), 19~25
- 3독서 | 마가복음 13:1~8
설교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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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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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너트려야만' 하는 것
1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교회로 모였지만, 오늘 복음서는 정반대로 성전을 떠나가시는 예수님의 행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떠나가실 때에’ | 막 13:1a
헤롯이 지은 성전의 위용앞에서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잔뜩 주눅들어 있는 제자들의 손을 급하게 끌고 나오시던 주님은 성전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와 믿음을 일순간에 전복시켜 버리는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 막 13:2b
순간 제자들의 마음이 황망스럽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 백성이라 자부하던 그들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던 패망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금기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치욕의 역사를 반영하는 사건이 바로 '무너지고 짓밟힌 성전'이었습니다.
제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성전의 주인되시는 주님이 떠나버리신 성전은 더 이상 성전으로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작 큰 일은 주님이 지금 ‘성전을 떠나셨다’는 겁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주님은 다시는 성전을 찾아오시지 않으셨고 자신의 몸으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십자가로 향하셨습니다. 주님 없는 성전에 남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강도들 뿐입니다. 주인이 떠나고 건물만 남아 있는 성전은 반드시 무너져야만 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 만이 성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께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안에는 성전의 주인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거하고 계시는지, 혹은 주인없는 그곳에 주인행세하는 강도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
바로 뒷 단락에는 종말에 관한 주님과 제자들 사이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호기심에 쉽게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종말에 대한 궁금증은 강박처럼 신앙을 좀먹고 시한부종말론이나 세대주의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늘 ‘언제’ 그 날이 올른지, 그때에는 어떤 징조가 있을지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것입니다. 일단 왜곡된 종말론에 사로잡히게 되면 평생을 일군 재산을 팔고,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가족도 버리기 일쑤입니다. 얼핏 이런 모습을 대단히 결연한 신앙처럼 자랑하거나 바라보는 분들도 있지만, 이런 신앙에는 오늘을 살아내야할 성도의 삶이란 폐기되고 맙니다. 그리고 ‘오늘’이 실종되는 순간, 지금, 여기에 계신 ‘임마누엘’하시는 주님도 갈 곳을 잃고 맙니다.
제자들이 주님 말씀을 듣고 곧장 여쭈었던 것도 그런 날에 일어날 징조가 무엇인가였을 뿐입니다. 마땅히 그들의 물음은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져버린 교회, 여기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향했어야만 했음에도,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겁니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 막 13:5b
주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성전파괴로 닥쳐올 종말앞에서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는 동시에, 우리들의 종말론적 신앙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장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방땅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살아가면서 세상의 종말을 보았던 사람, 다니엘이 오히려 포로로 끌려간 그 땅에서 친구들과 함께 치열한 믿음의 삶을 살아내었습니다. 세상의 끝과 오늘의 사이에서 하나님께 기대어 ‘오늘’을 불꽃처럼 살아냈다는 것이 다니엘서가 보여주는 핵심이 아닐까요?
이에 비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성시키시고 이끌고 오시는 종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맛보며 살아내는 종말론적 신앙에 기대어야 하는 신앙인들임에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오늘을 가벼이 여기고 속절없이 ‘종말’의 날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에 빠져있습니다.
3
오늘의 교회를 ‘잠자고 있는 거인’같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주님의 교회를 이렇게 연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잠자는 거인처럼 만들었을까요? 교세가 작아지고,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삶에 복음이 능력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받아 읽으면서도, 여전히 삶 가운데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자신이 살아가야하는 인생과 삶이 막연하다고만 합니다. 징조가 없어 불신하고, 믿을 수 없다 불평합니다. 믿음을 체념한 체 살아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어쩌다가 우리가 말씀하시는 분을 믿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된 걸까요? 주님을 믿는 ‘오늘’의 믿음은 어디로 가버린걸까요?
우리는 이천년전 헤롯성전을 무너트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무너트려야만 하는 성전, 주권을 행사하실 수 없어 예수께서 떠나가신 곳이 어디입니까? 스스로는 정작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채, 그를 믿지도 못하고, 외면하고 등진 채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 무너져야 할 곳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성전이 아니라, 성전을 더럽히고 강도의 소굴로 만든 사람이 문제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분명 그가 누구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가장 잘 속이고, 늘 우리 자신을 넘어트리던 이는 누구였습였습니까?
우리는 그 동안 말씀을 읽고, 언약을 들었음에도 성취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성취하실 주님을 의심하고, 절망하고, 때로는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신으로 내몰았던 판단의 근거는 늘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주님께 주권이 있다 말하고 왕이신 예수님을 입으로 외치면서도, 정작 내 안에서는 늘 ‘내 생각’이 주님의 말씀보다 더 권위가 있었던 겁니다. 언제나 기준은 ‘나’, '내 생각’, ‘내 말’,’내 경험’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않 된다고’, 혹은 ‘그럴 리가 없다’ 며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속지 마라고 하셨는데도 우리는 내면안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소리에 참 잘도 속습니다. 마땅히 주님께 드려야 할 주권을 송두리째 내어준 셈입니다.
4
8절의 말씀으로 복음서는 끝을 맺습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날 것이며,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기근이 들 것이다. 이런 일들은 진통의 시작이다’ | 막 13:8
그 날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씀만 툭 던져놓으신 채, 그 뒤에 이어져야할 내용이 없이 말씀을 마치신 겁니다. 무엇을 어찌해야하는지, 정말 징조는 있었는지, 이후에 제자들은 어떻게 했는지 가타부타 말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이런 말씀을 듣고 보니 두려운 마음이 들거나 혹시 '요즘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싶으니 큰일 났다' 싶진 않나요? 때가 이르렀으니, 타 종교와의 관계나 세상을 향해서도 더 용기있게 큰 소리를 내야겠다 생각하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 말씀이 꼭 이렇게 들립니다.
‘주제 넘게 하나님이 하실 일에 신경 그만 쓰고, 저 해야할 일에나 마음을 써라’
지금 내가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이 내 삶과 영혼을 붙잡고 있는지,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지도 돌아보지 못한 채,
바쁘다는 이름을 건채로 그저 그렇게 살고있는 것은 누구입니까?온통 어둠에 삼켜 꼼짝 할 수 없는 지경에서도,
핏발이 서리고 눈물조차 말라버린 주검같은 삶이라도,
예수 믿음이 이런 것이라고 외칠만한 능력을 맛본 적은 언제입니까?언약의 말씀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임마누엘의 은총이 우리를 덮고 있음에도,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을 고민하면서,
어디에 선지자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게 될까 두리번 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주님의 약속에 기대어, 오늘이 종말인 것처럼 그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영광이나 기쁨을 길어올려 보려는 신앙의 분투가 보이질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이시고, 말씀이 주님이신데도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지금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이슬람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이 물음이 누구를 지목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애써 눈을 감아버리기 일쑤였던 우리가, 오늘 말씀을 붙들고, 오늘 말씀에 순종하고 또한 오늘 믿음을 사용하고, 주님께 응답하며 사는 법을 잃어버린 우리는 진짜일까요?
5
다음 주일은 ‘왕이신 그리스도주일’ 왕국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무력화하시고 심판하심으로, 당신께서만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심이 드러나고 선포되어졌습니다. 이제 곧 온 땅의 누구라도 주가 왕이심을 부인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시간을 마감하시고 주님의 날이 올 때, 그 동안 세상이 자랑하던 정치, 경제, 문화 뿐만 아니라 힘과 권세를 자랑하던 강대국들의 위세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의지하던 모든 것들이 허무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구원자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심판이고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실체입니다.
우리의 종말은 언제나 옛 자아가 주인 노릇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향해야만 합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왕이신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전하면서도 정작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은 부인되어 왔습니다. 대체 언제 주님께서 왕이심이 선포되어야 할까요? 불안과 두려움, 염려와 걱정같은 나의 생각과 나의 경험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부인하며 주인 노릇하는 것을 언제까지 인정해야만 합니까? 주님은 불의와 불법의 손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 우리의 왕이 되시고자 하시고, 또한 ‘오늘’을 ‘종말’의 날로 부르고 계십니다. 여전히 하나님 없이 살려는 자아에서 벗어나야 할 날은 오늘입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던 이들, 자신을 드러내고 으스대던 탐욕스러운 모습은, 내 자신에게 몰입되고 자신의 빈 마음을 채워야만 만족하는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을 속이고 나 자신도 속이고 있는 거짓된 자아가 깨어지지 않는다면, 세상이 언제 망하고 종말이 언제 올 것인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상화된 성전이 깨어져야만 주님은 우리 안에서 왕이 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조차 부인할 만큼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있고, 그런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는 한, 주님의 날을 맞이해야하는 종말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주님이 거하시지 않는 성전은 무너져야만 한다는데는 동의하면서도, 주님이 주인으로 계시지 못하고 있는 우리 마음을 무너트리는 것을 주저하고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성전의 주인 노릇하려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감추는데 익숙한 우리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성소의 휘장을 찢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은 하나님을 만나러 나아가는 문이 되었습니다. 이천년전 십자가 위에서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이니, 이 사실을 믿고 주님께 내 삶을 온전히 드릴 것인지, 여전히 내가 주인 행세를 할 것인지 우리는 ‘오늘’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날에 있을 징조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내안에서,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것’과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가치가 충돌하고, 도우시는 주님의 손이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을 만큼 삶의 기반이 뒤흔들리고, 이것만 있으면 살겠다 싶었던 것들이 더 이상 내 음식이 되지 못하게 될 때,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소망에 절망의 삶이 깨어지기 시작한다면, 나로는 결코 할 수 없는 그 길을 걸어갈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면, 그것이야 말로 주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종말의 분명한 징조입니다. 종말을 사는 이들에게 세상은 아무런 위해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죽음조차 감사로 받고,주가 주시는 영생에 이어진 사람들을 해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는 세상에서 능히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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